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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4년]한지작가 송수련②‥체화되는 서정성
   
▲ 관조-내적시선, 150×208㎝

한국인들은 창호지문을 통해 세계를 보고 받아들이고 유추했다. 은은하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햇살 빛에 의해 세계는 방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세계의 이미지는 깊음과 담백함으로 물들여 진다. 그 문은 안과 밖을 분리시키거나 구별 짓지 아니한다.

안과 밖은 종이 한 장의 단면을 통해 늘 교호된다. 한국미의 전형성을 띠는 것들 역시 모종의 깊음, 담백함을 짙게 드리운다. 그리고 이는 일종의 절제와 통한다. 담백한 미의식의 추구는 곧 절제와 중화와 통한다는 생각이다. 송수련의 작업은 한지를 통해 그 같은 담백과 절제, 깊음의 미락을 은근하게 길어 올려준다는 생각이다.

   
▲ 98×127㎝

한지의 속성을 이해하고 이의 특질들을 살려나가면서 모종의 깊이를 추구하고자 하는 선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물론 한지의 물성 적 성격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실험적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지만, 사실 송수련의 작업은 점진적으로 자신의 감성과 체질에 의해 길어 올려 진 어떤 느낌에 기대어 재료를 순화시키고 자신과 일치시키는 쪽으로 몰고 왔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철저하게 재료에 대한 모종의 수행의 차원과 관련된다는 생각이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의 작업들은 그런 일관된 수행의 경로들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미지나 주제의식은 그에겐 부차적인 문제이다.

   
▲ 97×130㎝

담백하고 격조 있는 세계의 추구는 결국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순수하게 표현할 때 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 화두를 작업의 중심으로 세우고 있다는 느낌인데, 사실 그러한 격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이다.

자칫하면 그것은 비약적이며 직관에만 의존된 공허한 작업으로 귀결될 위험을 늘상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 같은 그림에의 노고란 자칫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나치게 적조해질 수 있는 화면으로 잦아드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분위기 위주의 그림으로 덜컥 경화되어 반복될 위험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편이다.

   
▲ 73×91㎝

작가(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는 한지의 뒷면에 부단한 붓질을 통해 색채를 물들인다.

화면 위로 스미거나 얹히지 않고 뒷면을 서서히 물들여가서 앞쪽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방법인데, 이런 과정은 더디고 지난한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 무수한 붓질의 수행, 원하는 만큼의 색조, 분위기를 우려내는데 필요한 오랜 시간의 경과를 요구하며, 그 시간과 경과가 작업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한지를 여러 번 배 접해나가면서 화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결국 한지와 하나가 된 담백한 색조들은 은은하고 안온해 보인다. 한지를 통해 몸 체화되는 이 서정성은 시각적인 것의 충일로 표출되지 아니하고 내음과 빛으로 물들여져서 드러난다. 온화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색조의 화면은 정서를 흠뻑 머금어서 무거워 보인다. 그 무거움이 어느 정도 차있다고 여겨질 때 그림이 완성되는 것 같다.

△박영택/미술평론가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  kdc@econovill.com  |  승인 2019.08.22  16: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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