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선수들을 포함해 모든 골퍼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날씨를 확인한다. 비나 바람에 따라 엄청난 영향을 받는 게임이 바로 ‘골프’이기 때문이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시합에 나가는 선수들은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샷을 할때마다 바람을 계산해야 하지만 돌풍이 불 때는 바람의 시기를 잘 봐야하기 때문이다. 가끔 바람을 철저히 계산해 스윙을 했는데 바람이 안 불거나 갑자기 멈추는 경우, 선수들의 애끓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실제 150야드에서 오르막이 심한 앞바람(역풍)을 계산한다면 180야드까지 볼 수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멈추면 그린 뒤에 벙커나 여유의 공간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낭떠러지로 넘어가거나 오비(OB)가 나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바람을 타지 않기 위해 선수들은 넉다운 샷을 날리기도 하고, 최대한 낮게 공을 쳐 바람을 피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자연과의 싸움에서 인간인 골퍼는 늘 역부족을 느끼게 마련이다.

게다가 골퍼 입장에서 억울하게만 느껴지는 ‘골프 룰(Rule)’들이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라운딩을 하면 그린이 바짝 마르게 되는데 내리막 짧은 퍼팅은 마치 유리 판에서 퍼팅을 하는 것처럼 매우 빨리 굴러간다. 그래서 선수들은 가슴이 콩닥콩닥, 손은 벌벌 떨며 퍼팅을 하게 된다.

지난해 5월 PGA투어 취리히클래식에서 우승을 놓친 미국의 윕심슨 선수는 강한 바람에 공이 움직였음에도 페널티를 받아야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1타 차이로 준우승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페널티로 인해 피해를 본 선수가 의외로 꽤 많다. 얼마 전 매경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K선수가 우승 경쟁을 벌이던 중 짧은 퍼팅을 남겨둔 상황에서 갑자기 돌풍이 불어 볼이 저절로 움직인 적이 있다. K선수는 이로 인해 1페널티를 부여 받았고 우승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경우도 있다. 바람 탓을 할수도 없고 그저 운이 없거나 억울하다고 밖에 할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골퍼가 어떻게 손 써볼 기회도 없이 억울하게 1타의 페널티를 받아야했던 룰이 바뀐다는 소식이 들린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 가 올해 1월1일부로 ‘명확한 자연상황으로 인한 볼의 움직임은 벌타가 부여되지 않는다(18조 2-b)’라는 규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프로골퍼로서 참으로 반가운 희소식이다.

‘바람 부는 날 그린에서 선수들의 손이 떨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바짝 마른 내리막 퍼팅에 뒷바람(물체의 진행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마구 불거나 신중한 파 퍼팅을 남기고 있는 상황에서 바지가 바람에 펄럭이면 일단 어드레스가 신경이 쓰이는데 바람에 공마저 흔들리는 경우 선수는 어이없게도 1타의 페널티를 받게 된다.

게다가 ‘볼이 움직였다는 기준을 어디서부터 볼 수 있냐’는 의문이 생기는데 선수가 공을 치기 위해 어드레스를 하는 순간부터 시작에 들어가기 때문에 선수가 어드레스를 취했냐 아니냐에 따라 구제가 되는지 아닌지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많은 경우 선수들도 억울하기 때문에 어드레스를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동반하는 마커 입장에서 분명히 어드레스를 했다고 보여질 때는 그야말로 언쟁이 생기게 된다. 경기위원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느라 시합이 지연되기도 한다.

이렇게 한참 실랑이가 벌어지고 라운딩 시간이 길어지면 끝없이 지루하게 기다리는 뒷팀은 스트레스를 받을수 밖에 없다. 이것 말고도 골퍼들이 “이건 너무해”라고 생각하는 룰들이 제법 있다. 우선 그린 위에 스파이크 자국을 수정하지 못하게 하는 룰을 들 수 있다. 같은 돈을 내고 치는데 오전과는 달리 오후에 라운딩을 하는 골퍼는 신발자국 투성이인 그린에 화가 치민다.

게다가 중요한 파 퍼팅을 앞두고 홀컵 앞에 불뚝 솟아오른 저 스파이크 자국을 수리할 수 없다는 것은 여간 억울한 것이 아니다. 시합 때도 스파이크 자국인지 볼 자국인지를 마커에게 확인하고 볼 자국이면 벌타 없이 수리를 하도록 하지만 스파이크 자국일 때는 터치조차 할 수 없으니 신경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막상 선수끼리는 꼼꼼하게 따지거나 딱딱하게 굴지 않고 편하게 넘어 가기도 한다. 다만 내기가 붙은 라운딩에서는 볼 자국도 스파이크 자국이라며 딴지를 걸어 바꿀 수 없는 골프룰을 악용할 때도 있고 그로 인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또 다른 억울한 룰은 티샷을 멋지게 때려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보낸 후 여유있게 걸어가 보니 누가 치고 간 디봇트 자리 안에 공이 또아리틀고 있을 때다. 일명 ‘미니 벙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또 다른 경우는 티샷을 한 뒤 ‘나이스 샷’이라는 환호와 박수까지 듣고 페어웨이에 가보니 내가 친 공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때만큼 황당한 일도 없는데 더욱 억울한 것은 공을 찾는 시간이 5분 이상 소요되면 일명 ‘죽은볼(로스트 볼)’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1968년에는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드 빈센조’ 선수가 1타차로 억울하게 우승을 놓친 적이 있다. 그 날 로베르토 선수는 65타를 치고도 66타로 적은 스코어카드를 확인하지 못한 채 스코어 카드에 서명을 해서 우승컵을 날린 사례가 있다. 한 타라도 적게 적어 냈다면 아예 실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실격보다는 준우승을 선택했겠지만 로베르토선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3년 전쯤 미국 LPGA시합에 참가한 미셸 위 선수가 스테이트 팜 라운딩에서 리더보드에 이름을 올리고 선전했었음에도 실격을 당한 경우가 있었다. 미셸 위는 그날 라운딩을 마치고 스코어카드에 싸인하는 것을 깜빡 잊어 어이없게도 실격 처리되는 비운을 겪었다. 당시 미쉘 위 팬들은 ‘스코어카드에 싸인이 안 돼 있으면 선수를 불러 확인하고 다시 하면 되는데 굳이 실격을 시켜야 하냐’며 입을 모았지만 냉정한 골프 룰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은 한숨 쉬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불공평한 골프룰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개선되기 때문에 골프를 칠 맛이 나는 것 같다. 사실 골프 룰을 잘 이해하면 골퍼에게 굉장히 유리한 것들도 많다. 골프룰을 충분히 라운딩 때 활용하면 분명히 타수가 줄 수도 있고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룰북(Rule book)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TV에서 중계되는 시합을 보면서 발생하는 여러 소식에 더욱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면 다양한 골프룰을 아는 것만으로도 몇타 쯤은 줄이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자생 웰니스센터 ‘더 제이’ 헤드프로,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