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마이크로 LED '더 월 럭셔리'. 출처=삼성전자

[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평범한 직장인들의 월급에 해당하는 가방, 연봉에 해당하는 시계 등 일반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제품들이 있다. 이른바 명품이다.

최근 스마트폰과 TV 등 일반 소비재 가전에도 명품 바람이 불고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다양한 마케팅 전략으로 무장해 상위 0.01% 극소수에 불과한 ‘슈퍼리치’를 겨냥하고 있다. 70억 원 대 LED TV, 5000만 원 대 스마트폰 등은 어디에서도 쉽게 살 수 없는 차별성을 띠며 철저한 명품을 지향하고 있다.

대당 5000만 원 스마트폰 베르투, 슈퍼리치들의 노크에 베트남 재진입

최근 스마트폰 시장이 5G(5세대이동통신) 덕분에 프리미엄 제품 판매량이 급증했다. 1년간 1000달러(약 120만 원) 이상 제품이 5배 이상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런 제품들은 양산형 프리미엄 제품일 뿐, 진정한 명품에 미치지는 못한다. 스마트폰 명품 시장만 파고드는 업체는 베르투(Vertu) 사(社)다.

과거 핀란드 노키아 계열사에서 분리한 베르투는 영국, 터키 등의 자본에 인수되며 소유주가 자주 변경됐다. 지난 2017년 3월 터키 기업가 하칸 우잔 소유의 바퍼튼사(社)에 매각됐지만, 4개월 후 파산하고 영국 생산공장을 문을 닫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베르투는 베트남,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 슈퍼리치를 겨냥한 제품을 내놓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 베르투 스마트폰 애스터P. 출처=베르투 홈페이지 갈무리

베르투의 스마트폰은 최저 사양이 4300달러(약 509만 원)부터 시작한다. 이 가격이면 삼성전자 5G 최고급 스마트폰을 4대를 살 수 있다. 베르투의 최고급 모델은 4만3000달러(약 5092만 원)를 육박한다. 중형 자동차 한대 값에 비견되는 베르투 스마트폰은 성능이 매우 뛰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수가공과 차별성을 가진 명품이라는 희소성 하나에만 가치를 뒀다.

최근 베르투는 베트남 시장에 2년 만에 다시 진입했다. 과거 파산의 여파로 다수의 해외 지사를 철수했으나 현지의 슈퍼리치들은 희소성과 차별화를 가진 베르투의 스마트폰 판매 재개를 꾸준히 타진했으며, 베트남에 재진입한 베르투는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와 함께 늘어나는 슈퍼리치의 수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는 분석이다. 실제 베트남에서는 베르투 스마트폰을 부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다. 

베르투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신형 스마트폰 애스터P를 출시한 바 있다. 티타늄으로 제작된 애스터P는 블랙, 화이트 모델이 5167달러(약 611만 원), 금을 사용한 황색 모델은 1만4146달러(약 1674만 원)에 출시됐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베르투 스마트폰은 빈부격차가 비교적 심한 국가를 중심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베르투는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규모를 일반 스마트폰 시장을 포기하고, 극소수 차별화된 명품 시장만을 공략 중이다. 특별한 소재로 제작과 디자인, 수가공으로 소유자의 이름까지 새기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명품 스마트폰을 지향하며, 남들과 차별화된 제품을 갖고 싶어 하는 슈퍼리치들의 소비 심리를 파고들고 있다.

람보르기니 스마트폰부터 3000만원 진공청소기까지

▲ 2017년 출시한 람보르기니 스마트폰 후면

명품 자동차 브랜드로 유명한 람보르기니는 지난 2012년부터 꾸준히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에 걸맞게 가격 역시 200만원을 상회하는 스마트폰을 선보였지만, '성능의 전쟁'에서 제값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람보르기니는 지난 2017년 스마트폰 '알파원'을 통해 특유의 디자인과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고급 가죽 케이스를 무기로 삼아 명품 스마트폰 시장에 지속적으로 진출했다. 가격 절반 수준의 스마트폰보다 못한 성능을 지녔음에도 명품이라는 브랜드 가치만 더욱 내세웠다.

