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12년 방영된 SBS 드라마 <추적자>는 어린 딸이 교통사고로 죽고 그 충격에 아내까지 잃은 형사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거악'과 싸우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드라마 말미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거악'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도록 모든 언론의 입을 돈으로 막았으나, 인터넷 및 SNS를 통해 사건의 진실이 담긴 내용이 퍼지고 마는 장면. 결국 언론사는 '거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까지 퍼지면 우리도 쓰지 않을 수 없어요"

포털 중심의 정제되고 규격화된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사실 인터넷이야말로 저항정신, 나아가 히피정신에 기반을 둡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숨 막히는 규칙을 거부하고 시공간을 넘어 자유로운 '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월드와이드웹의 정신. 이는 SNS의 시대로도 흘러 해적기를 사무실에 걸어두는 젊은 사업가 마크 저커버그의 등장으로도 이어집니다. 물론 그가 해적인지는 의문이지만.

갑자기 인터넷의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자유로운 정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구글 유튜브와 관련해 벌어지는 일련의 논란들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유튜브는 텍스트 중심의 인터넷을 동영상 중심의 인터넷으로 이동시킨 기념비적인 사건이자 변곡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동영상'이라는 것이 적당한 기기를 갖추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 제작하는줄 알았으나, 스마트폰의 등장과 유튜브의 탄생은 그 진입장벽을 크게 낮춰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동영상 크리에이터이자, 유튜브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유로운 개성의 시대!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거악'이 아무리 기존 언론사의 입을 막아도 정의의 나팔수가 되어 세상에 진실을 축복처럼 내릴 수 있는 시대!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는 시대!

여기서 자문해야 합니다. 과연 그런 시대가 왔을까요?

▲ 박막례 할머니와 수전 유튜브 CEO가 만나고 있다. 출처=구글

나의 이야기를 한다
유튜브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있는 박막례 할머니가 지난 3월 수잔 워치스키 유튜브 CEO와 만났습니다. 

박 할머니는 현장에서 “유튜브에 대한 수잔의 꿈이 가장 궁금하다"고 물었다고 합니다. 수전 CEO는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그는 "유튜브를 통해 할머니의 이야기가 전해졌던 것처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푸근한 솜씨를 따라 잘 만들어진 쿠킹 클래스에서 여러대의 카메라가 자기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수잔 CEO의 발언은 유튜브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수잔 CEO의 말에 따르면 유튜브는 동영상 플랫폼이자 자유로운 업로드가 가능한 소통의 창구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세상에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대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그 진심은 아마 진실일 겁니다. 시간을 돌려 2005년 4월 23일로 가보죠. 이름도 생소한 동영상 플랫폼에 한 편의 동영상이 올라옵니다. 약 19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남자는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배경으로 다소 들뜬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All right, so here we are in front of the elephants, the cool thing about these guys is that they have really, really, really long trunks, and that's, that's cool. And that's pretty much all there is to say(좋아,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코끼리 앞이고, 얘네들의 멋진 점은 정말, 정말로 코가 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그것이 멋있다. 특별히 할 말은 그게 다야.)

남자의 이름은 독일에서 출생한 1979년생 자베드 카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공동 설립자입니다. 그가 업로드한 동영상에서 중얼거린 말은 유튜브가 지향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통에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 최초 유튜브 영상. 출처=갈무리

치밀하게 준비된, 유튜브 가면 무도회
유튜브의 지향점은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세상에 수줍게 알리며 소통하는, 말 그대로 풋풋하면서도 다채로운 세상입니다. 박 할머니처럼 평범한 인물도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이를 경계하고 막으려 한다면 '꼰대'가 되기 쉽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

문제는 지금의 유튜브가 자사의 지향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점에 있습니다. 3개월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공유했던 A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족이 사는 평범한 모습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기위해 유튜브를 했지만, 구독자는 우리가족이 전부다"면서 "가끔 이럴때면 공포 상황극이라도 벌이거나 라면 10개 연속으로 먹기와 같은 파격적인 시도를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A가 유튜브를 활용하는 것은, 어쩌면 유튜브가 진정 원하는 지향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은 커녕 만나기도 어렵다는 것. 결국 유튜브 콘텐츠는 자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소주 10병을 단숨에 마시거나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대왕문어 먹방을 시키거나, 누군가와 싸우거나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거나, 성매매를 하거나. 16일 현재 유튜브는 물론 인터넷 공간을 뒤흔들고 있는 꽂자 성매매 논란을 보고있자면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는 자괴감도 듭니다. 꽃자 유튜브 구독도 하지 않아도 워낙 파괴력이 높고 자극적인 이야기라 유튜브 외 다른 채널에서도 온통 꽃자 이야기 뿐이거든요.

▲ 유튜브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유튜브가 일상의 삶을 공유하는 채널이라는 말은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수전 CEO와 유튜브가 정말로 '삶의 공유'라는 가치를 믿고 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틀렸습니다. 

유튜브는 절대 그런 공간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여러분은 스마트폰에서 유튜브에 접속할 때 '아, 오늘은 어떤 평범한 일상을 구경하고 함께 호흡할까'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화끈한 의상을 입고 소주 병나발을 부는 이상한 남자의 탭댄스를 보기위해 접속하십니까? 십중팔구는 후자일겁니다. 다양한 멀티 미디어 홍수의 시대에서 우리가 유튜브에 바라는 것은 정해져 있고, 결국 '나를 좀 보소'라는 자극적인 콘텐츠는 범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튜버들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철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유튜브는 가면 무도회에 가깝습니다. 내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아닌, 자극적인 콘텐츠로 돈도 벌고 관심도 끌어보려는 이들의 집합체. 물론 이러한 집합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성 측면에서는 필요합니다. 다만 적절한 선을 지키는 규제가 필요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책임도 모두가 공유해야 합니다.

특히 유튜브는 당장 할 일이 있습니다.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습니다. 자사의 플랫폼 정체성을 자꾸 아름답고 소소한 삶의 공유 따위로 몰아가니 이를 일차적으로 믿는 대다수의 대중은 혼돈에 빠집니다. 차라리 돈을 원하는 미디어 크리에이터의 집합체라는 점을 인정하고, 유튜브를 아름다운 모델로 정의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1인 크레에이터가 유튜브를 만나 MCN(멀티채널네트워크)라는 엄연한 비즈니스로 발전한 순간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유튜브는 삶의 공유가 아니라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과 이를 만드는 사람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것은 나쁜일이 아니며, 오히려 이에 맞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더 건전한 논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착한 척, 이제 그만하시죠. 착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모두 박 할머니 같은 것은 아니잖아요?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