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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꿈꾸는 마윈...알리바바, 떠나다교육으로 돌아간 시대의 거인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ICT 업계의 정점에 군림하던 마윈이 10일 알리바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후 20년이 흐른 현재 정상에서 내려와 교육자로의 삶을 살아간다는 설명이다. 알리바바의 현 시가총액은 4600억달러에 이르며, 마윈 회장은 신유통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주역으로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 마윈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뉴시스

마윈의 삶, 불굴의 삶
마윈은 1964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중국 전통연극인 경극 배우였으며, 집안은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어린 마윈은 독종이 됐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았던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거나 홀대받기 일쑤였으나 ‘싸움닭’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마윈은 무협지에 나오는 '협객'을 꿈꾸기도 했다. 실제로 마윈은 무협소설을 사랑했으며, 지금도 협객이 되고 싶어 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이나 회의실에 김용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지명과 건물명을 의도적으로 붙였으며 태극권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별칭인 풍청양(风清扬)도 무협소설 <소오강호>(笑傲江湖)에 등장하는 화산파 고수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경호원도 태극권 고수다. 

마윈은 간혹 사옥앞에서 태극권을 시연하기도 했다. 알리바바의 핵심가치 9개를 발표하며 이를 풍청양의 검법인 ‘독고구검’이라고 불렀으며 중국 언론에서는 알리바바를 설명하며 최초 창업주들을 '십팔나한'으로 부르기도 한다.

협객을 꿈꾸던 마윈의 어린시절은 그러나 고난의 역속이었다. 점수가 낮아 낙제의 연속이었고 대학도 2번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항저우 사범대학 영어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월 1만5000원의 월급을 받으며 교단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여기서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들이 오가는 호텔에 무작정 찾아가 그들과 억지로 대화하며 감각을 익혔다. 아무 외국인이나 보이기만 하면 “헬로!”를 외치며 달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한 때 패스트푸드 업체 총괄매니저 비서에 자원했다가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한다.

마윈은 20대 후반 삶의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영어교사의 꿈을 접고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처음 설립한 회사는 ‘하이보’라는 통역회사. 그러나 난관의 연속이었다. 회사는 일거리가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이었으며 일이 있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든 수준이었다. 마윈 본인이 부업인 방문판매를 하며 입에 간신히 풀칠했다.

그 때 운명처럼 인터넷을 만난다.

그는 미국 출장길에 올라 친구의 집에서 포털 사이트 넷스케이프를 보게 된다. 아직 구글이 세계를 지배하기 전이다. 마윈의 친구는 처음 인터넷을 접하는 그에게 “여기에는 모든 것이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마윈은 떨리는 손으로 '맥주'라는 검색어를 입력했으나, 결과는 없었다. 그가 검색한 단어가 중국어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별 의미없는 장면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는 중국 최대 이커머스 기업의 태동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마윈은 마치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처럼 통역회사를 접고 중국 기업의 명단을 담은 ‘차이나 페이지스’를 설립한다. 중국 최초의 인터넷 회사다. 그러나 이메일도 몰랐던 마윈에게는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다. 회사는 1997년 문을 닫았고 그는 별안간 공무원으로 변신한다. 1998년 중국 대외경제무역합작부에 취직한다.

공무원으로 변신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쉬는 날에는 만리장성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가이드를 자처하며 몸으로 영어를 익혔다. 그 때 운명을 만난다.  야후의 공동 창업주인 제리 양을 만나는 행운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당시 마윈은 중국 여행을 온 제리 양의 만리장성 투어 가이드로 일했다. 이때 인연으로 2005년 야후가 알리바바에 10억달러의 유치를 단행하고, 구글의 공습으로 위기에 몰렸던 제리 양이 알리바바의 2대 주주인 야후의 재발탁으로 알리바바의 이사회에 진입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일이었다. 물론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으나 이는 훗날 더 큰 미래의 기회로 작동하게 된다.

마윈은 결국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1999년, 한국에서 이해진이라는 개발자가 네이버라는 포털 사이트를 출범시키던 그 해 자기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한다. 

마윈이 자신의 두 번째 회사 이름을 알리바바로 정한 것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그는 어느 날 카페에서 회사 이름을 고민하다가 종업원에게 물었다. “알리바바를 아느냐?”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윈은 “무얼 아느냐?”고 물었다. 종업원은 “열려라 참깨를 안다”고 답했다. 즉시 마윈은 밖으로 나가 행인 20명을 붙잡고 같은 질문을 했다. 모두 알리바바를 안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회사의 이름은 알리바바가 됐다.

