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 PLAY G
게임 속 역대급 전쟁…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4년간 연인원 20만명 참가한 PC온라인 게임 대전쟁
   
▲ 바츠해방전쟁. 출처=엔씨소프트

[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 세상에도 선과 악이 존재하듯 리니지2 세계에도 선과 악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우리 DK혈맹은 과감하게 선보다 악을 선택했습니다. 악이 있었기에 선은 더욱더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악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겠습니다. 또한 리니지2 최고의 전투혈맹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리니지2 DK혈맹 해산 당시 아키러스

엔씨소프트가 신작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리니지2M’ 출시를 올 4분기로 확정하자 원작 PC온라인 게임 ‘리니지2’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그래픽, 사운드 등 당대 혁신을 담은 게임으로 평가 받은 ‘리니지2’는 오픈필드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PvP(이용자간 대결)이 핵심이다. 이 대규모 PvP에서는 장장 4년간 연인원 20만 명이 참가한 ‘바츠해방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바츠해방전쟁은 민초가 권력층을 뒤엎는 현실을 투영해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저서로 출판하기도 했다.

바츠해방전쟁의 모든 시초 ‘혈맹’

   
▲ 바츠해방전쟁 DK 연합 동맹식. 출처=엔씨소프트

바츠해방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은 혈맹(Blood Pledge, 피로 맺은 맹약)이다. 전작인 ‘리니지’에서 커뮤니티 콘텐츠이자 핵심 콘텐츠인 혈맹은 타 MMORPG의 ‘길드’와 흡사한 점을 지녔다. 하지만 혈맹은 랜선 인맥으로 치부되는 길드와 달리, 실제 지인만 합류할 수 있는 등의 제한으로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형성된 혈맹은 철저히 ‘이익 집단’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밀집된 힘을 바탕으로 희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사냥터 통제’ 및 ‘PK(player kill)’, ‘성 세금’ 등 게임 속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리니지2의 콘텐츠 역시 이러한 대규모 PvP가 일어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바츠해방전쟁이 일어난 당시 리니지2는 인스턴스 던전과 같은 일회성 콘텐츠가 없었으며, 단지 하나의 맵에서 모두가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다. 또 ‘리니지2’는 아이템 드롭, 경험치 감소 등 ‘캐릭터 사망 패널티’는 전작의 특성을 이어 받아 상당히 하드코어한 게임 중 하나다. 수백만원 상당의 아이템, 수십일치 경험치 등을 단 한 번의 PvP에서 손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캐릭터 성장을 위해서는 강한 혈맹의 비호가 필수적으로 뒤따랐다.

그런 끈끈한 유대감으로 형성된 혈맹은 오프라인에서도 인연이 이어졌다. 혈맹은 자체적으로 만든 현모(현실 모임)과 같은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유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러한 현모는 엔씨소프트가 직접 주최한 것도 아니다. 단지 플레이어들이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낸 새로운 커뮤니티 콘텐츠다. 그 자리에서 주로 오가는 내용은 단 하나다. 바로 ‘리니지2’뿐이다. ‘리니지2’ 하나의 소재를 갖고 모인 그들은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를 토대로 혈맹의 배타적인 성격은 더욱 강해졌다.

전란 4년·연인원 20만 명 참가한 바츠해방전쟁

#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바츠동맹(반(反) DK 혈맹 연합)이 패배할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맹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 서버 유저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떠한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터를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중략)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 바츠 서버를 향한 내복단 격문

   
▲ 바츠해방전쟁 연대기. 출처=엔씨소프트

바츠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제 1서버인 ‘바츠’에서 2004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약 4년간 연인원 약 20만 명이 동원된 PC온라인 게임 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PvP다. 이 전쟁은 바츠 서버를 장악한 혈맹 ‘드래곤나이츠(DK)’와 그들에게 대항한 모든 서버의 플레이어 간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당시 DK 혈맹은 서버 내 최고 레벨 및 강력한 아이템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집합소로 불렸다. 또 DK 혈맹은 다른 강한 혈맹과도 동맹을 맺어 견고한 지배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DK 혈맹은 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냥터 통제와 PK 등으로 서버 내 플레이어들에게 원성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리니지2’ 내 모든 서버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율은 달랐다. 세율을 올리자 서버 내 모든 플레이어가 적으로 돌아섰다. ‘리니지2’는 높은 세율을 부과하면 NPC 상점에서 판매하는 재료 아이템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소모성 아이템 ‘정령탄’ 가격 상승을 불러왔다. 하루에 플레이어가 수천에서 수만 개 이상 사용하는 정령탄은 ‘리니지2’ 내 필수적인 소모품이다. 세율로 인해 정령탄 가격이 뛰자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 바츠해방전쟁 내복단. 출처=엔씨소프트

