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한국은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의료 인프라 또한 훌륭하기 때문이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주요 암 환자 중 대장암‧직장암‧자궁경부암의 생존율은 71~77%로 미국보다 7~14%포인트 높았다.

병상 공급량은 인구 1000명당 12개로 OECD 국가 중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16.6회로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로 미국 77%보다 높다. 인터넷 사용률은 96%에 이른다. 각종 데이터를 빠르게 쌓아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을 막는 요인 중 하나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꼽힌다. 의료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는 사전동의 규제에 따라 정보 주체의 사전 동의 없는 수집, 활용 및 제 3자 제공이 금지돼 있다. 치료를 위해 환자의 진단 정보를 수집할 때의 목적과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목적이 다르므로 빅데이터에 포함된 정보 주체인 개인에게 일일이 동의를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천 명, 수만 명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사전동의 규제는 빅데이터 활용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한국이지만 꾸준히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이왕 늦은 거 필요한 곳에 정확한 규제를 만들어 의료 업계에서 의료 빅데이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의 한계를 인지하고 2016년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비식별화된 데이터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아쉬운 부분이 남아 있다.

업계에서는 가명 정보라는 개념을 만드는 등 의료 부문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논의에 따르면 미국 ‘HIPAA Privacy Rule’과 일본 ‘차세대의료기반법’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02년 해당 법안을 제정했고 일본은 2017년에 개정했다. 중국 ‘네트워크안전법’과 영국 ‘GDPR’은 2016년 비식별 조치 조항을 포함해 관련 법을 개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 빅데이터 등 의료 정보에 기반을 둔 서비스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비식별화 규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비식별화된 의료 데이터는 결국 환자에게 편익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