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아멜리아는 스웨덴 은행 SEB의 온라인 및 수신 전화 헬프 데스크에서 일한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그녀는 태도는 자신만만 하지만 미소는 약간 어색하다. 아멜리아는 스위스 UBS은행의 런던지점과 취리히 지점에서도 일한다. 게다가 아멜리아는 30초 안에 300페이지의 매뉴얼을 외우고, 20개 언어를 구사하며, 수천 건의 전화를 동시에 처리한다(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다).

아멜리아는 화이트칼라 로봇이다. 그녀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서 챗봇 또는 3차원 아바타로서 고객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녀는 고객과 대화를 시작할 때 그 고객의 이전 통화 기록을 모두 알고 있다. 올스테이트 보험회사(Allstate Insurance)가 아멜리아를 채용한 이후 이 회사 콜센터의 평균 통화 시간은 4.6분에서 4.2분으로 떨어졌다.

그녀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체탄 두베(Chetan Dube)다. 자동화 소프트웨어 회사 IP 소프트(IPSoft)를 설립하기 위해 뉴욕대학교 교수직을 과감하게 버린 그는, 인도인의 임금이 아무리 싸다 하더라도 그들을 원격 근로자들로 고용하는 것이 복제된 인간 지능으로 미국과 유럽 근로자들을 대체하는 것만큼 효율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멜리아들은 빠른 성능의 노트북이나 좋아진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처럼 인간의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 노동자들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아직은 인간 노동자만큼 훌륭하게 일하지는 못하지만 비용이 훨씬 덜 든다.

지금까지는 서비스 부문과 전문 직업군은 자동화의 물결에서 빗겨 나 있었다. 컴퓨터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핵물리학 교수나 플로리스트 같이 생각을 해야 하는 직업은 여전히 인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머신러닝’이라는 인공지능의 한 형태가 컴퓨터에게 패턴을 읽고 쓰고 말하고 미묘한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멜리아와 같은 생각하는 컴퓨터들이 자동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블루칼러 노동자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러 근로자들의 이해득실이 복잡해졌다. 화이트칼러 근로자들은 대체로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 노동자들은, 미국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임금이 낮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직접적인 임금 경쟁에 직면해 있다. 프리랜서들을 위한 이베이(eBay)라 할 수 있는 업워크(Upwork) 같은 웹 플랫폼 덕분에 고용주들은 훨씬 더 낮은 비용으로 전 세계에서 인재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지금까지는 서비스 부문과 전문 직업군은 자동화의 물결에서 빗겨 나 있었지만 아멜리아 같은 화이트칼라 로봇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출처= IPSoft

전 세계에 걸쳐 재택근무가 가능 해졌고, 소위 '원격이민'(telemigration)이 가능 해졌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새로운 형태의 로봇과 만나 이른 바 글로보틱스(globotics) 시대라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이 시대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전통적인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뿐 아니라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 근로자는 지난 달 현재 약 1억 2900만 명에 달한다.

아멜리아들은 세계 유수의 은행, 보험사, 통신사, 언론사, 의료 회사 등 20여개 회사에서 채용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는 고객의 만족도는 전화를 받는 직원이 얼마나 고객에게 공감을 보여주느냐와 직결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에 따라 아멜리아를 만드는 회사는 그녀의 알고리즘에 심리학적 모듈을 추가했다.

그녀는 자신이 통화하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알고 있으며, 상대방과의 의사 소통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반응, 표정, 제스처를 적응시킨다. 물론 아멜리아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인간 동료들에게 전화를 연결시켜 준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호기심이 많다. 아멜리아의 소프트웨어는 인간과 고객이 통화는 내용과 인간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를 모두 듣는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지식 관리 시스템에 그런 새로운 요령을 추가한다. 그녀가 그 문제에 대해 ‘학습되었다’고 인간 감독자의 승인을 받으면 앞으로는 그 문제를 그녀가 직접 해결한다.

AI가 이처럼 진화하면서 많은 회사들이 아멜리아 같은 소프트웨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는 2018년 여름에 에리카(Erica)를 선보였다. 에리카는 당신의 당좌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면 이를 당신에게 알려주고 당신의 월별 지출에 근거해 비자 카드에 돈을 채워 넣으라고 제안한다. 제이피모건(JPMorgan)의 로봇은 COIN(Contract Intelligence)이라고 하고 캐피털 원(Capital One)에는 에노(Eno)라는 로봇이 있다. IBM은 이미 왓슨(Watson)이라는 브랜드로 아멜리아 같은 가상 도우미를 많이 판매했다. 클라우드 컴퓨터 솔루션 회사 세일스포스(Salesforce)도 아인슈타인(Einstein), 독일의 ERP 회사 SAP은 하나(HANA), 인도의 IT회사 인포시스(Infosys)는 니아(Nia)라는 이름의 화이트 칼라 로봇을 가지고 있다.

▲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선보인 에리카(Erica)는 당신의 당좌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면 이를 당신에게 알려주고 당신의 월별 지출에 근거해 비자 카드에 돈을 채워 넣으라고 제안한다.   출처= BOA

아멜리아, 왓슨, 에리카 같은 정교한 AI 시스템이 앞으로 많은 서비스 부문 일자리를 대체하겠지만, 단지 몇 가지 직업에 국한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동화의 역사에서 그대로 나타났던 바다. 예를 들어, 트랙터는 농장 여러 잡일들을 자동화했지만, 직업으로서의 농업을 없애지는 않았다. 단지 더 적은 수의 농부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앞으로 서비스 분야 전반에 걸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AI와 관련한 자동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전체적인 영향을 추정하기 위해 많은 연구들이 진행됐다. 컨설팅 회사 포레스터(Forrester)는 2016년 연구에서, 향후 10년 내에 미국 전체 일자리의 16%가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며, 화이트칼라 직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없어지는 일자리의 약 절반만큼은 소위 로봇 모니터링 전문가, 데이터 과학자, 자동화 전문가, 콘텐츠 큐레이터와 같은 이름으로 새롭게 창출되겠지만 2025년까지 최소한 일자리가 7% 순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간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되어 있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검색엔진을 구축하며 가장 혁신적이고 빠르게 성장했다는 구글의 알파벳조차도 2007년에서 2017년 사이 10년 동안 7만 13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을 뿐이다. 미국 근로자 1억 4천만 명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게다가 향후 몇 년 안에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질 미국 대부분의 서비스 업계 근로자들에게 구글 직원이 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자동화와 세계화가 연출하는 '글로보틱스'는 관용을 보이지 않고 수 많은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무자비하게 없앨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광범위하고 급속한 발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제조업과 19세기 농업부문을 붕괴시킨 기계화보다 훨씬 더 빨리 전문직과 서비스업 분야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다.

본 기사는 제네바 대학원의 국제경제학 교수이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경제자문회의 수석 고문을 지낸 리차드 볼드윈 교수가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글로보틱스의 대격변: 세계화, 로보틱스, 일자리의 미래'(The Globotics Upheaval: Globalization, Robotics, and the Future of Work)에서 발췌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