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솟는 손해율로 보험업계 골칫덩이 상품으로 전락한 실손의료보험에 대해 보험사들이 청구간소화 서비스 도입을 추진 중이다. 출처=픽사베이

[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치솟는 손해율(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로 보험업계 골칫덩이 상품으로 전락한 실손의료보험에 대해 보험사들이 청구간소화 서비스 도입을 추진 중이다. 청구간소화 서비스란 보험금 청구를 위한 증빙서류를 키오스크(무인 종합정보안내시스템)나 스마트폰 등으로 병원 내에서 직접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청구간소화 서비스가 도입되면 보험금 청구량 증가로 보험사 손해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 도입에 따른 민원 및 보험사기 방지는 물론 DB확보에 편의성까지 제고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보험사들에게 긍정적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교보생명, NH농협생명 등이 병원 내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 서류 등을 보험사에 간편하게 전송할 수 있는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를 추진·도입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KT와 지난 18일 실손의료보험 즉시 청구 사업을 위한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KT는 실손보험 즉시 청구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 서비스는 진료비를 결제한 후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정보를 보험사로 바로 전달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DB손보는 지난 6월 핀테크 업체 지앤넷과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지앤넷은 분당서울대병원, 인하대병원, 중앙대병원, 인천성모병원, 강동성심병원, 자생한방병원 등에 ‘실손보험빠른청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엔 서울성모병원과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에도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양 사는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동으로 보험금 청구를 위한 서류가 보험사로 전송되는 실손보험청구간소화 사업 시작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KB손보도 지난 2월 KT 및 엔에스스마트와 실손보험금 청구 서비스 개발을 위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KB손보가 도입한 키오스크 기반의 청구 방식은 고객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병원 내 무인기계를 통해 진료비를 수납하고 보험금 청구버튼을 누르면 필요한 모든 병원데이터를 전자문서(EDI) 형태로 보험사에 자동 전송하게 된다.

▲ 출처=KT

생명보험사들도 실손보험 간편 청구서비스 도입에 나서고 있다. 농협생명은 지난해 말 레몬헬스케어와 스마트 헬스케어 플랫폼 ‘엠케어’ 기반의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M-CARE 뚝딱청구’는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앱상에서 전자데이터 형태로 보험사에 전송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서비스다.

교보생명도 전국 7개 병원에서 보험금 자동청구시스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보험금 자동청구시스템은 보험 가입 시 블록체인에 진료기록 송부 승인 정보를 기록해 병원과 보험사가 실시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은 휴대폰으로 전송된 교보생명 보험금 청구 안내 문자의 확인 버튼만 누르면 계좌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3000만명 이상이 가입하면서 ‘국민보험’으로 여겨지는 실손보험은 그만큼 청구 간소화에 대한 목소리도 큰 상품이다. 실손보험은 보험가입자가 질병·상해로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시 소비자가 실제 부담한 의료비를 보험회사가 보상하는 상품으로서 다른 보험상품 대비 보험금 청구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서 발간한 ‘실손보험금 미청구 실태 및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실손보험금 미청구의 주된 이유로 ‘청구의 번거로움’이 꼽히기도 했다.

▲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에 설치된 '실손보험빠른청구' 서비스 단말기를 사용중인 모습. 출처=지앤넷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치솟는 손해율에 팔면 팔수록 손해만 나는 적자상품으로 전락한 실손보험이 청구 간소화까지 되면 보험금 청구가 더욱 많아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내 전체 손해보험사의 올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29.6%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6%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업계에서 보는 적정 손해율 70~80% 수준을 훌쩍 넘었다. 이에 따른 손보사들의 영업적자도 올 상반기 1조3억원으로 전년 동기 7081억원 대비 41.3% 올랐다. 

이와 관련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이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는 입장이다. 실손보험 청구 과정에서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청구간소화로 이에 대한 민원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복잡한 서류 작업 등 불필요하게 들어가던 처리 비용도 업무효율화로 인해 감축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전산화된 진료기록으로 과잉 진료 및 보험사기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추진에 의료계 반발이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에 따른 환자 개인정보 유출 및 의료수가 노출 등을 우려하고 있다. 보상 청구 절차 자체를 병원이 떠안을 수 있다는 부담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현재 보험사들이 운영 중인 실손보험 간편 청구 서비스는 일부 대형 병원들에만 국한돼 있으며, 이마저도 서비스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의료계 반발에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진 미지수”라며 “의료계 입장에서는 청구간소화로 인한 이득이 없어 이를 쉽게 받아드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 자동청구는 대부분 소액 건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 큰 부담은 없을 것”이라며 “고객 편의성 및 보험사 신뢰도 제고 차원으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로 청구건수가 많아지는 부분이 있기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청구과정이 투명해져 보험사 입장에선 관리가 용이해 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