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아닌데 죄라고 불리는 죄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법률상 죄가 아니지만 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괘씸죄’입니다. 괘씸죄가 별도의 법률 개념은 아닙니다. 근대 형법상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써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지만 여론 법정에선 엄연히 존재합니다.

죄형법정주의가 확립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군주와 왕족의 존엄을 해치는 불경한 자들을 불경죄로 처벌을 했었습니다. 주권자인 군주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체제에서 백성을 다스렸던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이 불경죄는 주권자가 국민이 된 민주국가에서 이른바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으로 재단되는 괘씸죄로 변모했습니다. 법적 처벌은 없지만 대다수 국민감정과 국민 정서를 거스르면 받는 죄입니다.

몇 년 전엔 자신이 위험하지 않는 상황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하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이 괘씸죄를 실제 처벌하는 법이라는 논란도 있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는 괘씸죄로 대기업이 공중분해되기도 했습니다. 고무신 생산으로 시작해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한 국제그룹 이야기입니다. 당시 정치자금을 적게 낸 것이 괘씸죄가 되어 그룹이 해체되었다는 이야기는 대한민국 기업 비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괘씸죄는 불경죄에 가깝습니다.

방송인 이창명 씨는 최근 종편을 통해 방송에 복귀했습니다. 과거 음주운전 논란 이후 대법원에서 음주운전에 대해 무죄를 받았습니다만 대중의 시선은 아직 냉랭합니다. 당시 논란이 일어났던 정황과 이창명 씨의 대응 과정에 대해 대중은 여론 법정에서 이미 괘씸죄 선고를 내린 것입니다.

기업 CEO가 여론 법정에서 괘씸죄 적용을 받지 않으려면 평소 혹은 위기 시 다음 두 가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첫 번째, 기대치 관리입니다. 유승준 병역 기피 이슈는 기대치 관리 실패로 괘씸죄 논란을 일으킨 가장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는 1997년 데뷔 이후 바른 청년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다가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 병역 의무를 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결과 17년간 한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연 매출 1700억원을 돌파하며 인플루언서 대명사로 자리 잡았던 임블리의 하락 과정 속에도 대중에 대한 기대치 관리 실패가 괘씸죄 적용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평소 친한 언니처럼 느껴졌던 임블리는 제품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비정상적인 고객 응대와 홍보에 집중했다고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에 누적된 반감이 폭발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계속된 사과에도 오히려 안티가 되어버린 고객과 대중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유승준과 임블리 모두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팬덤은 이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곤고했던 팬덤에 충성심과 기대감이 배신감으로 급변하는 순간은 신뢰가 무너질 때입니다. 이때 거짓말과 무관심이 핵심적인 원인이 됩니다.

두 번째, 커뮤니케이션 태도입니다. 최근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특정 일본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대표적인 타깃 중 하나는 유니클로입니다. 일본 본사 임원이 “한국에 일어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대중으로부터 괘씸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태도 원인은 먼저 정확한 상황에 대한 인지 부족으로 발생합니다. 최악에 경우 정확한 상황을 애써 부인하면서 비합리적 신념과 세계관에 집착한 나머지 핵심 이해관계자가 표출하는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상호작용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대중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최악에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선 기업 CEO와 주요 경영진의 공감 능력 향상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반에서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권장되어야 합니다.

괘씸죄는 항상 대중과 다수의 언론이 생산하고 온라인에서 확산 재생산됩니다. 이 과정에서 다수 언론과 대중은 표면상으로 사회적 책임을 묻지만 이른바 ‘무릎 꿇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어 곤혹스럽습니다. 괘씸죄의 대상이 되는 조직과 개인은 대부분 한 분야에 일가를 이뤘거나 승승장구하고 있는 주체입니다. 법적 위기는 아니지만 실수가 노출되면 명성과 평판 측면에서 떨어질 높이가 높고 잃을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괘씸죄 판결을 받으면 과거에는 무조건 피하자는 전략이 대세였습니다. 사과 표현과 함께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때도 언론과 대중을 향한 적극적인 해명이 오히려 그들에 대한 도전이 되고 또 다른 논란으로만 규정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언론과 대중을 이기는 사람과 조직은 없다고 학습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직과 개인이 언론과 대중에 맞서는 일종의 저항도 새로운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빠르고 정확한 상황 판단을 통한 사실 관계 정립과 이를 통한 설득과 교정입니다. 의견과 주장, 추정이 아닌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자와 공감 가능한 맥락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이 위기를 넘기자는 목표가 아니라 개인과 조직의 생존과 영속성 확보가 목표여야 합니다. 이는 괘씸죄로 인한 위기뿐 아니라 모든 위기관리의 최종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