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모빌리티 업계가 진통끝에 정부 주도의 '기괴한 모델'로 고착화되고 있다. 치열하게 싸우고 논의하며 새로운 길을 찾으려 모색했으나, 그 끝은 '돈 더 주고 비싼 택시 타는 것'으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택시업계와의 협력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행보를 보이며 그나마 희망의 꿈을 꾸고 있으나, 큰 틀에서 업계 전체를 조망하면 한 편의 희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모빌리티로 뭘 할 것인가
현재 모빌리티 업계에서 다양한 논의와 충돌이 벌어지고 있으나, 사실 핵심은 단 두 가지다. 모빌리티의 지향점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어떤 사회의 발전을 끌어낼 것인가.

모빌리티의 지향점은 답이 나왔다. 이동하는 모든 것을 확보해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ICT 기술의 진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 이를 매칭시키는 것만 생각한다면 진짜 모빌리티가 아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클라우드 플랫폼을 더해 수요와 공급을 매칭시키는 것은 일차적인 관문이며, 이를 통해 플랫폼이 다양한 사용자 경험을 즉각적으로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택시를, 때로는 전동 스쿠터를 활용해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다양한 경로를 유연하게 제시하고 이를 가장 간단하고 윤택하게 풀어내는 것.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면 다양한 결제 인프라, 이동하며 즐기는 콘텐츠, 물류와 유통의 개념의 도입으로 플랫폼을 더욱 풍성하게 키우면 된다. 자연스럽게 스마트시티의 청사진이 완성되는 셈이다.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고 친절한 드라이버가 존재하는 11인승 승합차에 탑승하며 자율주행차가 작동하는 것은 모빌리티의 지향점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여기까지 오면 이러한 모빌리티가 어떻게 사회의 발전을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 인류는 항상 이동하고, 또 이동하며 교류하고 발전해왔다. 이동의 모든 것을 품는 모빌리티가 초연결 사회의 접점과 만나는 순간 우리가 알고있던 사회는 또 다른 시대적 사명을 가지게 된다. 모빌리티를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매칭만으로 이해하는 일각의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혁신'이다.

▲ 벤티가 보인다. 출처=카카오

우리는 기회를 잡았을까?
국내 모빌리티 업계는 과연 지향점을 제대로 찾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발전을 끌어낼 준비가 됐을까? 그 기회를 잡았을까?

카카오 모빌리티가 럭시를 인수하며 카풀을 자사 모빌리티 플랫폼에 넣으려 시도하던 순간, 기회를 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택시와 내비게이션, 대리운전과 주차를 통해 이동의 모든 것을 차근차근 자사 플랫폼에 채워넣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카풀도 보완재의 역할을 하기를 바랬다. 이동하려는 승객에게 수요와 공급을 단순 매칭하며 택시와 내비게이션, 대리운전과 주차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카풀을 넣으며 퍼즐의 조각을 맞춰갔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ICT 기술이 보완재로 움직이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실패했다.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택시업계는 카풀의 불법성과 승객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프레임을 구축했으나 질 낮은 택시업계에 승객들이 반발하자 역풍을 맞았고, 이후에는 헌법의 기본가치인 생존권 보장 프레임을 들고나와 반발을 계속했다. 공사현장을 예로 들자면, 망치질에 익숙한 목수들이 어느날 전동망치가 등장하자 "전기로 망치질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반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사현장에서 대충 망치질하고 질 낮은 서비스로 일관하던 목수들의 과거가 밝혀지자 이번에는 "전동망치는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이것이 먹혔다.

이후로는 우리가 아는 논란이 계속됐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카풀을 포기하고 택시업계와 손을 잡았다. 국토교통부는 플랫폼 택시 로드맵을 구축했고, 박홍근 의원실은 플랫폼 택시의 명확한 로드맵과 타다를 금지하는 여객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벤티를 베타 서비스하고 있으며, 타다를 운영하는 쏘카 VCNC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서 정신없이 펼쳐지고 있는 모빌리티 업계의 '전황'을 분절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니, 기본으로 돌아가 질문할 필요가 있다. 2018년 12월 현재, 국내 모빌리티 업계는 모빌리티의 지향점을 잘 찾아가고 있을까? 100% 아니다.

▲ 정주환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도대체 어떻길래?
모빌리티 업계의 지향점은 이동하는 모든 것을 품어가는 작업이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사용자 경험이 나와야 한다.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먼저 현재의 모빌리티 방향성이 이동하는 모든 것을 노리며 차근차근 로드맵을 구축하고 있을까. 아니다. 택시업계의 반발에 따라 오로지 택시 중심의 로드맵만 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와 카풀, 대리운전,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나란히 플랫폼에 위치해 승객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동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 하지만 힘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는 오로지 택시 중심이다.

