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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쟁의 시대③] 그들이 깨어난다라인과 야후재팬 결합으로 본 '제 3지대'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돌이켜보면 항상 대립의 역사는 '양강체제'가 아니었다. 두 번에 거친 세계대전에도 엄연히 중립노선을 걸었던 나라들은 존재하며, 미국과 소비에트연방의 대립이 이어지던 냉전시대에도 제 3지대는 존재해 왔다. 제 3지대는 두 마리의 커대한 코끼리가 격렬하게 충돌하며 세상을 휘어잡을 때 때로는 기회를 포착하거나, 때로는 유연한 전략을 바탕으로 생존하고 버텨왔다.

현재의 ICT 기술전쟁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보이지만, 그 주변부에는 엄연히 강력한 세력과 경쟁력을 가진 제 3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우리도 있다"
현재 글로벌 ICT 업계의 패권경쟁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장 인공지능 인재만 봐도 미국과 중국 천하다. 엘리먼트AI가 발행한 2019년 글로벌 인공지능 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올해에만 1만295명의 인재를 보유하고 있고 중국은 2525명에 이른다. 인공지능 특허발간 지수를 봐도 이러한 추세는 쉽게 확인이 된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의 특허 현황에 따르면 딥러닝의 경우 미국의 특허발간은 2017년까지 101건, 중국은 652건이다. 머신러닝은 미국이 882건, 중국이 771건이며 인공지능 자체 특허는 미국이 130건, 중국이 641건이다. 그 외 나라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글로벌 ICT 기술패권 경쟁에 나서는 것이 미국과 중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 오성홍기가 날리고 있다. 출처=뉴시스

소프트뱅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계 일본인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현재 글로벌 ICT 업계를 호령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이다.

특히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는 2016년 은퇴 번복 후 이듬해 열린 MWC 2017에서 "인공지능은 우리의 훌륭한 파트너"라고 단언하며 슈퍼인텔리전스 시대를 예상했다. 30년 후 IQ 1만의 수퍼인텔리전스 컴퓨터가 등장해 싱귤래리티(특이점, Singularity)의 시대가 올 것이라 장담했다. 이는 기술적 특이점(Technology Singularity), 나아가 전(前)특이점(Pre Singularity)개념으로 확장된다. 전특이점은 일본의 슈퍼컴퓨터 개발자 사이토 모토아키가 <엑사스케일의 충격>이란 저서에서 처음 소개했다. 모토아키는 향후 10년 내 컴퓨터의 집적도가 인간의 뇌를 추월하여, 6리터 크기 상자 안에 70억 인류의 두뇌총량과 맞먹는 성능의 컴퓨터를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손 회장의 시선은 미국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남미를 가리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랩이 대표적이다. 현지 모빌리티 시장에서 우버를 몰아낸 그랩은 지금 동남아시아 미래 모빌리티 플랫폼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현지의 나라들과 연합해 디지털 경제의 큰 그림까지 그리고 있다.

그랩과 인도네시아의 연합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앤서니 탄(Anthony Tan) 그랩 CEO, 리드즈키 크라마디브라타(Ridzki Kramadibrata) 그랩 인도네시아 사장은 지난 7월 자카르타 메르데카 궁전에서 회담을 열고 20억달러를 현지에 투자, 디지털 경제를 일으킨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인도네시아의 기술 분야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랩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투자 소감을 밝혔다.

앤서니 탄 그랩 CEO는 “그랩은 인도네시아의 224개 도시에서 진출해 있다. 인도네시아는 그랩의 가장 큰 시장이며,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소프트뱅크의 투자에 함께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주요 서비스와 인프라를 디지털화하는데 투자해, 인도네시아가 동남아에서 가장 큰 디지털 경제국으로 거듭나고, 수백만 명의 생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위워크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다만 손 회장의 현 상황은 마냥 낙관적이지 않다. 우버와 위워크 등 많은 온디맨드 플랫폼 기업에 투자했으나 최근 막대한 손실을 보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 회장의 뚝심은 여전하다. 그는 3분기 소프트뱅크가 아쉬운 실적을 거둔 직후 주주들에게 "많은 반성을 한다"면서도 "지금의 투자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손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만나 비전펀드를 운영하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이 역시 제 3지대의 연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우디아바리바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람코 상장 등을 통해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탈피해 ICT를 기반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사우다아라비아의 실력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 아지드 알사우드 왕세자가 주축이 되어 2016년 4월 발표한 중장기 경제발전계획, 비전 2030이 핵심이다. 이는 오일머니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자국의 경제체질을 바꾸는 한편 원전 사업 및 ICT 테크기술 확보에 열중하고 있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지도를 바탕으로 원유 외 수입을 2015년 약 52조원에서 2030년 약 318조원으로 늘리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를 위해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를 상장시켜 자본을 모아 ICT 중심의 데저트밸리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손잡고 비전펀드를 운영하며 글로벌 무대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비전펀드의 등장 배경이다. 2017년 5월 처음 출범한 비전펀드는 최초 애플, 폭스콘, 퀄컴, 샤프 등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가 450억달러를 투자했으며 엔비디아를 비롯한 다양한 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이들은 후속 투자유치를 통해 비전펀드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으며, 지금도 다양한 ICT 신사업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정의 회장과 오일머니의 만남은 각자의 '니즈'가 딱 맞아 떨어진 케이스다. 현 상황에서 오일머니, 즉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중동 산유국들은 일종의 경제 체질개선을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오일머니만 믿고 미래를 배팅하기에는 불분명한 요소가 많으며, 결국 이를 대체할 장기적 관점의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전방위적 행보와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비전펀드의 당위성이 설명된다.

