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 방영한 '에어 크래쉬 15 - 테네리페의 재앙'에서 두 대의 대형 여객기가 충돌하는 CG 장면.

40여년 전 스페인 테네리페섬의 작은 공항에서 역사상 최악의 항공참사가 발생했다. 활주로를 이륙하던 보잉 747기 2대가 충돌했다. 조종사·승무원·탑승객 총 583명이 사망했다. 당시 사고조사단은 인재와 천재(天災)가 결합된 불상사로 결론냈다. 그날따라 안개가 짙었고, 1개 뿐인 활주로는 비행기들로 북적였으며, 조종사와 관제탑간 통신 장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진단은 다르다. 리더십 분야의 구루(스승)로 불리는 에드먼슨 교수는 최근 펴낸 <두려움 없는 조직>(다산북스 펴냄)에서 참사의 핵심 원인이 ‘침묵’이었다고 분석했다. 테네리페 참사(The Tenerife Disaster)를 복기해보자.

1977년 3월 27일 오후 1시 15분쯤  휴양지로 유명한 스페인 그란 카나리아 섬의 ‘라스 팔마스 공항’(이후 그란 카나리아공항으로 개명)이 분리독립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을 받아 임시 폐쇄됐다.

이곳으로 향하던 항공기들은 부근의 테네리페 섬 ‘로스 로데오 공항’(테네리페노르테 공항으로 개명)에 임시착륙했다. 그 가운데는 KLM 네덜란드 항공 4805편과 팬아메리칸(팬암) 항공 1736편도 있었다.

2시간 뒤 테러위협 전화가 허위로 밝혀져 공항 폐쇄조치가 해제됐다. 로스 로데오 공항에서 대기하던 KLM기 반 잔텐 기장은 마음이 급했다. 우선 비행기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라스 팔마스 공항에 승객들을 내려놓고 지체없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후 5시쯤 KLM기는 활주로 끝까지 가서 360도 유턴한 뒤 곧바로 이륙할 태세였다. 그러자 부기장(클라스 뮤어스)이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기장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알아. 어서 관제탑에 허가요청이나 해!”

부기장은 관제탑에 무선연락을 취했다. “KLM은 이륙준비를 마쳤다.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후 관제승인(이륙준비 지시)이 났다. 이륙허가는 아니었다. 관제사는 이륙 이후의 경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선통신에 혼신이 생겼다.

정확한 교신을 위해 부기장이 관제탑을 다시 불렀다. 그때 기장이 끼어들더니 관제탑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륙합니다!” 부기장은 말문을 막혔다. 그는 끝까지 기장을 만류해야 했지만 ‘침묵’했다. 기장의 기세에 눌렸다.

허가없이 이륙하려는 KLM기에 대해 관제탑은 "우리가 부를 때까지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곤 몇 초간 통신이 멎었다. 관제탑은 KLM기가 이륙허가를 기다릴 것으로 믿고 팬암기와 교신을 했다.

“활주로를 벗어나면(평행유도로에 들어서면) 보고하라.” 네, 활주로에서 벗어나면 보고하겠습니다.” KLM기를 멀찌감치 뒤따라가던 팬암기는 KLM기가 활주로 끝에서 유턴 후 이륙하게 되면, 활주로 중간에 있는 출구를 통해 평행유도로에 들어가 대기할 예정이었다.

이런 교신내용을 듣게 된 KLM 항공기관사(슈뢰더)는 기장에게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이때도 KLM기장은 강한 어조로 “무슨 소리야? 벗어났어. 괜찮아.”라고 일축했다.

기장의 강압적 태도에 항공기관사는 반박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관제탑에 팬암기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다. 뭔가 불확실한 상황이란 걸 느꼈으면서도 ‘침묵’했다.

오후 5시6분 KLM기가 안개 낀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안개 속에서 팬암기가 나타났다. 불과 700m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KLM기는 V1(이륙 결심 속도)을 초과해 정지제동이 불가능했다. VR(기수를 올릴 수 있는 속도)에 도달한 것도 아니었다. 기장이 기수를 강하게 들어올리는 조작을 취했지만 비행기 동체는 활주로에서 20m정도 뜨는데 그쳤다. 팬암기도 충돌을 피하려고 급히 유도로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10초 후 KLM기의 동체 하부가 팬암기 조종석 뒷편 퍼스트클래스 라운지 윗부분에 부딪혔다. 팬암기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KLM기는 충돌지점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추락하며 대파됐다. 충돌로 두 비행기의 동체가 심하게 변형돼 승객 대부분이 탈출할 수 없었다. 비행기 연료가 유출돼 활주로는 불바다가 됐다. 583명이 숨졌다. 61명이 생존한 것이 기적이었다.

에드먼슨 교수는 "사고 당시 KLM 조종석에는 윗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란 ‘심리적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에드먼슨 교수에 의하면, 반 잔텐 기장은 ‘미스터 KLM’이란 별명답게 회사내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는 비행 경력 총 1만 2000시간, 사고기종 보잉 747기로만 1545시간을 자랑하는 베테랑 조종사이자 회사의 CF모델이었다. 747 기종 조종사들을 교육시키는 선임교관이면서 조종사들의 면허발급과 면허갱신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까지 쥐고 있었다.

이같은 반 잔텐 기장에게 부기장과 항공기관사가 이견을 제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면서도 '침묵'을 택했다. 나름의 처세법이었다.

훗날 항공업계는 CRM(Crew Resources Management, 승무원 자원 관리) 개념을 도입했다. 엄격한 상하관계로 인해 조직 내 의사소통·정보교환이 차단되지 않도록 상관이 명령을 내릴 때도 반드시 상호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