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웨어러블의 강자 핏비트를 21억달러에 인수한다는 사실이 2일 알려졌습니다. 이미 많은 외신을 통해 알파벳이 핏비트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입니다. 나아가 핏비트를 품은 알파벳의 노림수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2016년의 예언, 그리고 현재
알파벳이 핏비트를 품어낸 진짜 노림수는 무엇일까요? 시간을 돌려 2016년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웨어러블 시장은 어려웠습니다. 애플워치가 등장하며 스마트워치 가능성이 부상하는 등 나름의 호재가 있었으나 시장은 뚜렷한 모멘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IDC가 2016년 웨어러블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1위는 핏비트, 2위는 샤오미, 3위는 가민, 4위는 애플, 5위는 삼성전자로 집계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톱3 모두 고가의 스마트워치가 아닌 저가의 스마트밴드에 기반을 둔 회사들입니다. 물론 그들도 스마트워치 시장에 진출했으나 전체 웨어러블 시장의 대세는 아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웨어러블은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에도 답하지 못했고, 시장 자체의 수익성도 기형적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LG경제연구원은 “웨어러블 기기가 기술적인 진화를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소비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며 "웨어러블 기기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면 결국 비싼 IT 액세사리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2016년 12월 12일 미국 스포츠의학회(ACSM)의 연례 설문조사가 나옵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스포츠의학계에 몸 담고있던 전문가들이 2018년 최고의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한 ICT 기기로 웨어러블을 지목한 장면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스포츠의학계에서는 향후 웨어러블이 발전을 거듭하는 한편 스마트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정확한 신체 데이터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의 혁신이 이뤄질 것으로 봤습니다.

현재로 돌아와 2016년의 설문조사는 현실이 됐습니다. 이제 애플워치는 심전도 기능까지 탑재했고, 현존하는 대부분의 스마트워치들은 일찌감치 스마트폰에서 독립해 디지털 헬스 영역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장 지난 9월 애플워치5가 공개된 가운데 애플 신제품 공개 행사 현장에는 애플워치로 삶을 되찾은 이들의 인터뷰가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팀 쿡 CEO는 "애플워치가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에 마음이 따뜻하다"면서 "의학적인 헬스 리서치가 애플워치의 큰 기능"이라는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알파벳의 핏비트 인수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네스트라는 자체 스마트홈 전략을 가동하는 상황에서 '헬스케어 특화 기업' 핏비트의 웨어러블 경쟁력을 자사의 사물인터넷 생태계에 편입시키는 그림입니다. 여기서 헬스케어는 이용자의 민감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가 됩니다.

핏비트가 헬스케어 웨어러블로 유명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핏비트는 지난 10월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 화이자연합과 손잡고 이용자의 심장발작 징후를 사전에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싱가포르 정부와도 헬스케어 전반의 플랫폼 경쟁력 강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미국식약청(FDA)의 승인을 받아 체계적인 헬스케어 청사진을 그리는 장면도 연출했습니다.

