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풋풋한 아이들을 그린 영화로 그해 청룡영화상 신인 감독상을 받은 젊은 여성 감독이 3년이 지난 이번에도 역시 아이들을 그린 영화로 돌아왔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또 다시 아이들을 그린 이유를 묻자 그녀는 대답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는 아직 딱지가 없다는 것.

그래서 약하지만 한편으로는 용감해질 수 있다는 거죠. 어른처럼 문제를 복잡하게 풀지 않고, 힘들어도 일단 부딪친다는 겁니다.

아이들의 그 건강하고, 정직한 정면 돌파의 힘에 매혹되어 자꾸 그들을 그리게 된 답니다.

그녀의 말 중에 아이들은 딱지가 없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은 정직하게 정면 돌파한다는 말이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어른들 표정이 나이 들수록 더 일그러지고, 어두워지는 것은 노화 영향 외에도 많은 딱지가 있는 세월들, 직선이 아니고 꼬여있는 복잡한 생각들로 그런 것이 아닐까 늘 생각해 왔었거든요. 물론 그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죠.

최근 집사람이 며칠간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퇴원후도 일주일여 회복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간병을 하다 보니 평생 처음으로 십여 일을 온전히 이십사 시간 붙어 지냈습니다.

내가 집안일에 대해, 집사람에 대해 너무 모르고, 무지했던 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간병 기간 집안에 있는 물건의 위치들을 모르거나 사소한 용품들을 제대로 조작 못해 곤욕을 치루는 것은 서막이었습니다. 집사람이 집안 형광등 교체나 믹서, 에어컨 등 가전용품 다루는데 나보다 한수 위인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어릴 때부터 라디오 등을 분해하다가 망치는 등 기계 만지는 걸 좋아 했다네요.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남편이 불이 나간 형광등마저도

한 달이 지나도록 바꾸지 않는 걸 보고, 깜짝 놀라며 심각히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 걸 자기가 하면 평생 자기 일이 되겠다고. 그래서 내색 안하고 자기도 안하며 참고 사느라 힘들었다고 하네요. 내 버릇 고치려고 말이죠.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성격이 원래 시원 시원하고,

직선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만 직선이고자 했던 나와 부딪침을 피하고자,

또 맏며느리인 처지와 여러 일로 바쁘게 살아내느라 부러 뒤로 빠지는 삶을 살아왔다는 거죠. 기계치인 척이야 애교(?)로 넘어갔지만, 성격까지 숨기고 살아왔다는 말에 가슴이 턱 막히고,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정말 둘 사이에 차이가 많다는 걸 새삼 발견했고,

딱지도 아주 많은 세월이었음을 알게도 되었지요.

진정 바래봅니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딱지가 없을 수는 없으니,

딱지가 있음에도 서로를 싸매주는 관계로 나아가자구요.

또 이제는 다 털어놓고 숨기는 것 없이 살자고 말이죠.

이제 건강 회복과 함께 제대로 커밍 아웃한 집사람을 모시고, 살아야겠습니다.

영화 대사 번역자로 언어를 진주 다루듯 하는 이미도의 글에서 발견했습니다.

“미국 작가 리오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썼습니다.

‘시간보다 소중한 오직 하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다’“

십여일 동안 인생 시간의 제일 동반자 집사람을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