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국내 산업계에 별안간 철 모르는 어른이(어른+아이)들이 난입했다. 원래 어른이였는지, 어른이면서 어른이가 아닌 척 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황이 어떻든 나타났다. 이들은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의 치열한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비방과 지적질을 멈추지 않으며 상대방의 멱살을 붙잡고 연신 주먹질이다. 코피 먼저 터지면 누군가 이기고 끝나는 게임일까.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 LG 8KTV가 보인다. 출처=삼성

삼성과 LG, 멱살잡다
삼성과 LG의 TV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주로 LG가 공격하면 삼성은 반격을 자제하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9를 통해 삼성전자의 8K TV를 정조준했다. 부스에 삼성 8K TV를 가져와 자사 OLED TV와 비교전시하며 '노골적인 디스전'도 벌였다. 

삼성전자는 불편한 기색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은 LG전자의 행동에 "불쾌하다"면서 "어느 곳에서든 1등을 따라 하려하고 헐뜯는 것은 기본"이라고 받아쳤다

LG의 공격은 계속됐다. 박형세 LG전자 TV사업센터장은 8일 현지 간담회에서 삼성이 8K TV 해상도 기준을 못 넘었다고 거듭 공세에 나서는 한편 LG의 선명도는 90%, 경쟁사 TV는 12%가 나왔다며 지적했다. 최근에는 LG가 전사적으로 마케팅 역량을 동원, 삼성 TV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삼성은 일단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내심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두 회사의 신경전은 최근 프리미엄 TV 시장의 흐름과 관련이 깊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2000달러 이상 시장에서 삼성 QLED TV는 LG가 중심인 OLED TV보다 약 두 배 팔린 것으로 확인됐다. 번인 현상에 대한 우려까지 겹치는 상황에서, 심지어 홀로 QLED 진영을 이끄는 삼성에게 LG 중심의 연합군 체제인 OLED가 밀리자 다급함이 배가된 것으로 보인다.

▲ LG가 삼성의 지적에 반박하고 있다. 출처=LG

두 회사의 신경전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지금이야 삼성이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삼성과 LG 모두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던 일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1년 3DTV가 트렌드던 시절부터 조명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직원이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LG디스플레이 엔지니어들에게 "정말 멍청한 XX들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비하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결국 삼성전자가 사과편지를 발송해 사태는 무마됐으나, 양사의 갈등은 이미 '제어할 수 없을 지경'으로 빠져든 후였다.

2012년 4월에는 기술 유출 사건도 있었다. 이직자를 중심으로 2012년 4월 삼성디스플레이의 전신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직원이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TV 기술을 LG디스플레이에 유출시키며 촉발된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사건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직원과 LG디스플레이 임원이 구속되며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후 두 회사는 원만한 합의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지루한 법적공방과 여론전을 펼쳤다.

2015년 IFA 당시에는 삼성이 먼저 공격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LG전자가 내세운 M+ 기술에 회의적인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M+는 기존의 RGB 부분화소에 백색, 즉 화이트(W)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백색라이트 LED가 덜 필요하기 때문에 밝기는 더욱 밝아지고 에너지 효율도 좋아지지만, 픽셀의 숫자는 줄어들게 된다. 이 지점에서 김현석 사장은 IFA 2015가 열리기 전 서울에서 열린 수요사장단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화소수가 부족하니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LG전자는 즉각 반박했다. IFA 2015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다양한 OLED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한편, M+ 기술에 대한 삼성전자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았다.

RGBW 논란도 유명하다. 두 회사는 2016년 RGBW 논란을 통해 4K 화질 여부를 두고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LG전자가 RGBW를 두고 4K가 아니라고 주장하자, 이를 차용한 LG전자가 즉각 반격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결국 이 논란은 디스플레이계측국제위원회(ICDM)가 디스플레이 해상도를 표기할 때 화질 선명도를 명시할 것을 결정하며 봉합됐다.

