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지만 이 문장을 읽고 곤경에 빠지는 것은 철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도대체 소설이, 그러니까 대중의 ‘읽어짐’을 위해 쓰여지는 소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다니!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 알아보기 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줄거리에 대해 알아보자. 이 책은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은 총 네 명, 총 7부로 구성된 작품은 토마시의 삶을 보여주는 1부와 5부, 그의 연인 테레자의 삶을 보여주는 2부와 4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그리는 7부가 한 축을 이루고, 또 다른 연인 사비나와 프란츠의 삶을 그리는 2부와 6부가 다른 축을 이룬다. 작가는 이 네 사람의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지, 연인 혹은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우선 첫 번째 연인인 토마시와 테레자의 관계는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의사인 토마시는 여자와 섹스는 하지만 결코 잠을 자지는 않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여자들과의 섹스는 축구경기 관람처럼 포기할 수 없는 일이며, 그저 에로틱한 애정에 불과하다. 반면 보헤미아 술집 종업원인 테레자는 세상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매사를 비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서로 비슷비슷한 육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갇혀 있는 뻔뻔스러운 세계’를 살아가던 중, 토마시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토마시를 통해 아무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토마시의 가벼운 사랑, 즉 바람기로 인해 질투심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두 번째 연인 프란츠와 사비나는 반대의 관계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맺어진 관계인 것. 토마시의 옛 애인 사비나는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해 아내가 있는 남자 프란츠를 만난다. 공산주의 세계에서 이념을 강요받으며 자란 사비나는 억압된 세계에게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며, 아버지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프란츠는 관계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토마시와 테레자, 프란츠와 사비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테레자는 섹스를 유희로 생각하는 토마시를 이해할 수 없으며, 사비나는 음악을 해방으로, 행렬을 일탈로 생각하는 프란츠를 이해하기 어렵다. 조금은 다르지만 어쩌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두 연인의 결론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토마시와 테라자는 서로의 곁을 지키다가 함께 죽음을 맞이했으며, 사비나와 프란츠는 결국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짐을 선택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삶의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니체의 영원회귀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이 영원히 회귀한다는 믿음을 말한다. 자연의 모든 과정을 결정하는 유한한 수의 요인들이 존재하므로, 그 수의 가능한 조합들이 존재한다면, 이 수가 다 찬 뒤에는 이전의 조합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 니체는 이처럼 영원히 창조되며 영원히 파괴되는 세계를 ‘디오니소스적 세계’라고 이야기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초인)의 태도를 니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소설 속 주인공 토마시는 소설 중반부에 들어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으므로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삶이 끊임 없이 반복된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혹은 삶이 한 번 뿐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건 어쩌면 삶의 반복 여부와는 관계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