물론 구글의 자체적인 웨어러블 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우선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은 2021년 2억2230만대의 출하량을 기록해 연 평균 18.4%의 성장률이 예상됩니다. 여기서 저가의 스마트밴드는 2017년 무려 39.8%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2021년 21.5%로 줄어들고, 2017년 27.9%의 점유율을 기록하던 스마트워치는 같은 기간 32.1%의 점유율 확대가 예상됩니다. 시장의 수익성은 어느정도 보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지난달 31일 자체 보고서를 통해 2020년 사용자들은 웨어러블 기기에 총 520억달러를 사용하며 2019년보다 27%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전세계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소비자 지출액은 410억달러에 이릅니다. 가트너의 책임 연구원인 란짓 아트왈 (Ranjit Atwal)은 "스마트워치 부문으로 유입되는 많은 사용자들이 손목밴드를 스마트워치로 교체하고 있다"면서 "브랜드 선두주자인 애플워치와 삼성 갤럭시 워치가 프리미엄 가격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반면, 샤오미, 화웨이 등의 저가 업체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의 스마트워치로 고가 제품들과 균형을 맞출 것이다. 가트너는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스마트워치의 평균판매단가(ASP)가 4.5%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웨어러블은 스마트밴드에서 스마트워치로, 이제는 이어웨어 디바이스로 무한 확장을 거듭하기도 합니다. 애플(에어팟), 삼성(갤럭시 버즈), 샤오미(에어닷), 보스(사운드 스포츠)와 더불어 아마존까지 이어웨어 웨어러블 시장에 진입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입니다. 이러한 고무적인 시장 전망도 알파벳의 핏비트 인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옵니다. 워치OS 전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현재 웨어러블 시장에서 스마트워치 분야의 양대산맥인 애플과 삼성전자가 긴장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알파벳의 핏비트 인수를 두고 헬스케어 시장 전략이 주효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알파벳의 핏비트 인수 동력으로 헬스케어 웨어러블 경쟁력을 확보해 이용자의 데이터를 기민하게 확보하는 것과, 웨어러블 자체 시장의 매력도가 거론되고 있으며 여기서 헬스케어를 통한 이용자 정보 확보에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깁니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힘있는 전략, 찬란한 미래
헬스케어 시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당장 아마존은 사내 비밀조직인 1492팀을 가동해 EMR 플랫폼과 온라인 진료 서비스가 가능한 헬스케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으며 투자 은행 JP모건체이스, 보험사 버크셔 해서웨이와 헬스케어 벤처 기업 헤이븐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필팩 인수 및 인공지능 스피커를 바탕으로 헬스케어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현재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 아마존, IBM, 오라클 등 6개 회사는 의료정보 관련 데이터 규격과 API를 상호 연동하기로 약속한 상태입니다. 패스트 헬스케어 상호운용성 자원(Fast Healthcare Interoperability Resource)라고 불리는 의료정보 데이터 처리용 플랫폼 표준 규격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제프 베조스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카오는 2017년 4월 서울대, 카이스트, 아산병원 등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50여 명 규모의 딥러닝 연구 그룹인 ‘초지능 연구센터(Center for Superintelligence)’를 집중 지원하기 위한 산학협력 협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지난해 8월 투자전문 자회사 카카오인베스트먼트를 통해 현대중공업지주, 아산병원과 함께 의료 데이터 전문회사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의료재단 산하 강북삼성병원과 카카오톡 챗봇 개발에 나서는 등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이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회사 라인은 지난 1월 일본 의료전문 플랫폼인 M3와 함께 라인헬스케어를 설립했고 일본에서만 7800만의 월간활성자수를 가진 라인의 모바일 플랫폼과 소니 계열로 활동하며 비대면 제약영업 활동을 온라인으로 끌어온 M3의 시너지를 낸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지난해 D2 스타트업 팩토리를 통해 두잉랩 등 3개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헬스케어 시장을 노리는 행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헬스케어 시장이 부상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빅 아이디어'의 측면에서 인간의 삶을 바꾸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동력도 거론되며, 헬스케어 시장 자체의 경제성도 꼽힙니다. 그러나 헬스케어가 민감한 이용자의 정보며, 이를 확보할 수 있다면 다양한 산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알파벳은 핏비트 인수를 통해 양질의 이용자 생체 데이터를 모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넥스트의 플랫폼을 보완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웨어러블 이상의 전략을 보여줄 전망입니다. 물론 알파벳은 핏비트 인수 발표가 난 후 "핏비트의 데이터를 광고에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역으로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다른 접근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또 다른 가능성, 구글의 방식
알파벳의 핏비트 인수를 두고 '데이터 확보, 시장의 매력'이 부상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구글만의 방식'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알파벳이 핏비트를 인수한 2개의 동력은 인정하면서도, 그 방식에 있어 미묘한 전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열린 메이드 바이 구글(made by google) 행사에서 다양한 하드웨어 라인업을 발표했습니다. 밤하늘을 찍는 픽셀4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새삼 '구글의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구글은 포털로 시작해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키웠고, 지금은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 등 초연결 플랫폼 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다만 직접적인 하드웨어 전략을 공격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지만, 하드웨어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메이드 바이 구글과 같은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구글이 이를 바탕으로 하드웨어 제조사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픽셀4로 삼성전자의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과 점유율 다툼을 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됩니다. 그렇다면 왜 구글은 '굳이' 하드웨어 플랫폼을 공개할까요? 자사의 소프트웨어 전략 연장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글은 스마트폰에서 넥서스에서 픽셀로 이어지는 많은 라인업을 발표하며 안드로이드 레퍼런스, 즉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하드웨어에서 최적화할 수 있나'입니다.

맞습니다. 구글은 하드웨어 플랫폼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자사의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오픈소스 기반의 안드로이드가 주축인 회사 다운 행보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자기들이 직접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어 보며 동맹 제조사들에게 일종의 하드웨어 설계 지침을 내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구글의 관심은 자기들의 소프트웨어 전략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 있고, 이를 위해 하드웨어를 '다루는' 중입니다.

알파벳의 핏비트 인수를 이러한 공식에 대입하면 흥미로운 전망이 가능합니다. 구글은 워치OS를 중심으로 동맹 제조사들과 함께 스마트워치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핏비트 인수를 통해 웨어러블 시장에서 새로운 레퍼런스를 세우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핏비트의 하드웨어가 구글 픽셀 시리즈처럼 되는 그림입니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스마트워치를 출시하며 구글과 완전한 결별을 꿈꿨으나 기어이 그 손을 놓지 못한 상태에서, 구글은 이제 핏비트를 통해 스마트워치 웨어러블 시장에서 새로운 레퍼런스를 준비하는 분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