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열’을 받는다. 왜 위에서는 꼭 “내 추천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지…” 사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여러 번을 넘어,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윗 사람들에게 밑 보인 일이 있는가… 혹은 저 사람들이 날 싫어하나… ”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생각과 느낌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1) 그들이 날 싫어하는지, 아님 (2) 내가 제시한 내용이 맞지 않는지 테스트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3) 내가 과도하게 일에 대하여 ‘감정’을 실어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후자(3)이다. 각자가 하는 일에 ‘과몰입’한 나머지, ‘회사가 아닌 내 일의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고, 회사는 내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지금의 자리는 내가 만들었고, 나에 의해 운영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때 오히려 필요한 것은 내 일에 대한 주인의식 보다는 내 일에 필요한 프로의식이다. 둘의 차이는 간단하다. 전자는 내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고, 후자는 논리적으로 내 일이라고 증명하는 것이다.

 

[일은 논리적 설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직무)은 나의 것이고, 이를 어떻게 디자인할 지에 대한 우선권은 순수히 나에게 있고, 그걸 책임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고 착각한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직무는 입사 전에도 그 회사에 나보다 먼저 있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만나서 일부가 달라졌을 뿐이다.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쉽게 말해, 애초부터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변화가 있었다고 해도, 새롭게 부여된 사업계획상의 신규 목표에 의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하고 내부적으로 협의한 여러 활동을 하다 보니, 표면상 일부 변화가 있었던 것뿐이다. 이를 주도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책임이었기 때문에, 나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한 것이다.

그 과정에 ‘과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열심히 하다 보니, 일에 진심이 담겼고, 그래야만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보내고, 점점 높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결정되고, 이를 달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일만이 전부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마치 키우는 강아지처럼 ‘내 새끼’라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 일은 나 없이는 이전과 같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착각하고,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내 말이 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일에 ‘감정을 담고 싶지 않아도, 감정을’ 담아낸다. 회사로부터 부여 받은 특정 직무를 오랜 시간 하다 보니, 일에 갇히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로 그 일만은 나만 할 수 있다고,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착각이 아닐 수 있다. 회사의 중심이 되어, 리더 보다 더욱 중요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실제로 있다. 그런데, 그게 내가 아니라면, 철저히 일로부터 감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최대한 내가 원하는 쪽으로 리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노력해서 되든 안되든 그걸로 충분하다. 결과는 어디까지나 노력한 이에게 돌아가기는 하지만,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원하는 결과를 위해,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계하고, 최대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주도하는 것뿐이다.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리더에게 있으며, 그 과정에서 리더의 결정에 군말없이 따라야 한다.

따라서,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부터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미안하지만, 회사는 나 없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금의 일을 맡아도 별 문제 없이 돌아간다. 애석하게도 내 다음 후임자가 와서 더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은 담백한 생각을 담는 것이 최선]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최대한 빼고, 담백하게 생각만을 담아서’ 일하기를 권유한다. 모두가 조직의 목적 및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이를 조직화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책임자 및 리더의 몫이다.

나는 거기에 숟가락을 올리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게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그들의 욕망이 담긴 것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단지 그게 왜 되어야 하는지, 왜 필요한지, 이를 통해 더 많은 기회가 나타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 안에서 묵묵히 제시된 목표 달성에 필요한 여러 기획과 계획 그리고 실행하는 것뿐이다. 다른 것 없다. 그 과정에서 목표의 방향과 단계가 얼마나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거나 직접적 혜택을 가져다 줄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감정을 담게 되면, 여러모로 나에게 분리하다. 일을 잘 해내기 위한 감정 소모로 에너지 소모는 몇 배에 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여러 상황 인식에 객관적 관점이 무너지게 된다. 당연히 퇴근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그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무기력이 찾아온다.

또한, 무너진 이성 및 관점은 당연히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객관적 인지 능력이 무뎌 졌기 때문에, 감정이 앞서게 되고, 합리적 결정이나 그에 준하는 과정을 거치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니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이는 반복되면서, 남 탓을 하거나,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발뺌하거나 둘 중에 하나 혹은 둘 다의 태도를 모두 보인다. 과연 프로 의식과 전문성 등에 부합하는 모습이 되는 것일까.

그래서, 개인적 좌우명을 공유하고 싶다. “아님 말고” 이다. 이 좌우명은 도전 보다는 시도에 초점을 두었다. 단순히 효율 보다는 효과에 치중하여,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고, 이런 경험을 쌓는 것에 더 많은 의미와 목적을 두기 위해 세운 좌우명이다.

세상은 시행착오 없이는 단박에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쩌면 쉽고, 다년간에, 여러 사람을 거쳐 이미 정답이 정해진 몇몇의 일을 빼고는 모두 답이 없다. 특히 특정 결과를 내는 과정에 대한 답은 정해진 것이 없다. 그저 그 일을 맡은 누군가가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원하는 목적 및 목표를 위해, 누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누구나 납득 가능한 논리적 과정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가에 따라 달린 것이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신의 영역이다. 이를 디자인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하라는 뜻이 아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합리적 수준에서 기대하라는 뜻이다. 감정 보단 그래서 생각을 담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때는 ‘감정 보다는 공감을 기반으로 하는 논리(생각)’이 더 필요하다.

잊지 말자. 우리는 일부분의 일을 하기 위해 리더로부터 일임을 받아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 일의 주인은 결코 내가 아니다. 잠시 동안 그 자리를 맡았을 뿐이다. (영원히) 내 자리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