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 측면에서, 무역 전쟁의 장기화가 중국 지도부에게는 불리할 게 없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WP)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이 이달부터 중국 수입품에 대해 새로운 관세가 부과하자, 중국은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일삼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고조되는 양국간 무역 전쟁을 승자 없는 무의미한 갈등이라고 비난한다. NBC의 뉴스 해설가 알리 벨시는 "이 전쟁은 양측이 모두 패배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무역 전쟁이다. 미국도 지고 중국도 지는 게임이다. 어쩌면 중국의 상처가 미국보다 훨씬 더 클지 모른다"고 논평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양측 모두에 타격을 준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경제 대국이 서로에게 필사적으로 관세 폭탄을 퍼 부음에 따라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도 증폭되고 있다.

이 전쟁이 계속되면 양쪽 모두 상처를 입을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서 양측이 타협할 것이라는 희망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이 경제적으로는 쌍방이 모두 지는 게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무역 전쟁의 장기화가 중국 지도부에게는 불리할 게 없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중국이 미국의 요구에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세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도했다.

1.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확실한 적’이 드러났다

‘다원적 정치’(diversionary politics)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외부의 적’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없다는 가설이 있다. 특히 독재 정권의 경우 ‘외부의 적’은 국내 문제에 대한 국민의 주의를 외부로 돌려주고, 국민들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표적을 제공해주며, 민족주의적 열정을 북돋워준다는 것이다. 중국에게 트럼프 행정부는 건방지고 사과할 줄 모르며 정치적으로 취약한 ‘완벽한 표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무역 전쟁은 트럼프 행정부를 대놓고 비난하며 이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가 미국 소비자들이 비용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고 제발 저리듯 주장할 때, 시 주석은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중국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영웅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고상한 메시지를 던진다.

무역 전쟁이 점점 더 고조되면서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핵심부에게 비유법까지 구사했다. 그는 인민들에게, 1934-1935년에 중국 공산당의 전설적인 4000마일(6500 km) 대장정(大長程, Long March)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대장정을 준비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홍군(紅軍, Red Army)은 대장정이라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다는 ‘신화’를 만들어냈고 마침내 1949년에 중국의 권력을 장악했다.

중국 지도부는 물론 이번 무역 전쟁에서 승리해야 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역 전쟁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국내의 일부 도전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가 본토까지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시 주석은 중국 국민들에게 자신이 국민 편이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더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같은 뚜렷한 적수가 있으면 일은 좀 더 쉬워진다.

▲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고조되자 시진핑 주석은 인민들에게, 중국 공산당의 전설적인 대장정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대장정을 준비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출처= Nikkei Asian Review 캡처

2. 서방 세계를 분열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학자들은 종종 중국 같은 신흥 강대국들이 소련 붕괴 이후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국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지정학에 어떻게 도전하는지를 연구한다.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해 서방 세계에 불화를 심고 힘을 과시했던 것처럼, 미국의 동맹과 혼란스러운 미국 정부는 중국의 세계 무대 등장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일반적인 견해들은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기다리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시 주석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되면 미국과 보다 유리한 협상을 할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또 다른 견해도 있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무역 전쟁을 이용해 미국 정치의 평온을 깨고 미국의 외교 정책에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에서 백악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지만 지금은 트럼프 비판론자로 변신한 앤서니 스카라무치가 그런 주장을 하는 인물이다.

"중국 지도부는 사실상 SNS를 잘 사용하는 트럼프 정부(@realDonald Trump)가 정권을 계속 잡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장기간에 걸쳐 생각하지요. 이른 바 만만디(慢慢的, manmandi) 전략입니다. 트럼프가 다시 4년 동안 서방 동맹을 불안에 빠뜨리고 세계 무역 체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쨌든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중국이 수십 년 안에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서방 세계가 지금처럼, 서방 지도자들끼리 정치적 불화를 일으키고 미국 혼자서 세계 경제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키우는 한, 중국이 자신의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하도록 돕는 행위일 뿐이다.

3. 전세계에 보내고 싶은 중국의 분명한 메시지

학자들은 신호 이론(signaling theory)에 입각해, 정치 지도자들이 어떻게 실현하기 힘든 정책을 국민들에게 약속하는지를 연구한다. 이것은 각국 정부가 정부의 결단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전쟁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전쟁 억지력에 대한 주요 연구에 따르면, (실제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적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계 각국이 무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명분을 찾는 상황에서, 무역 전쟁이 시 주석에게 전세계적인 이목을 끌 수 있는 드물고 이례적인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중국은 자신이 세계 무대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는 크고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시 주석이 무역전쟁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적으로부터의 도전을 미리 선점하고 중국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전세계에 입증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현재 강제적인 기술 이전과 지적 재산권 도용을 포함한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제기하는 나라가 미국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통신 대기업 화웨이가 5G 기술로 세계 시장 진출을 모색하면서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또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싸움에서 버팀으로써 다른 경쟁국들과의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며, 장기전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중국에 반대하는 국가들에 대한 보복도 불사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문제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이 전쟁을 장기화할 이유가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