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정다희 기자]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은행 대비 자본시장의 중개기능이 부진하고 자본시장 관련 금융산업의 발전이 미흡하다는 점을 들어 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특히 투자은행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장기간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금을 공급(모험자본 공급)하는 역할은 은행보다는 자본시장이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증권사들은 자기자본규모가 작아 투자은행 업무를 뒷받침하기 어려웠다.

자본시장법 제정 후, 이에 힘입은 국내 증권사들은 자기자본규모를 꾸준히 늘려왔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5개 대형사(2018년말 기준)의 자기자본은 2008년 2조2900억원에서 2018년 5조33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그 외 중소형사의 경우도 2008년 4700억원에서 2018년 84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정책적인 뒷받침도 한 몫 했다. 이후 시행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제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증권사에 배타적인 새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도록 했고 기존의 영업용순자본비율(구 NCR)과는 별도로 새로운 순자본비율(신 NCR)체계를 적용해 대형사들이 단기간 자기자본을 크게 키울 수 있게 했다.

기대한 효과도 나타났다. 투자은행, 자기매매 수익이 늘어나면서 이익 다각화, 안정화에 일정부분 성공했다. 다만 위탁매매수수료의 감소는 정책의 효과라기보다는 온라인과 모바일 거래 확산으로 인한 증권사 간의 수수료 가격 경쟁 때문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설명이다.

기대했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지만 대형IB 육성을 장려하는 정책에 업계도 부응했고 수익구조 다변화라는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했다. 증자 등을 통해 덩치 키우기에 성공한 몇몇은 초대형IB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최근 증권사의 자본건정성을 점검하는 기준으로 예전의 NCR기준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증권사의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구 NCR기준을 다시 도입하기로 했다. 예전 기준이 리스크 관리 능력을 판단하는데 더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기존의 NCR은 영업용순자본과 총위험액을 비교해 규제자본 대비 위험액의 크기를 봤다면 새로운 NCR은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값을 업무단위별 필요유지 자기자본과 비교해 자본수준 대비 투자여력을 판단한다. 유휴자본을 줄이고 자본활용성을 높이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신 NCR기준으로는 거의 모든 증권사가 자산건전성에 문제없는 상태다. 이유는 새롭게 바뀐 기준에서 분모를 담당하는 ‘필요유지 자기자본’에 있다. 증권사가 새로운 업무를 인가받을 때 당국이 정한 최저 자본규모에 맞춰야 한다. 이 기준은 인가를 받으려는 모든 증권사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재 자기자본규모가 1위인 미래에셋대우와 10위권 밖인 중소형사가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다면 필요유지 자기자본도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이처럼 분모 값은 일정하기 때문에 자기자본규모가 큰 대형사의 경우는 항상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없는 상태처럼 보이게 되는 착시효과가 나타난다.

신 NCR기준은 구 NCR이 필요이상의 유휴자본 축적을 일으켜 증권사의 적극적인 투자활동을 막는 문제로 인해 도입됐다. 그런데 덩치를 키운 IB들이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재미를 보기 시작하면서 부동산PF(Project Financing) 등 점점 리스크가 높은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고위험 투자에 나섰던 증권사들의 신용리스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부동산 PF 대출의 경우 증권사들의 공시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전체 채무보증 중 부동산PF 규모를 확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부동산PF 중 증권사가 대출 미상환 금액을 책임지는 신용공여 여부와 그 규모도 알 수 없다. 적극적으로 늘린 대체투자의 경우도 미매각 사례가 늘고 있어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결국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할 방법이 없자 더 보수적인 옛 기준이 거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금시장에서 중개자로 충실히 일하고 있는 증권사의 성장에 대해선 박수칠 일이다. 기업으로서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다시 올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현재,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책임은 결국 시장전체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