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국내 바이오산업이 연이은 악재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신라젠의 펙사벡 임상 3상 중단과 인보사 사태로 물의를 일으킨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 결정 등 주요 기업들의 핵심 사업이 줄줄이 좌초되면서 바이오산업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기업 가치의 전부라고 평가받았던 신약 개발에 제동이 걸리면서 시장은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서 실패는 매우 흔한 일이다. 신약 개발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임상 과정을 거쳐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1조원 넘는 투자금과 10년 이상의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성공 확률은 10% 미만으로 매우 낮다.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된 시험에서 10개 중 9개는 신약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신약 개발에서 실패가 흔한 만큼 실패에 대한 비난은 과도한 처사다. 오히려 실패를 위로하고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내줘야 전체 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바이오산업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면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전체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의혹부터 임직원들의 주식 매각 논란까지 끊임없는 잡음으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오히려 임상시험 중단과 같은 신약 개발 실패는 애교에 가까웠다.

실제로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 취소와 제조사에 대한 형사고발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고, 삼성그룹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불리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 의혹을 받으며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잠시 충격을 추스를 새도 없이 신라젠이 지난 8월 28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도덕적 해이 문제에 정점을 찍는다. 면역항암제 펙사벡의 무용성 평가를 앞두고 이뤄진 보통주 대량 매각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한때 신라젠은 펙사벡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고공 행진을 기록했으나 임상 3상이 중단되면서 폭락한 바 있다. 문제는 주가 하락 전 신라젠의 신모 전무가 보유 중이던 88억원어치 주식을 매도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임원이 펙사벡의 무용성 평가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신라젠은 "일부 임직원이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의혹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왔다"며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의 해명에도 투자자들은 더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신라젠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문은상 신라젠 대표도 2017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1325억원어치의 주식을 매각했다. 문 대표의 친인척 4명도 같은 시기에 800억원 정도를 현금화했다. 과거 바이오산업의 목을 비틀었던 ‘황우석 사태’와 비견될 정도로 배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바이오산업에서 신뢰는 가장 중요한 무형자산 중 하나다. 신약을 개발할 때처럼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입은 손실은 차후에 보충이 가능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느끼는 투자자들의 실망감이나 분노는 본래 모습으로 회복하기 어렵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