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쿡의 파산 신청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쫓기는 대마가 위태롭게 보여도 반드시 살 길이 생겨나서 쉽사리 죽지 않는다는 바둑 격언이다. 공격하는 쪽에 무리가 생길 수도 있고, 쫓기는 쪽에서는 수습과 타개에 최선을 다하므로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전에서 들어가면, 의외의 상황이 발생한다. 대마불사 격언만 믿고 방심하다가 실착, 완착으로 대마를 죽이는 일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마추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전문기사들까지 대국에서도 심심찮게 대마를 몰사시키곤 한다.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업을 넘어,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면, 어떤 위기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이 착각하게 된다. 대마불사의 신념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적인 여행사 영국의 토마스 쿡이 파산 위기를 맞았다. 지난 9월 20일 금요일, 미국의 CBS 뉴스는 지속되는 영업 부진에 허덕이는 토마스 쿡이 자금난 해소를 위해 2억 파운드(2억 5,000만 달러)의 추가 자금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부채 해소를 위한 자금 차입에 실패하면 토마스 쿡은 파산 선언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178년 역사의 여행사 토마스 쿡. 2007년 2월, 영국 패키지 여행사 마이 트레블 그룹과 합병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은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8년 기준, 전체 매출액은 10억 파운드(1조 5천억 원). 하지만 2019 5월 말 기준, 12억 5,000만 파운드(1조 9천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경영 위기에 빠졌다.

 

토마스 쿡에 대한 언론 보도

토마스 쿡 그룹은 일단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해결 방안을 모색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외국 기업에 매각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현재 토마스 쿡이 매각을 논의하는 기업은 글로벌 리조트 브랜드 ‘클럽 메드’ 소유주 중국의 포선그룹. 이미 토마스 쿡의 지분 5분의 1(18%)를 소유하고 있는 포선그룹은 토마스 쿡의 여행 사업 부문을 인수해서, 급증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유럽 여행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생각이다. 만약 포선그룹이 토마스 쿡을 합병한다면, 세계 최대 여행사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의 해외 여행객 수는 매년 증가. 중국은 2015년에 전 세계 해외여행인국 12억 명 가운데 10%인 1억 2천만 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매년 10% 증가의 빠른 속도로 해외여행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해외여행 지출금액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이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여행지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 그리고 이들 지역을 찾는 여행객들은 매년 20% 이상씩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포선그룹이 토마스 쿡을 인수한다면, 중국인 관광객만으로도 리조트와 호텔 등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포선그룹은 토마스 쿡의 항공 사업까지 인수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유럽 항공법은 유럽 항공사는 유럽 투자자들에게만 소유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선 그룹은 현재 토마스 쿡과 호텔 숙박업과 패키지 여행업만 매각 논의를 벌이고 있다. 토마스 쿡 매각 가능성은 50% 이상.

 

토마스 쿡 위기의 실상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번 짚어볼 것이 있다. 토마스 쿡은 왜 경영 위기를 맞게 되었을까? 178년 역사의 세계적인 여행사가 느닷없이 중국 기업과 매각 논의를 벌인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세계 언론은 토마스 쿡이 경영 위기에 대한 분석 기사와 함께, 전문가들을 인용해서 토마스 쿡이 경영 위기에 빠진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브렉시트로 인한 정치 불안감으로 여행객 감소. 둘째, 이란과 사우디 사태로 항공 연료비가 갑작스럽게 증가. 셋째,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호텔 비용까지 덩달아 올랐다는 것.

그런데 과연 정말로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178년 역사의 세계적인 여행사 토마스 쿡이 경영 위기를 맞은 것일까? 물론 이 세 가지 이유도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토마스 쿡 사태의 저변에는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여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화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패키지 형태의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토마스 쿡이 제공하는 고급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안내원에 의해서 인도되는 패키지여행은 최근의 여행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모바일앱으로 저가 항공사의 항공권을 구입, 공항에서 자동차를 렌트해서, 여행지로 이동하고, 주변 맛 집을 순례하며, 저가 숙박업소에서 잠깐 취침하는 여행을 희망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여행 편의를 돕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구글, 에어비앤비, 우버 등을 이용하면, 항공권 예약, 통역, 숙박, 자동차, 여행안내, 지도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 발전이 여행 패러다임을 바꿨다. 따라서 토마스 쿡의 경영 위기는 자유여행 발전으로 패키지 여행업이 한계를 맞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환시대의 산업 구조

포선그룹이 토마스 쿡을 인수한다면, 포선그룹의 조만간 세계 여행업을 석권할 것이다. 중국 여행객들만으로 손익분기점을 충족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포선그룹의 발전은 자명한 사실. 여행 패러다임 변화로 인해 경영 위기에 빠진 기업을 인수해서, 여행 패러다임 역행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해서 성공하는 특별한 사례가 될 것이다.

향후 5년 내 중국인 해외여행객 수는 2억 명으로 추산된다. 아시아, 미주보다, 유럽을 선호하는 중국 관광객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유럽 각지를 방문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중국 여행객들을 위한 서비스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인프라를 확보한 중국기업들이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유럽의 식당, 극장, 위락시설들을 매입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유럽의 대도시들은 중국화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여행객들을 위한 중국기업의 상주인구들이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동세서점(東勢西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제력을 가진 중국이 서양을 지배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사례는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날 것이다. 세계적인 패러다임 변화나, 트랜드 변화로 인해 도태되는 기업들을 중국 기업들이 흡수해서, 엄청난 인구 경쟁력을 바탕으로 재생시켜, 자국 중국만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미국이 멜팅팟 이론으로 세계 문화를 수용했듯이, 중국은 인구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기업들을 전부 중국 기업으로 수용하는 기업 용광로를 만들어낼 것이다.

근대화 이전의 중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에 의해 유린당한 후진국이었지만, 현대 중국은 유럽도 손 못 대는 5G 기술과 최첨단 IT제품을 생산하는 초강대국이다. 미국과 견줄 초강대국으로 G2 중국이 유럽을 지배하는 날이 찾아온다. 제국의 역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