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光化門을 거닐다보면 <北岳과三角이兄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兄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라는 未堂先生의 詩句가 떠오르고, 그러면 문득 생각나는게 具滋勝·張志瑗 夫婦입니다.
鴛鴦이란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름도 멋있는 望遠洞 보금자리의 2층 画室에서 함께 오손도손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꼭 한 쌍의 비둘기 같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나는 志瑗(CHANG CHI WON,Korean painter Chang Chi-Won,ARTIST CHANG CHI WON,서양화가 장지원,장지원 작가,장지원 화백,張志瑗)의 旧師이 있고, 또한 두사람이 모두 대학의 후배이기도 한 연유로 여러 해를 서로 친숙하게 지내왔으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머언 발치에서나마 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素朴하고 겸허한 人品의 신랑은 그림을 위해서 나가던 학교도 그만두는 비상한 결의를 보였으며 지금 韓国新美術会 会員으로서 엄격한 写実絵画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으며, 한편 아내는 그녀다운 아름다운 具象의 세계에 나래를 활짝 펴고, 두 사람모두 어지러운 이 땅의 美術風土나 世評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스스로의 분수를 지키며 조용하게 内実을 다져왔습니다.
이번에 그들은 研学次 나란히 캐나다로 건너가게 되었고, 떠남에 앞서 두 사람의 첫 夫婦展을 여기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애기들도 남겨두고 떠나가는 30대 중반에 다가 선이들이 万里他国에서 겪어야 할 苦楚는 미리 짐작이 가는 것이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골돌한 마음으로 이겨낸 興甫내외가 훗날 정
답게 보물 가득 찬 박을 타게 되듯이 이 誠実한 鴛鴦도 모든 試鍊을 극복하고 반드시 큰 열매를 거두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집 조그만 마당에는 몇 해 전에 지원의 화실 근처 꽃가게에서 그녀가 사서 건네준 한줄기 찔레가 이젠 제법 자라 담을 휘감으며 해마다 꽃피우며 싱그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지원의 장미>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수년간의 硏修를 마치고 帰国할 때까지 그 찔레를 더욱 소중하게 가꾸며 나는 그들의大成을 늘 祝願하고 있을 것입니다.
△정건모(前 東亜大教授·画家)/79, 선 畫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