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동시간대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성공을 거뒀다. 동명의 미국 드라마를 국내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 큰 호평을 받았으며 전대미문의 국회의사당 폭파 사고로 권력 최말단에 있던 박무진 환경부 장관이 갑자기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어 온갖 고난을 해쳐나가는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극 말미에 자기의 소임을 마치고 미세먼지 전문 학자로 돌아간 박무진에게 예전 청와대 비서진들이 찾아온다. 비서진들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는 박무진에게 묻는다. "정책만으로, 정치만으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잠시 고민하던 박무진은 이렇게 답한다. "정치가 할 수 없다면 무엇이 할 수 있겠나. 정치는 신이 부여한 모든 고통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대답이다"

우리는 흔히 정치(政治)와 통치(統治)의 개념을 혼용하지만, 사실 두 단어의 온도차이는 크다. 무언가를 다스리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질서를 잡는 개념에 가깝다. 나라나 지역을 도맡아 다스리는 통치의 개념보다는 더 시끄럽고 복잡하며,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충돌을 감내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는 아니지만, 인류는 아직까지 그 이상의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통치가 아닌 정치의 시대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정신에 맞게 헌법적 가치를 충실히 따라야 하며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은 온전히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위정자는 비록 국민의 선택을 받기는 했으나 편협한 이데올로기나 위험한 대결의식을 버려야 하며, 끊임없이 견제되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러한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수퍼파워의 무역전쟁은 이제 통화전쟁으로 번져 사실상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으며, 북한은 발사체를 쏘아올리는 한편 일본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서고 있다. 동북아시아 패권전쟁은 아시아 태평양은 물론 인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전략의 일부로 소모되며 강대국의 각축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신이 부여한 모든 고통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대답인, 정치의 올바른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특히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의 영역에서 현 정부는 올바른 정도를 걷기는 커녕 감정적인 대응과 위험한 선택만 저울질하고 있다. 외부에서의 경제공격에 적극 대응하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정치보다는 통치의 냄새가 강하기 때문이다. 

당장 5G를 기반으로 새로운 이동통신 역사를 쓰며 글로벌 ICT 경제를 선도하겠다고 나선 정부가,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10에 4G LTE 모델을 추가로 넣어 '취약계층'을 신경쓰라는 압박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5G를 키우겠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기습적인 세계최초 5G 상용화까지 감행했으면서, 5G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제 와 최신 스마트폰에 4G 모델도 넣으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비이성적이다.

통신 취약계층을 구제하고 싶었다면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아닌 중저가 스마트폰의 판로를 키우거나, 차라리 5G 요금제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더 도움이 됐을게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합리적인 정책이 아닌, 말 그대로 통치의 방식으로 기업을 대하고 있다. 이런 일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넓게 보면 현재 글로벌 패권 경쟁의 모든 동력은 정치였다. 미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꺾으려 무역전쟁을 일으켰고, 일본은 영광의 19세기 재연을 원하며 한국에 경제전쟁을 걸었다. 정치와 경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만큼 중요해진 이 복합적인 개념을 다루면서 정부는 왜 기초적인 조율도 없이 경제에 통치의 잣대를 들이대는가.

정부는, 경제를 대하며 통치가 아닌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벌어지고 의견이 갈리는 것은 적절하게 수렴하면 그만이다. '내가 옳으니 내 방식대로 기업이, 경제가 움직여야 한다'는 고약한 버릇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