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일 경제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자사 파운드리 로드맵을 적극 강조해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격렬하게 경쟁하고 있는 애플의 안마당인 미국에서 갤럭시노트10을 발표하고, 이제는 반도체 코리아를 꺾으려는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 반도체 로드맵을 당당하게 밝히기에 이르렀다. 한일 경제전쟁의 포성이 여전한 상태에서 삼성전자의 정면돌파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의 자신감 넘치는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 삼성전자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장이 4일 일본 도쿄 인터시티홀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 재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컨틴전시 플랜의 삼성, 다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일 경제전쟁은 사실상 한국의 반도체 인프라를 붕괴시키겠다는 일본의 '정밀타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유무역주의를 지키자는 G20 합의문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 G20 의장국이던 일본은 한국을 향해 3대 소재 수출 제한을 걸었고, 당시 수출 제한 품목이 바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반도체 인프라를 흔들어 한일 경제전쟁의 승기를 잡으려는 시도다.

경제전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으며, 한국도 동일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는 중단됐으며 국내에서는 격렬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여론전도 치열하다. 세코 히로시케 경제산업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이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을 두고 글로벌 여론전에 나서는 것을 노골적으로 견제했으며, 아예 한일 경제전쟁은 일본의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4일 산케이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것을 두고 의견서를 통해 "(한국의 일본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는)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보복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앞서 자신들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한일 경제전쟁이 사실상 일본의 한국 반도체 근간을 흔드는쪽으로 좁혀진 가운데, 대표 사업자인 삼성전자는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본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감지되는 순간 현지로 날아가 소재 및 부품 공급선을 점검하는 한편 금융계 거물들을 만나 충격에 대비했다. 이어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며 현장경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성과는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 필요한 핵심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 규제에 대비해 국산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벌써 테스트를 마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일러야 올해 말은 되어야 삼성전자가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봤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속도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다.

일본은 한국에 경제보복을 감행하면서도 포토 레지스트를 두 차례에 거쳐 수출하는 등 일부 유화적인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러한 분위기도 일본의 전격적인 화해 시그널이 아니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반도체 인프라를 더욱 집요하게 흔들기 위한 ‘길들이기’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는 일본 정부의 결정으로 수출 길이 막힌 일본 기업들과 긴밀히 협조하는 한편 제3국을 통한 수입 라인도 타진하고 있다.

▲ 삼성 반도체 화성 라인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삼성 파운드리 포럼 열려

한일 경제전쟁이 이처럼 치열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4일 일본 도쿄 인터시티홀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을 전격 개최했다. 

파운드리 경쟁력을 공유하고 파트너 생태계 강화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본 포럼은, 삼성전자의 미래 경쟁력인 파운드리의 청사진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자리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일본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을 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 바 있다. 한일 경제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반도체 코리아의 입지를 흔들고 있으며, 다양한 제반사항을 고려했을 때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삼성의 반도체 행사가 열릴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이 많았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포럼을 전격 강행하며 정면승부를 벌였다. 일본이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의 급소를 타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직진’을 택했다는 뜻이다.

포럼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정은승 사장과 이상현 마케팅팀장(상무) 등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언론 및 업계에 따르면 정 사장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포럼을 통해 세계의 파트너들과 함께하고 있다”면서 “일본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본 포럼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는 문제가 없으며, 삼성전자가 한일 경제전쟁 속에서도 미래 로드맵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포석이 깔렸다고 분석한다. EUV와 관련된 미래 가능성도 공개되며 기대감을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열리는 삼성 파운드리의 시대

삼성전자는 말이 필요없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시장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되는 한편, 수요와 공급 균형이 무너지며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는 지점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는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주목하고 있다. 협회는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기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총 557억800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와 비교해 약 7.8% 줄어들 것으로 봤다. 여기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업황 악화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꺼내든 카드는 시스템 반도체 육성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리는 것이 골자다.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자하며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한다. 규모적 측면으로는 ‘역대급’이다. 2030년까지 연평균 11조원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가 집행되고,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42만명의 간접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고용 인력은 1만5000명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화성캠퍼스 신규 EUV라인을 활용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국내 신규 라인 투자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라는 점도 공개했다.

삼성전자의 시스텐 반도체 핵심은 파운드리에 있다. 삼성전자는 2005년 파운드리 사업을 처음 시작해 2009년 로직 공정 연구소를 신설하고 2012년 미국 오스틴 S2 라인 가동으로 파운드리 생산을 크게 확대했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14나노 핀펫, 2016년에는 10나노 핀펫으로 진격했고 2017년 10나노를 거쳐 지난해 2월 7나노 공정시대를 선언했다.

심지어 5나노 로드맵도 빠르게 나왔다. 삼성전자는 5나노를 두고 설계 최적화를 통해 기존 7나노 공정 대비 로직 면적을 25% 줄일 수 있으며, 20% 향상된 전력 효율 또는 10% 향상된 성능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7나노 공정에 적용된 설계 자산(IP)을 활용할 수 있어 5나노와의 호환성도 높은 편이다. 삼성전자의 7나노를 활용했다면, 자연스럽게 5나노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대만 TSMC에 이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는 일본에서 열리는 포럼을 통해 자사 파운드리 역량을 알리는 한편, 갖은 악재에도 끊김없이 나아가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도 강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일본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을 열며 5G 전용 엑시노스 980을 전격 공개했다. 전작 9820이 5G 시대의 초입이라면, 엑시노스 980은 5G 대중화를 이끌 차세대 무기다. 엑시노스 980은 고성능 NPU(Neural Processing Unit, 신경망처리장치)가 내장되어 기존 제품 대비 인공지능 연산 성능이 약 2.7배 향상됐으며 온 디바이스를 지원한다. 

▲ 엑시노스 980이 공개됐다. 출처=삼성전자

4G부터 5G까지 넓은 커버리지를 가지고 있으며 1억800만 화소 이미지까지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ISP도 눈길을 끈다. 최근 삼성전자가 두각을 보이는 기술력이며, 고화소 이미지 센서를 채용하는 스마트폰에 제격이다.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마케팅팀장 허국 전무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엑시노스 모뎀 5100' 출시를 통해 5세대 이동통신 시대를 여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라며, "첫 5G 통합 모바일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980으로 5G 대중화에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