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15일 서울 오토웨이타워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스타트업이 한국의 미래를 열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설립 3주년 기념 대담을 열었습니다. 3주년 행사 참석자들이 생각보다 적었으나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뒷 줄에 앉은 기자들에게 기사 발제 아이템을 하나라도 제공하기 위한 대담 참석자들의 열정에 감동받으며, 이제부터 현장에 나온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최성진 코스포 대표의 '찰진 진행본능'과 함께 코스포가 걸어온 길이 소개됐으며 장병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의 산업혁명 강연, 이어 교육업체 이투스 창업자이자 비네이티브 대표인 김문수가 보여준 극일의 의지, 반반택시를 운영하는 코나투스의 김기동 대표의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참 좋았을 것을" 이야기와 20대 젊은 창업가인 안서형 비트바이트 대표의 "돕고 살아요" 메시지까지 다양한 논의가 나왔습니다.

'왜'에서 '어떻게'로
행사의 메인 이벤트는 배달의민족 대표인 김봉진 코스포 의장과 장병규 위원장이 나눈 대담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온 가운데 몇 가지 의미심장한 포인트를 짚어 보겠습니다.

주 52시간 제도에 대한 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에도 근로단축이 예고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관련 보완책을 주문한 바 있습니다. 주 52시간 제도는 합리적인 고용환경을 구축하는 포석이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당장 주 52시간 제도를 운영할 경우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주장입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 4일 문 대통령과 만나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56%가 주 52시간 제도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8일 사옥을 방문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게임 업계는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은 6개월 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반면 생산성이 뒤처지는 우리나라는 1년이 지나도 게임이 나오지 않아 이를 어떻게 극복하냐가 당면 문제라고 말씀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탄력근로제 논의가 본격화된 이유입니다.

주 52시간 제도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필요하며 무엇보다 노동자의 권익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아가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면 업무 환경에 있어서도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런 이유로 일선 현장에서 나오는 '아우성'은 곧 '그럼 직원을 더 선발하던지'라는 비야냥으로 번지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기업이 아닌 중소 및 스타트업의 경우 이러한 전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한정된 직원을 운용하며 차라리 추가근무수당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직원 입장에서도 차라리 그 편이 낫다는 말이 나옵니다. 초과근무를 자원해서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은 이를 인정해주고, 그렇지 않은 직원은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장 위원장은 이 당연한 논리를 코스포 3주년 대담에서 논했습니다. 그는 "주 52시간 제도의 존재 이유는 이해한다"면서도 "추가근무를 하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인력 운용능력폭이 넓은 대기업과 달리 중소 및 스타트업의 경우 이러한 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장 위원장은 '답답하다'는 표현까지 쓰며 주 52시간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다소 현실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누군가 초과근무를 자원하며 인센티브를 벌어간다고 가정하면, 인센티브를 원하지 않아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언젠가는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또 초과근무의 여지를 한 번 열어주면 나중에는 '슬그머니' 주 52시간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역효과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소 및 스타트업의 사정은 대기업과 다르고, 여러가지 기회비용을 고려하는 한편 다양한 역효과를 보완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 나오면 다양한 가능성 타진도 가능합니다. 특히 스타트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곳 아닌가요.

불확실성에 대한 논의도 눈길을 끕니다. 최근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및 비전펀드가 연이어 투자 실패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자 업계에서는 ICT 버블 논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닷컴열품이 불었고, 2000년대 초반 묻지마 투자가 남발되며 벌어진 닷컴버블의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악몽입니다.

장 위원장과 김 의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지금을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합니다. 1, 2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아날로그의 현실에 기반을 둔 산업들이 핵심이었고, 이들은 현실에서 예측이 가능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3차,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온라인에 기반을 둡니다. 여기서 활동하는 기업들은(주로 ICT 및 스타트업) 처음부터 철저한 계획이라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을 무대로 비즈니스가 전개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현실에서 예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뭔가를 시도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1, 2차 산업혁명 시대의 제조업은 한 번 공장을 설치하면 돌이키기 어렵지만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은 코드 몇 개를 조작하면(물론 이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비즈니스의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무수한 시도가 벌어져야 하고, 실패해야 한다는 것이 장 위원장의 설명입니다. 즉 사전에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이건 무슨 난장판인가' 우려할 수 있으나, 사실 4차 산업혁명 자체가 무수한 실패에 따른 예측불가능의 시대기 때문에 '버블'이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물론 여기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ICT 스타트업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실패가 당연하고 이 과정은 '버블'이 아닐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이 낳은 불확실성의 기업들도 현실 오프라인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상장입니다. 현재의 버블 논란이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아 현실의 자금을 빨아들인 위워크 등 스타트업에서 기인했고, 이들이 상장을 계기로 흔들리며 우려를 보이는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과연 4차 산업혁명이 오프라인의 무엇을 바꾸는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져 더욱 논란이 증폭되는 중입니다.

▲ 코스포 3주년 행사. 출처=코스포

도발적인 주장, 규제
스타트업 규제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나와 이제 익숙해질 지경입니다. 무사태평, 현상유지만 원하는 공무원들의 나태함에 부딪친 스타트업의 열정적인 도전. 그리고 슬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업계에서 줄기차게 규제 개혁을 원하고 있으나, 문제는 역시 타당성입니다. 특히 스타트업 업계에서 원하는 규제 개혁이 막상 대중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스타트업 업계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이 논리를 "대한민국의 경제를 위해"라고 외치지만 간혹 일반 사람들은 "뭐야, 그냥 너희 잘 먹고 잘 살려고 규제 하나 열어주자는 거잖아"라는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는 형평성의 감정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남들은 그 생각을 못해서 그러냐, 그런데 너희를 위해 규제를 열어주면 그 규제가 존재한 이유를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경제를 위한다고? 헛소리"

물론 규제 자체가 너무 오래되거나 그릇된 경우도 있고,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규제가 '타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격하며 여론을 응집시키기도 어렵습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이 뒤섞여 결국 업계 이기주의로 '퉁'쳐지는 현상까지 벌어지지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장 위원장은 발상의 전환을 거론합니다. 그는 아예 징벌적 손해배상과 기업 집단소송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 위원장은 “미국은 집단 소송 및 징벌적 손해배상이 발전했으며 중국도 상당히 강하다”면서 “한국은 기업이 뭔가 잘못했을 때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미약하다. 결국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력한 사후규제를 하자는 뜻입니다. 지금 정부가 왜 규제를 할까. 만약 특정 기업에게 규제를 풀어줬다가 문제가 생기면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소극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규제는 열어주는데, 대신 문제가 생기면 기업이 책임져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면 규제 완화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스타트업은 물론 기업들 전체가 받아들이기는 위험한 제안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이 정도의 각오가 없다면 규제를 풀어달라고 마냥 '읍소'하는 것도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옵션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