하지만 오일머니의 야심찬 계획에도 헛점은 있다는 말도 나온다. 막대한 자금과 풍부한 인프라, 넘치는 노동력 등 중동의 실리콘데저트를 품어낼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조직적 인프라'는 크게 미흡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창업가 정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환경이다. 이 지점을 소프트뱅크가 지원하고, 손 회장의 혜안이 발동되는 수순이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물론 소프트뱅크는 미국과 중국의 많은 ICT 기업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미중 ICT 패권경쟁의 직접적인 당사자이자 조율자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중국의 디디추싱, 미국의 엔비디아 및 우버 등 다양한 라인업이 포진해있다. 그러나 그의 뿌리가 한국과 일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ICT 패권경쟁의 주역인 미국과 중국 외 영역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과의 연합은 제 3지대에서 성장하는 또 다른 ICT 기술전쟁의 주역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 손정의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라인과 야후재팬의 만남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기술패권의 시대, 제 3지대는 아시아와 중동 및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또 하나의 거대 플랫폼이 등장했다. 바로 라인과 야후재팬의 만남이다.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이 소프트뱅크 자회사 야후재팬과 만났다. 두 회사가 각각 50%의 지분율을 가진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야후재팬을 운영하던 Z홀딩스를 지배하고, 그 아래로 라인과 야후재팬이 가동되는 그림이다. 이용자만 1억명을 가진 초거대 인터넷 플랫폼의 등장이다. 네이버는 “Z홀딩스는 메신저 플랫폼인 라인, 포털인 야후재팬, 커머스 플랫폼인 야후쇼핑과 조조, 금융서비스인 재팬넷뱅크 등을 산하에 두며, 일본 및 아시아 최대의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계 일본 플레이어 연합으로 만들어진 거대 플랫폼이 1억명을 품고 로컬라이제이션과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ICT 패권에 맞서 핀테크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라인과 야후재팬의 만남을 두고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수퍼앱의 기틀을 다진 후 기술기반 서비스의 연속적인 출시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라인의 실적이 나빴던 것을 고려하면, 소프트뱅크 중심의 글로벌 전략적 판단과 자금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라인의 오래된 꿈인 글로벌 기업 비전과,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소프트뱅크의 최근 어려움이 각자의 '니즈'를 채워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전망이다. 그 연장선에서 핀테크 및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적 특이점이 발휘될 전망이다.

초반 성과는 더 거대한 외연 확장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태동하는 현지의 ICT 인프라를 얼마나 강력한 현지 최적화 전략으로 묶어내느냐에 시선이 집중된다.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계 일본 플레이어들의 합종연횡과 더불어, 이를 바탕으로 파생될 새로운 시장의 전투 향배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 라인이 가동되고 있다. 출처=갈무리

두 기업의 만남에는 미중 패권경쟁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의식도 깔렸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의 발언에 힌트가 있다.

이해진 창업주는 지난 6월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한국사회학회·한국경영학회 공동 심포지엄에서 작심발언을 대거 쏟아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규제다. 그는 "인터넷 기업을 하며 스스로의 데이터 센터 등을 통해 우리의 것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면서 "우리나라는 큰 회사가 나오면 규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논리는 글로벌 기업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국내 기업의 생존을 담보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 창업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경은 없다"면서 "구글이라는 인터넷 제국에 끝까지 저항하는 네이버가 삼별초처럼 거인들에 저항해 버텨 살아남은 회사라는 말을 우선적으로 듣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지구촌 시대'가 왔다고 해도 아직 인류는 민족과 국가 이상의 연합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으며, 이는 기술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구글이라는 하나의 색(色)이 세계에 퍼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네이버라는 토종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삼별초로 비유되기에 부족하지 않다. 네이버는 최후의 보루이자 데이터 주권의 선봉이다.

문제는 최후의 보루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 ICT 업계는 구사업과 신사업의 충돌로 방황하고 있으며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거나, 선거 때 표를 의식한 정무적 행보만 보여주고 있다. 규제 이슈 및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등에 있어 정부 당국의 '지원'이 시급한 이유다. 이 창업주가 언급한 대목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이 라인과 야후재팬의 만남으로 글로벌 수퍼앱 비전으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경계에서 주류로
역사는 끊임없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바꾸며 진행되었다. 로마제국을 무너트린 야만족들이 중세유럽의 시초가 되었고, 이후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역전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지금 당장 강력해 보이는 제국도 언젠가 무너질 수 있으며, 언제든 제 3지대가 주류로 부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ICT 혁명이 시작되며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나,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 중동을 아우르는 제 3지대의 기술 경쟁력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현재의 강자는 현재의 약자를 철저하게 이용하며 화수분으로 사용할 생각이지만, 이에 대항하는 저항은 언제나 존재한 바 있다. 결국 현재의 기술패권 경쟁은 다극화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분열의 단면이자 또 다른 통합의 시작이기도 하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19.11.24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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