10만원 수준의 스마트폰이 쏟아지는 마당에 람보르기니 스마트폰은 '명품'을 통한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당시 최상급 스마트폰인 갤럭시8S, 아이폰8과 비교했을 때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나은 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성능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소비자의 잠재적인 상대적인 가치를 더욱 강조했다. 

더 과거로 돌아가면 ICT제품에서 명품 브랜드를 마케팅으로 사용한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진공 청소기 부문에서다. 현재는 다이슨, 삼성, LG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고성능 제품으로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지만, 과거에는 명품 브랜드 하나만으로 소비자를 현혹한 사례가 있었다.

일렉트로룩스 에르고라피도의 진공청소기다. 단 한대만 제작된 이 진공 청소기는 3730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을 사용해 폴란드 디자이너가 제작했다. 그 가격은 무려 1만5000유로(약 2700만원)에 달했다. 이 청소기는 판매용이 아닌 전시, 마케팅 용도로 사용됐다.

현재의 무선 청소기보다 월등히 낮은 성능을 가진 이 청소기는 일렉트로룩스 에르고라피도의 동일한 모델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실제 사용보다는 명품 브랜드를 앞세워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전시용으로 사용됐다. 명품이 ICT 제품에도 점점 영역을 넓히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수억 원을 넘어서는 TV…슈퍼리치 홈시어터 취향 겨냥

TV시장에서도 프리미엄 디스플레이라고 일컫는 OLED 8K, QLED 8K 상위 등급으로 명품급 디스플레이가 따로 있다. 바로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마이크로 LED(발광다이오드)다. 매우 고가인 이 제품은 B2B(기업간거래) 시장만 존재했지만, 최근부터 B2C(기업과소비자간거래)로 개방되면서 슈퍼리치를 구매 타깃으로 삼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소니사(社)는 초대형 16K 마이크로 LED ‘크리스탈 LED 디스플레이’를 일반 소비자용으로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소니는 이 제품을 극장용 등 B2B로만 판매한 바 있다. 이 제품은 해상도 부분만 보더라도 16K로, 8K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시장 상황을 한 발 더 앞서 나가고 있다. 

소니 크리스탈 LED 디스플레이는 각각의 모듈로 구성돼, 790인치(가로 19.2m, 세로 5.4m)에 달하는 제품을 구성하기 위해 576개(24x24)의 모듈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가격 역시 폭발적으로 뛰어오르고, 설치비 및 음향장비 설치까지 총 70억 원을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금액으로, 홈시어터 구축을 위한 슈퍼리치를 위한 제품이다.

▲ 삼성전자 마이크로 LED '더 월 럭셔리'.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 역시 이 같은 명품 TV시장에 진출했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로 LED 기술 기반 ‘더 월 럭셔리’를 지난 6월 글로벌 출시하고 홈시어터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 제품은 베젤(테두리)이 없고, 두께는 29.9mm에 불과해 벽에 부착 시 일체감을 주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최대 2000니트 밝기와 120헤르츠의 주사율, HDR10+, AI 업스케일링 등 최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이 탑재됐다.

삼성전자는 가정용 UX(사용자경험) 사용성 적용과 원활한 설치 공급 등을 고려해 146, 219, 292형 등 3가지 정형 사이즈로 출시했다. 홈시어터 특성상 고급 사운드 시스템과 함께 패키지 형태로 구성됐고, 맞춤형 설치가 필요해 지역별 B2B 유통 경로로 별도 주문해 판매된다. 가장 작은 사이즈인 146형의 경우 패키지로 구매 시 약 5억 원 수준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슈퍼리치 시장만을 겨냥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더 월 럭셔리는 프리미엄을 너머 명품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다. 단지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B2B 업체와 손잡고 홈시어터 패키지 등을 구축한다”라며 “가격대는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슈퍼리치가 주요 고객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슈퍼리치를 겨냥한 명품 시장은 가방, 시계, 의류 등 개인 액세서리에 편중된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신흥국 및 글로벌 경제의 성장과 함께 ICT 제품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슈퍼리치를 겨냥한 시장은 한시적으로 그치지 않고, 개인화 추세에 편승해 보다 발전, 다른 산업 군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