▲ RGB와 RGBW의 차이. 출처=갈무리

2016년에는 LG디스플레이가 삼성의 디스플레이 핵심인 퀀텀닷을 비판했다. 삼성전자가 QLED TV로 브랜드를 바꾸기 전이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베이징에서 OLED 당시 사업부장인 여상덕 사장 주관으로 중국 언론 대상 OLED 설명회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당시 연구소장 윤수영 상무는 “퀀텀닷 방식 LCD는 색재현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기술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결국 LCD라는 기술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자발광인 LCD가 가지고 있는 시야각, 응답속도, 명암대비 등등 에서의 약점은 그대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지어 "퀀텀닷 방식 LCD를 OLED와 비교해서 마치 새로운 기술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더 나아가 실체도 없는 QLED를 OLED와 차별화된 앞선 기술로 포장하고 마치 금방이라도 시장에 선보일 것처럼 하는 마케팅은 어폐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태국 및 말레이시아 법인의 프로모션 광고가 논란이 됐다. 삼성전자 현지 법인이 QLED TV에 '번인'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하며 OLED TV를 비교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2019년 CES가 열리고 LG전자가 롤러블 OLED TV를 공개하자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이 기자회견에서 “스크린은 가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면서 “돌돌 마는 TV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일도 있었다. 8월에는 LG그룹 계열사 실리콘웍스(SILICON WORKS)가 돌연 삼성 주도의 8K 협의체에서 탈퇴하며 업계의 궁금증이 커지기도 했다.

두 회사의 신경전은 비단 TV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삼성과 LG는 2012년 '우리 냉장고 용량이 더 크다'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했으며, 급기야 삼성은 유튜브를 통해 LG의 냉장고에 물을 붓는 장면을 연출하며 감정싸움을 촉발시키기에 이르렀다. 광고는 결국 내려갔다. 세탁기와 관련된 신경전도 첨예하게 벌어진 바 있다.

▲ 최태원 SK회장이 배터리 시설을 돌아보고 있다. 출처=SK

LG와 SK의 배터리 멱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은 '선'을 넘은 분위기다.

지난 2017년부터 LG화학 전지사업본부 소속 80여 명의 인력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하면서 논란이 시작된 가운데 두 회사는 기술 유출과 관련된 여론전, 소송전을 불사하며 전방위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향해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한편 손해배상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SK이노베이션도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두 회사의 신경전은 지난 4월 LG화학이 미 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대상으로 제소하며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LG화학은 4월 ITC에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셀,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하는 한편,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SK Battery America) 소재지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대거 빼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는 LG화학이 특정 자동차 업체와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인력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LG화학의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도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즉각 “LG화학이 미국에서 제기한 이슈에 대해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 국내 이슈를 외국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 우려 등의 관점에서 먼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 ITC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5월, SK이노베이션은 "경쟁관계 기업이 미국 ITC에 제기한 소송 건 관련 절차가 시작됨에 따라 이번 소송이 전혀 근거 없음을 적극 소명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어 “이전에 밝힌 바와 같이 양극재인 NCM622, NCM811을 업계 최초로 개발·공급했고, 차세대 배터리 핵심 기술인 NCM9½½ 역시 세계 최초 조기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면서 “이번 소송이 안타깝지만 절차가 시작된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노하우와 기술력을 입증하는 기회로 적극 삼겠다"고 말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도 5월 27일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번 소송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한 발 더 나갔다. SK이노베이션은 6월 10일 LG화학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일종의 맞소송이다. SK이노베이션은 4월말 미국 ITC및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배터리 관련 소송을 제기한 LG화학을 상대로 “소송 제기로 인한 유·무형의 손해, 앞으로 발생할 사업차질 등의 피해가 막대하다고 보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소송을 국내 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즉각 "자사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위한 법적 조치를 두고 경쟁사에서 맞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치열한 전투는 계속됐다. SK이노베이션이 미 ITC에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의 특허침해를 바탕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며 소송을 제기하자 LG화학은 즉각 "양사의 특허 수는 14배 이상의 격차가 있다"면서 "경쟁사가 면밀한 검토를 통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고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인지 매우 의문시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LG화학은 3일 ITC 소송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SK이노베이션은 당일 자사 배터리 특허의 무단도용을 주장하며 재차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일각에서 최태원 SK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이 나서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 구광모 LG 회장이 현장경영에 나서고 있다. 출처=LG

싸움꾼 LG..절박함이 낳은 무리수?
최근 국내 산업계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을 보면 반드시 LG가 거론된다. '인화'의 LG가 구광모 회장 취임과 함께 싸움꾼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신사업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이는 삼성과 LG, SK의 문제만은 아니다. 당장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도 5G 정국에서 상대방의 인프라를 헐뜯고 비판하는 일이 많다.

다만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건전한 경쟁은 서로를 살찌우지만, '선'을 넘은 신경전은 결국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 TV 시장과 배터리 시장 모두 국내 기업들의 소모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등 제3국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업계에서 '자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