정부의 방침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국토부는 플랫폼 택시 로드맵을 통해 택시와의 협업이 없으면 모빌리티의 '모'자도 꺼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VCNC가 반발하자 "VCNC는 대안이 있나"라고 되물은 국토부의 '정신세계'에 집중해보자. 이 말에는 국토부가 모빌리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나 있다. 국토부는 모빌리티를 새로운 혁명이 아니라, 질낮은 서비스로 일관하면서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택시업계를 살리는 '인공 호흡기'로만 보고 있다.

그저 택시 감차 산업에 모빌리티를 활용하고, 택시업계의 서비스 제고에 모빌리티를 이용하고, 택시업계가 돈을 더 잘 벌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모빌리티를 활용하는 것일 뿐. 모빌리티를 이동하는 모든 것으로 규정해 새로운 산업의 섹터로 정의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택시업계와의 협력이 없는 모빌리티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VCNC의 주장은 국토부가 듣기에 황당한 잡음으로 들릴 뿐이다. "VCNC는 대안이 있나"는 말의 앞에는, "모빌리티는 택시업계 살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하는데"라는 사족이 숨겨져 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셈이다.

백번양보해 모빌리티를 택시업계 인공 호흡기로 본다면, 과연 인공 호흡기를 단 택시업계는 병상을 박차고 일어날 준비가 됐을까? 역시 아니다.

'우리가 왜 모빌리티에 집중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이 필요하다. 일단 우버와 디디추싱, 그랩 등 글로벌 모빌리티 트렌드가 활발하게 감지되며 국내에서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이자 동기는 택시업계의 질낮은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다. 카풀 논란 당시 승객들이 택시기사의 불친절함과 승차거부에 진저리를 쳤던것을 떠올려 보자. 승객들의, 국민들의 택시에 대한 반감은 상당했고 이는 매우 고질적이며 오래된 문제였다. 이 문제를 카풀로 대표되는 모빌리티가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국토부의 군기잡기로 모빌리티 업계가 택시업계와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지금 택시업계는 변했을까? 만약 변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모빌리티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 것이며, 모빌리티를 기회가 아닌 위기로 인식해 대충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어떨까.

택시업계의 질낮은 서비스가 이어지는 배경에는 택시기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해결이 감지되면 택시업계는 변하려 노력하고 있고, 모빌리티에 대한 진정성도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정부가 지난 8월 2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일부를 개정해 택시 사납금 제도를 2020년 1월 1일부터 폐지하기로 결정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 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은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2020년 1월 1일 택시업계 사납금 제도가 폐지되지만, 택시회사들의 비정상적인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 연맹 위원장은 "택시 사납금 폐지 시행일을 불과 15일 남긴 상황에서, 지금 전국의 택시현장에서는 이름만 바뀐 택시 사납금 제도가 횡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택시회사들은 택시 사납금이라는 명칭 대신 ‘월 기준금’ ‘성과급 산정을 위한 월 기준운송수익금’이라는 명칭을 쓰며 여전히 사납금을 받고 있다. 전액관리제와 택시기사 월급제를 위한 핑계로 1일 기준금을 대폭 인상해 폭리를 취하기도 한다.

모빌리티와 만나 다양한 가능성을 꿈꾸며, 승객에 대한 질높은 서비스를 보장해야 하는 택시업계가 여전히 구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택시와의 협력이 있어야만 모빌리티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기괴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 택시회사의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사진=최진홍 기자

모빌리티 업계 응원해야
국내 모빌리티 업계는, 택시와의 협력으로만 모빌리티를 할 수 있다는 정부의 방침이 나오는 순간 이미 망가졌다. 시장의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논리도 무시되고 자율경쟁체제는 숨을 거뒀다. 모빌리티의 지향점인 이동하는 모든 것을 달성하기 위한 플랫폼 전략도 유명무실해졌고, 그저 비싼 돈을 내고 11인승 승합택시를 앱으로 부르는 시대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업계는 포기하지 않는 눈치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벤티를 통해 택시업계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려 결단을 내렸다. 즉, 내부에서 변화와 혁신을 끌어내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다. 직접 '무간도'로 뛰어들어 판을 바꾼다는 의지. 처음에는 벤티에 불과하지만, 이후로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시장 전체를 변화시킨다는 목적의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코나투스의 반반택시와 벅시 등 모빌리티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코나투스는 반반택시는 물론, 일반 콜택시 로드맵에 더 무게를 두고 활로를 찾겠다는 방침이며 벅시는 이례적으로 카리스국보와 만나 물류 모빌리티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밀알처럼 모이면 의외의 특이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VCNC는 최악의 위기에 섰지만 현 상황에서는 물러설 기미가 없다. 개정안의 입법 절차에 주목하며 끝까지 시장의 다양성을 타진한다는 각오다.

응원이 필요하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가 사실상 택시업계와 협력하는 다수, 그렇지 않은 소수로 갈라져 반목의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으나 결국은 하나로 뭉쳐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모빌리티의 지향점을 살피며 다각도로 판을 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디추싱이 한국 사무실을 열고, 우버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면 더 재미있고 역동적인 판이 펼쳐질 전망이다. 정부는 여기까지 고려한 다양한 보완책을 적극 마련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그래도, 내년 4월 이후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