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2019년의 대미를 장식할 유통업계 ‘혈전(血戰)’의 서막이 곧 오른다. 혈전의 장은 바로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T1) 면세점이다. 인천공항공사는 내년 8월 만료되는 면세점 사업권 8개에 대한 입찰을 올해 안으로 진행한다. 특히 이번 입찰은 향후 최대 ‘10년’까지 사업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이 달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재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사업권을 지켜내기 위해, 새롭게 공항면세점에 진입하려는 기업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입찰부터 달라지는 ‘2가지’ 

이번 입찰을 통해서는 T1에 있는 총 8개 면세점 사업권의 주인이 결정된다. 8개 구역은 신라면세점이 운영하고 있는 DF2 화장품·향수, DF4 주류·담배, DF6 패션·잡화 등 3개와 롯데면세점이 운영하고 있는 DF3 주류·담배, 신세계면세점이 운영하는 DF7 패션·잡화를 포함한 대기업 구역 5개와 SM면세점의 DF9 전품목, 시티플러스의 DF10 전품목, 엔타스듀티프리 DF12 주류·담배 등 중소기업 구역 3개로 구성된다. 특히 면세점 최고의 인기 품목인 화장품·향수 매장을 운영하는 신라면세점의 DF2 구역은 입찰에 참가하는 모든 기업들이 탐내고 있다.  

지난해 인천공항 면세점은 연간 매출 2조6000억원으로 전 세계 공항 면세점 매출 1위에 올랐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입찰 신청을 받는 8개 구역의 연간 예상 매출액은 약 1조원 규모다. 그러나 단기간 운영을 가정하면 인천공항 면세점의 운영은 수익성 측면에서 기업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국가의 관문’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임대료도 높게 책정돼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입찰부터는 크게 두 가지가 달라져 점포 운영에 따른 수익성도 개선될 전망이다. 

▲ 출처= 롯데면세점

첫 번째는 사업권 유지 기간이 종전의 최대 5년에서 최대 10년까지 늘어나는 것이다. 5년 사업권은 입찰과 점포 운영 준비 기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기업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간은 3~4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업계의 불만이 컸다. 이를 고려해 인천공항공사는 사업권 보장기간을 최대 10년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임대료 산정 방법의 변동이다. 기존에 인천공항 면세점은 점포의 수익과 관계없이 정해진 금액을 기업들에게 임대료로 받았다. 이 방법은 외교 분쟁 등 돌발변수로 면세점의 수익이 줄어드는 예외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차기 T1면세점 사업권부터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임대료로 납부하는 방식으로 변동된다.   

▲ T1 신세계면세점 탑승동 75번 매장. 출처= 신세계면세점

독기품은 롯데, 긴장의 신라, 여유의 신세계, 복병의 현대   

이번 입찰을 가장 기다려온 기업은 롯데다. 중국 정부는 롯데그룹이 정부에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 매장 방문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방한 면세관광 고객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고객들의 ‘롯데 패싱’이 계속되면서 인천공항 롯데면세점의 수익이 급감했고 급기야는 사업권 유지기간 5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사업권을 반납한다. 이 때 롯데가 포기한 DF1 탑승동 화장품·향수 매장과 DF5 럭셔리 부티크 매장 사업권은 신세계면세점이 입찰해 지난해 8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굴욕 아닌 굴욕을 맛본 롯데는 심기일전하여 사업권 쟁취에 나선다. 이번 입찰에 대해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이사는 공식 석상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보겠다”라면서 현재의 사업권 수성과 더불어 주요 구역 사업권의 추가 획득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런가하면 이번 입찰에서 가장 많은 사업권을 ‘지켜내야 하는’ 신라면세점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신세계면세점은 롯데에게서 이어받은 사업권의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에 현재 운영 중인 1개 사업권의 재입찰에 실패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어 "무리하지는 않겠다"라면서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입찰의 한 가지 변수는 현대백화점면세점의 가세 여부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1월 무역센터점으로 면세사업에 뛰어든 데 이어 올해에는 두산이 반납한 서울시내면세점사업권을 인수함으로 면세사업의 규모를 키웠다. 롯데, 신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3대 유통기업이지만 지난해 이전까지는 면세점 사업을 운영하지 못했던 현대백화점은 최근 면세사업의 확장을 위해 애쓰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현대백화점이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 들어간다는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이 시내면세점에 이어 공항면세점까지 사업의 반경을 확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면세점 운영 이력과 자본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입찰에서 현대백화점면세점은 경쟁 업체들에 비해 매우 불리하다. 아직까지 면세점 사업으로 영업이익을 기록한 적이 없는 현대백화점면세점의 실적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현실적으로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사업권 입찰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기존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 현대백화점면세점이 들어선 무역센터점. 출처= 현대백화점

그 외의 변수

면세점 입찰과 운영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본력, 시내면세점에서의 절대입지 등을 고려하면 이번 입찰전에서 가장 유리한 입지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롯데다. 그러나 롯데에게는 한 가지 작은 약점이 있다. 바로 인천공항공사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공항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하는 과정에서 롯데는 사업권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기 전까지 계속 공항공사와 마찰을 빚었다. 공적인 사안의 결정에서 과거의 불편한 관계가 반영될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입찰에 참여한 모든 업체들이 제안한 조건이 동일하다면, 마지막 단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면세점 업계 한 전문가는 “서울시내면세점 운영에 대한 장점이 약해진 만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커졌다”라면서 “특히 이번 입찰에서 달라지는 운영의 조건들은 기업들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번 입찰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