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SSR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굉음이 발생했다. 비상 발전 전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터빈의 관성력으로 얼마만큼 발전이 가능한지에 관한 검사, 즉 전원 공급 상실 상황에서의 부하검사를 진행하던 중 설계상의 결함과 담당자의 제어봉 조작 실수 등으로 원자로 4호기의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폭발은 원자로 4호기의 천장을 파괴했고, 파괴된 천장을 통해 다량의 방사성 물질들이 누출되었다. 누출된 물질에 의한 방사능의 총량은 약 5.3엑사베크렐. 지난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전까지 유일하게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INES) 7등급에 오른 사고였다.

폭음을 들은 인근 지역 주민들은 그 사실을 소방서에 알렸고, 휴식 중이던 체르노빌의 소방대원들이 긴급호출 명령을 받게 된다. 이들이 도착한 시간은 사건 발생 약 6분 뒤인 1시 30분. 이미 원전 원자로는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당시 일부 소방대원들은 원자로 폭발에 비산되어 노출된 흑연 잔해에 접촉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방사능 화상으로 사망하게 된다.

올해 5월 한 달간 HBO에서 방영된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은 당시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와 그 후의 전개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방영 직후부터 ‘유일한 단점은 실화라는 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엄격하고 상세한 고증을 거친 작품인 탓에 시작부터 끝까지 한숨이 툭툭 튀어나오는 장면이 가득한데,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답답했던 장면을 고르라면 1부 중간에 삽입된 프리피야트(체르노빌 발전소 근무 직원과 가족을 위한 신도시)의 집행 위원회 회의 장면을 꼽아야지 싶다.

회의가 시작된 시간은 사건이 발생한지 약 4시간 뒤인 5시 20분. 발전소장인 빅토르 브류하노프는 집행 위원들을 모아 상황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 사고를 순조롭게 수습하고 있다. 둘, 소련의 원자력 사업은 주요한 국가 기밀이므로 사고로 인한 어떠한 역풍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 처자식이 함께 도시에 거주 중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을리 없다. 밖에서 구토하는 사람들을 보았으며, 화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며 ‘안전하다’고 설명하는 사람들보다 상황이 좋지 않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도시에 소개령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 양 진영의 언성이 높아지려는 찰나, 위원회의 한 원로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국가가 이곳 상황이 위험하지 않다고 했으니 믿음을 가지시오, 동무들. 국가가 동요를 막기 원한다니 경청하시오. 사람들이 자기한테 별 도움도 안 되는 질문을 할 때면, 이런 말을 해주면 되오. 본인 노동에만 집중하고 국가 일은 국가에 맡기라고. 도시는 봉쇄합니다. 소개령은 없소. 전화도 차단하시오. 허위 정보의 확산을 막으시오.”

열화와 같은 박수로 마무리된 이 회의 덕분에 소개령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 뒤인 나흘 뒤에야 시작됐다. 오염된 지역으로부터의 소개 작업이 모두 완료된 시점은 1986년 9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뒤다.

드라마를 보며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문득 칼 포퍼의 이론을 떠올렸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대표되는 그의 정치철학은 반증주의와 비판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가 말하는 ‘열린 사회’란 개개인의 의견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이다. 그곳의 구성원들은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며,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있고, 이로 인한 혼란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구성원간의 토론과 수정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반면 ‘닫힌 사회’는 열린 사회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개인이 아닌 국가를 통해 결정이 이루어지고, 도덕과 법은 절대적이며, 개인의 삶은 일일이 간섭 받고 통제된다. 

포퍼의 사상은 오랜 기간 하나의 목표 아래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한 집단과 이론을 비판하는 주요 논거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파시즘, 그리고 체르노빌 사건의 당사자인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핵심 사상 ‘마르크스주의’ 등이 그가 비판한 대표적인 사상들이다.

그렇다면 파시즘과 마르크스주의가 모두 몰락해 버린 지금, 그의 사상은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일까? 글쎄, 현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개인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감시 혹은 관리는 더욱 은밀해졌으며, 타인의 시선 혹은 강요로 인한 자유의 제약 또한 여전하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야말로 또다른 불행을 막기 위한 열린 사회에 대한 포퍼의 이론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