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역업을 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입니다. 회사는 지난달 회생을 신청해 현재 개시결정 여부에 대해 법원의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채권자인 J은행이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는 의견서를 냈습니다. J은행의 이의신청은 회사가 J은행으로부터 15억원의 신용장을 개설한 후 수입한 물품을 팔아 그 대금으로 ※유산스 결재를 하지 않고 거래처 미지급 물품대금을 먼저 상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채권은행의 이의신청으로, 법원 관계자도 "회사가 의도적으로 회생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생취하를 권고하는 상황이어서 매우 곤란한 입장입니다. 

당시 사정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회사가 지난해 9월 J은행에 신용장을 개설해 물건을 수입하고 그 납품대금을 거래처에 상환한 것은 아직 J은행에 대해 상환기일이 3개월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환기일이 남아 있었으므로 회사는 판매대금으로 먼저 상환기일이 닥친 상거래 채권과 인건비, 수입수수료, 대출 이자 등 운영자금 지출이 시급했던 것입니다. 이후 예상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급격히 유동성이 악화돼 J은행의 유산스를 결재하지 못하고 회생을 신청했습니다.

 

 

특정 채권자에게 채무를 상환하고 회생에 돌입해 이른바 편파변제가 의심되는 사례다. 편파변제는 공평하게 갚아야 할 채무를 한 채권자에게 몰아서 갚은 것을 의미한다.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그런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다. 채무자 회사의 사정을 알 수 없고 손실을 입었으니 당연한 이의 제기로 여겨진다. 법원의 반응도 이해되는 점이 있다. 회생절차 초기에 채권자의 이의를 접한 법원이 회생 인가결정이 어려워 개시결정도 어려울 수 있으니 나올법한 반응이다. 

개시결정은 회생절차에서 본격적인 법정관리의 시작을 의미하는 단계다. 법률(채무자회생법)은 개시결정과 동시에 많은 법적 효과를 부여한다. 채권, 채무 등의 복잡한 법률관계는 이 개시결정으로 모든 것이 채무자 회사를 중심으로 교통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개시결정을 받는 것, 그것이 회생절차의 첫 관문인 셈이다. 

따라서 개시결정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사례 회사의 상황은 심각하다. 취하 또는 기각결정으로 회생신청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채권자들은 채무자 회사의 모든 자산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채권을 회수할 것이 뻔하다. 직원들의 안위도 물론 보장할 수 없게 된다.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기각결정의 여파는 크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엄밀히 따지면 앞서 채무자 회사의 대표가 말한 사정이 사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개시결정을 받는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법은 회생신청을 기각할 사유를 정해놨다. ▲회생신청이 성실하지 않을 때, ▲채권자 일반의 이익에 적합하지 않을 때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채권자가 가압류, 강제집행 등을 모면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회생을 신청하거나, 회생절차보다 파산절차를 거치는 것이 채권자에게 유리할 때 등의 그 예가 될 수 있다. 

당시에 처한 채무자 회사의 입장에서는 상환기간이 남아 있는 J은행에 대한 채무를 뒤로 하고, 먼저 결재일이 닥친 채권자의 돈을 갚는 것이 당연하다. 이후 채무자 회사의 책임 없는 사유로 유동성이 악화된 것은 제도를 악용할 의도로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사례의 기업이 개시결정의 산을 넘지 못할 것은 아니다. 

◆ 실패 대비한 성동조선 다음 스텝...'P플랜'

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다. 회생절차를 대하는 자세다. 

주요 채권자의 이의가 제기되고, 법원이 취하를 종용하는 상황은 분명 위태로운 형국이다. 법률적으로 장애사유가 없더라도 채무자가 처한 당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억울함을 호소했다가는 낭패 보기 쉽다. '재수가 없으면' 기각이다. 

이런 형국에서 채무자 회사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최대한 포기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과 장래의 계획을 명확히 밝혀 두는 것이다. 설령 법원이 기각결정을 내리더라도 말이다. 

이 같은 조언은 재신청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재신청, 법원에 다시 회생신청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말한다. 회생신청은 재신청에 제한이 없다. 그러나, 재신청이 모두 개시결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신청한 회생신청이 기각됐다면 법원은 다시 신청한 회생신청에 대해 그 기각사유가 치유될 수 있는 것인지 따져 본다. 회생절차가 진행하다가 회생계획이 인가되지 않거나 폐지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매각이 쉽지 않은 성동조선이 마지막까지 회생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성동조선은 회생절차 종료시한을 앞두고 연말까지 회사의 매각을 재시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냈다. 채무자회생법상 채무자 회사의 회생계획안은 개시결정 후 최대 1년 6개월 안에 가결에 부쳐야 한다. 오는 10월 18일이 성동조선이 개시결정을 받은지 1년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일각에서는 성동조선의 이 같은 회생계획안 제출이 시간 끌기라는 비판이 있다. 3차까지 매각이 되지 않았던 회사가 연말까지 매각이 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정작 회사와 근로자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일말의 희망이 있다면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의 경험상 회생절차는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성동조선의 이번 회생계획안이 설령 시간 끌기의 의도가 있더라도 채권자들의 동의가 있다면 회생계획안은 인가될 수 있다. 이후 연말까지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 매수자가 나타난다면 지금 제출한 회생계획안은 재신청할 회생절차에서 P플랜 회생계획안의 초석이 될 수 있다. 

P플랜은 미리 회생계획안을 짜 놓고 회생신청을 하거나 개시결정을 받는 것을 말한다. 지금 이 회생계획안을 넣어 놓지 않으면 인수인이 나타났을 때 그만큼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 성동조선의 구조조정 주체들은 아마도 거기까지 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니까 말이다.

앞서 사례의 기업으로 잠깐 가보자. 법원의 재판부마다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법원이 사례의 기업의 회생신청을 기각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가급적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술해 놓지 않으면, 재신청에서 새로운 재판부가 다시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다. 이전 회생기록을 보고 채무자 회사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금 회생절차에 힘겨워 하는 기업들이 있다면, 꼭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 회생절차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 용어풀이 

유산스: 일반적으로 무역결제에 있어 어음의 지급기한을 가리킨다. 이러한 기한부 어음을 유산스 어음이라고 한다. 즉 어음의 지급방법 가운데 지급인이 지급약속을 하고 일정기간(통상 30일, 60일, 90일, 150일) 후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어음의 지급인인 수입상은 유산스 기간만큼 수입상품 대금의 지급이 연기되므로 수입상품을 매각해 그 대금으로 어음결제를 할 수 있는 융통성이 커진다. 그만큼 무역결제가 원활해진다. 한편 수출상, 즉 어음발행인은 유산스 기간만큼 대금회수를 유예하게 되므로, 수입상에 대한 단기신용을 제공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