외부 ‘리니지2’ 커뮤니티를 통해 바츠 서버의 폭정 현황은 퍼졌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내복단’이다. 바츠 서버에서 폭정에 대항하기 위해 옮겨온 이들은 대부분 1~10레벨 사이의 낮은 레벨로,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지 않으면 내복을 입은 모습과 비슷해 내복단으로 불렸다. 내복단은 DK 혈맹과 그의 동맹에 ‘막자(길을 막는 행위)’부터 몬스터를 몰아다주고 죽는 ‘자폭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대항했다. 이들과 함께 주력으로 대응한 기존 바츠 서버의 ‘반(反) DK 혈맹’ 연합군은 각종 정보부터 교전 위치 선정까지 DK 혈맹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리니지2’ 전체 서버 플레이어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바츠해방전쟁은 ‘반(反) DK 혈맹’ 연합군이 2004년 11월 기란성, 글루디오성, 오만의 탑, 아덴성 등 주요 거점을 모두 빼앗으며 승리로 대미를 장식하는 듯 했다. 하지만 연합군 내부에서는 전리품을 놓고 내분이 일어났고, DK 혈맹은 그 유명한 ‘아키러스’가 새롭게 군주로 올라서면서 전세 역전을 노린다. 불과 2개월 만에 DK 혈맹은 주요 거점을 모두 수복하고, 연합군에 가담한 플레이어를 무제한 PK한다고 선포했다. 1차 바츠해방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2개월 만에 전황을 뒤엎은 아키러스의 이미지가 현재까지도 각인돼 있다.

바츠해방전쟁의 의미와 또 다른 관점

   
▲ 바츠해방전쟁 공성전. 출처=엔씨소프트

1차 바츠해방전쟁(2004년~2005년) 이후 DK 혈맹은 2006년까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다. 하지만 업데이트 등 외적인 영향에 줄어드는 인원을 막을 수 없었다. 지속된 인원 이탈로 DK 혈맹은 2006년 5월 결국 해산한다. DK 혈맹의 해산으로 힘의 공백기를 맞이한 바츠 서버는 6혈 동맹이 새로운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막대한 전리품을 놓고 승자들의 반목으로 일어난 결과물이다. 이는 2007년 3월 2차 바츠해방전쟁을 불러왔고, 또다시 1년간의 전란 끝에 6혈 동맹은 무너지며 바츠해방전쟁은 막을 내린다.

대부분의 바츠해방전쟁은 민초가 폭정에 대항한 위대한 전쟁의 대서사시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질서(Lawful)를 위한 전쟁이 다시 혼돈(Chaotic)’을 가져왔다. 또 순수한 악으로 묘사된 ‘아키러스’는 2개월 만에 전황을 뒤집고 권력을 되찾은 리더십이 더욱 조명된다. 글루디오성, 디온성, 기란성, 오렌성, 아덴성, 인나드릴성 등 막대한 피를 요구하는 주요 거점 탈환과 오만의 탑과 같은 부의 생산지까지 모두 탈환했다. 그 후 폭정이라고 일컫는 사냥터 통제와 PK는 당시 ‘리니지2’ 어느 서버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리니지2’는 일반적으로 전쟁 중인 혈맹원을 사냥터 파티원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때문에 DK 혈맹과 같은 이익 집단은 사냥터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파티원을 전멸시킬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무차별적인 학살이 동반됐다. 단지 DK 혈맹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2개월 간 권력을 빼앗긴 그들은 겪은 굴욕과 수모를 아키러스를 통해 다시 회복했다. 권력을 되찾은 그들이 보여준 것은 폭정처럼 비춰지는 룰을 다시 적용하는 ‘질서(Lawful)’였다.

바츠해방전쟁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이 있겠지만, PC온라인 게임 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DK 혈맹의 관점에서 본다면 1차 바츠해방전쟁은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과도 같은 사자성어로 표현된다. 그러한 ‘리니지2’를 계승한 ‘리니지2M’에서도 이 같은 바츠해방전쟁이 수년간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리니지2M’은 모바일 환경에서 심리스월드 구현으로 바츠해방전쟁이 일어날 각종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황대영 기자  |  hdy@econovill.com  |  승인 2019.10.23  15:15:28
황대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태그]

#이코노믹리뷰, #황대영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APB
사실상 접근 환경이 pc보다 수월해져서 더 큰규모의 전투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2019-10-23 18:48:37)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SPONSORED
여백
여백
전문가 칼럼
동영상
PREV NEXT
여백
포토뉴스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