[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최근 정부가 화장품 제조자 표기 의무를 삭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소비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현행 화장품 법 10조에 따르면 국내 판매 화장품을 생산·제조하는 제조업자와 이를 판매하는 책임판매업자를 구분해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책임판매업자는 화장품의 판매·유통을 담당하는 브랜드사를, 제조업자는 직접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생산자개발방식(ODM)이나 의뢰받은 제품을 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를 말한다.

정부의 법 개정 이유는 국내 기업의 수출 타격을 막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제조사의 정보가 노출되자 해외 화장품 업체는 국내 기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제조업체에 유사 제품을 의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설 자리를 점차 잃게 되면서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법에 따라 제품의 품질·안전 책임이 화장품 판매업자에게 있고, 화장품 제조업자의 정보까지 의무적으로 표시될 필요는 없다”면서 “화장품 포장에 화장품 책임판매업자의 상호 및 주소만 기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화장품 업계는 이 같은 주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대기업들은 해외 경쟁업체에 제조사 정보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한국 브랜드를 카피해 짝퉁 화장품을 파는 행태가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업계도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화장품 제조업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소비자에게 제품 브랜드만을 믿고 구매할 수 있도록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생각은 다르다. 출처도 모르는 화장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이에 지난 11월 국회에 화장품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는 이를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앞으로 제조원이 표시되지 않은 화장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맞는 말이다. 해외의 짝퉁 화장품을 근절시키고 국내 기업들의 영업 비밀을 보호하는 것도 좋지만 정부가 소비자의 알 권리까지 박탈할 자격은 없다. 화장품 성분과 제조사를 꼼꼼히 따지고 있는 요즘 이러한 법안은 오히려 시대 착오적인 발상일 수 있다.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불안 속에 떨고 있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제조업계도 불만이다. 표기가 사라진다면 낮은 가격으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검증되지 않은 제조사들이 시장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전반적인 품질 하락이 이어져 K-뷰티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체명이 노출되지 않으면 제조사 역시 연구개발에 투자할 이유가 사라진다”면서 “결국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시스템 문제라는 평가다. 해외의 경우 화장품에 제조사 정보를 표기하지 않아도 화장품 제조부터 공급과 유통 전 과정을 아우르는 강력한 이력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는 사실상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 없이 제조사 표기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이런 사달이 나는 셈이다. 업계의 깊은 반성이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