야심차게 출범한 알리바바. 마윈은 자기와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한 17명의 동료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 경쟁 상대는 중국 기업이 아니다. 바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을 보라. 정말 열심히 일한다. 우리가 그들을 이기려면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정확히 퇴근하는 자세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거든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낫다. 믿도록 하자. 우리한테는 머리가 있고 강한 정신력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결혼한 마윈의 아내도 창업주 17명 중 하나였다. 그녀는 알리바바의 설립자금을 위해 1000만 위안을 빌려 보태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만남은 더욱 극적이다. 단 6분만에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받은 일화는 거의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역시 시련이 이어졌다. 2001년에 갑작스러운 재정난으로 한 사업부의 직원 전체를 해고하기도 했다. 2003년 개인 간 거래, C2C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를 설립해 당시 이베이가 장악한 중국 이커머스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며 고통은 더욱 배가됐다. 호기로운 싸움이었으나 상대는 글로벌 거인. 애초에 정면대결이 어렵다는 회의론이 나왔다.

2008년에는 아마존과 유사한 소매 사이트 티몰까지 열었다. 

당장 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의 고난이 닥치던 그 때. 마윈의 독종 기질은 더욱 배가됐다. 그는 이베이를 공략할 10명의 ‘특공대’를 조직하는 치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판을 뒤집었다. 2007년 타오바오의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했으며, 이베이는 중국을 떠났다. 언론은 이를 두고 알리바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고 불렀다.

마윈은 2011년, 야후와의 관계가 틀어지며 또 한 번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마윈이 1대 주주인 소프트뱅크와 2대 주주인 야후와 상의 없이 알짜로 통하던 알리페이를 분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페이 분사는 신의 한 수였다. 그는 더 성장했고,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리고 2014년, 알리바바는 화려하게 미국 나스닥의 샛별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인공지능과 영화 제작 등 광폭행보를 보이며 중국 ICT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 알리바바 로고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마윈의 삶은?
마윈은 지난해 9월 전격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당시 그는 은퇴를 선언하며 “나의 은퇴는 한 시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서 “앞으로 교육자의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마윈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마윈이 “나는 빌 게이츠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면서 “빌 게이츠만큼 부자가 되기는 힘들지만, 더 빨리 은퇴하는 것은 잘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MS 창업주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 부자인 인물이다. 58세의 나이에 자기와 아내의 이름을 따 만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환경 등 다양한 자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마윈의 롤모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마윈이 그룹 소유권을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하자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일각에서 중국 당국과의 불화설을 제기한 이유다. 

실제로 마윈은 리옌훙 바이두 회장이나 마화텅 텐센트 회장처럼 중국의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도 맡지 않았다. 다른 업계 거물처럼 중국 정부와 크게 밀착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2015년 당시 자회사 엔트파이낸셜이 당국의 제재를 받고 공상관리총국으로부터 알리바바 플랫폼이 짝퉁 판정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도 있다. 결국 중국 정부의 눈 밖에 난 그가 회장 사임은 물론 그룹 경영권 포기에 이르렀다는 해석이다.

반론도 있다. 마윈은 오래전부터 회장 사임을 생각했으며, 이번 은퇴 선언도 알리바바 특유의 경영 환경을 살펴보면 이례적이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마윈이 장쩌민 전 주석의 후광으로 지금의 알리바바를 키워왔기 때문에 시진핑 현 주석의 미움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실체가 없다는 평가다. 

시 주석은 중국의 ICT 기업을 소개할 때 알리바바를 자주 거론했으며 현장에 시찰을 떠난 경우도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소속 지도자와 가장 접촉이 많은 민간인 기업 톱10에 대부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마윈도 나중에 공산당원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한편 마윈이 없는 알리바바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공동 창업자군이 아닌 외부에서 발탁한 장융 현 알리바바 CEO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할 전망이다. 장 CEO는 회계 전문가며, 당분간 몸집이 커진 알리바바를 관리형 조직으로 다독일 것으로 보인다. 혁신의 스티브 잡스가 물러난 후 공급망 전문가인 팀 쿡이 안정적인 조직 관리에 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마윈은 여전히 6%의 알리바바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추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19.09.10  11: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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