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가 마이너스 채권 금리 발행에 성공하면서 그리스의 봄을 예고하고 있다.    출처= GreekReport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불과 4년 전만 해도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축출될 위기에 봉착했던 나라다. 국가는 파산 상태였으면서도 구제금융 조건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투자자들이 서로 앞다퉈 이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특권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고 CNN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그리스가 최근 마이너스 금리의 정부 채권을 발행했다. 이것은 투자자들이 3개월 후 만기가 될 때까지 그 채권을 보유할 경우, 투자 금액보다 더 적은 돈을 회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저금리가 지속될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신호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스는 지난 9일 마이너스 0.02%의 이자율로 4억 8750만 유로(6400억원) 어치의 3개월 짜리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그리스는 이번 주 초에도 1.5%의 이자율로 1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다. 2012년에 그리스의 10년 만기 채권 금리는 24%에 근접했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 금융을 요구했던 나라, 정부 부채가 GDP의 180%가 넘는 최고 수준까지 올랐던 나라로서 극적인 반전을 이룬 것이다.

유럽 각국 정부들이 참여한 기구인 유럽재정안전기금(Euro Stability Mechanism)에 따르면 그리스는 지난 8년간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040억 유로(270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지원 조건으로, 그리스 정부는 재정 지출을 삭감했고, 공무원 수를 25% 줄였으며, 공공부문 임금을 30% 삭감했다. 이로 인해 소비 지출은 급감했고 실업률은 급증했다. 그리스 경제는 이전의 4분의 3 수준으로 축소됐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이제 그리스는 유럽의 마이너스 금리와,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유럽중앙은행(ECB)의 자산매입에 힘입어 개혁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리스도,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체코 같은 작은 나라들처럼 마이너스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스의 마이너스 금리 채권 발행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요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발행 채권 대부분은 국내 은행들이 담보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금융위기 이후 다른 선진국에서 나타났던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전세계의 가장 강력한 중앙은행들은 경기 침체를 막고 성장을 부양시키기 위해 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달 기준금리를 인하해 마이너스 0.5%까지 낮췄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에 따르면, 지금까지 15조 달러어치의 마이너스 금리 정부 채권이 팔렸다. 독일에서는 30년 만기 장기 채권의 금리조차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oAM)의 아타나시오스 뱀바키디스 G10 외환전략팀장은 "전세계에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특히 ECB가 그런 조치를 취한 후 많은 은행들이 이를 따르고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의 효과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저축하는 사람들을 불리하게 만들고, 자산 버블을 부풀리고,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저금리보다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성장을 촉진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치는 "국가 신용도가 높은 나라의 장기 채권 금리까지 마이너스를 보인다는 것은, 시장 상황의 왜곡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봄은 오는가

그러나 BoAM의 뱀바키디스 팀장은 “투자자들이 그리스의 새로운 개혁지향적 정부 정책과 실질적인 현금 잔고 개선에 고무되어 있다”며 이것이 그리스 채권과 독일 채권 금리 차이가 좁혀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피치는 "그리스의 총 정부 부채 상황이 예외적으로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유럽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지는 상황에서, 그리스 경제는 2019년에 2.1%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전체의 제조업 활동이 부진에 빠져 있지만 그리스의 9월 제조업 활동은 호조를 보였다.

그리스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산업의 부활에 힘입어 각종 경제지표들이 좋아지고 있고, 실제로 상가나 호텔 등도 이전과는 달리 활기를 띠고 있다. 국민들의 분위기도 매우 낙관적이다. 그리스에 봄이 오고 있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그리스를 찾은 관광객은 32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스 인구 1100만의 세 배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관광과 관련한 일자리는 약 98만 8000개로 그리스 전체 일자리의 4분의 1에 육박한다. 관광 분야의 GDP 규모는 전체 그리스 GDP의 20%에 달할 만큼, 관광산업이 그리스의 경제회복에 주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테네 중심가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부동산 가격이 31%나 치솟았다. 본격적인 경제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신호다. 올들어 주식가격 역시 46%나 크게 올랐다.

그리스 정부는 내년 GDP 성장률 목표를 2.8%로 잡고 있다. IMF의 당초 연평균 예상치 0.9%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