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련 그림에서는 갈색조와 청회색조가 지배적인 색가(색채 효과의 범주)를 이루고 있다. 마치 대지 혹은 흙 자체를 보는 듯 한 갈색조로 그려진 그림은 대지, 곧 자연의 본질을 투영하는, 자연의 본질에 순응하는 작가의 겸허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자연과 일체를 꾀하는 전통적인 관념과 미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청회색조로 된 그림은 투명하고 맑은 청색으로부터 종이 내부로 깊숙이 침잠한 짙은 청회색 혹은 군청색에 걸쳐 있다. 여기서 먹색은 이들 색조를 조율하는 최종적이며 결정 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흔히 오색(사실상 모든 색가를 포함한다는 상징적 의미)이라 불리워지는 먹색이 그렇듯이 최소한의 색채에 한정됨에도 불구하고 모든 채색 효과를 망라하는 풍부한 색가를 함축하는, 예사롭지 않은 색채감각을 엿볼 수 있다.

무심한 듯 툭툭 찍어 나간 점묘와 분방한 선묘가 선묘에 반영된 전통적인 미적 감각과 일치하고 있다. 곧 격이 없는 것이 아니면서 그 격이 선의 정형화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화면의 전체 혹은 그 일부를 채우고 있는 리드미컬한 점묘가 펼쳐놓은 멍석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전작에서 새끼줄이나 노끈 등을 화면 위에 놓고 원하는 이미지를 얻은 후 그것을 떼어내는 예를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표면적 인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새끼줄의 부푼 부분이 점묘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젓이다. 걸어놓은 발에 투영되어 가시화하는 반추상화된 사물을 보는 듯도 하다.

이러한 인상의 이면에는 사물이란 일견 실제에 속한 것이면서 동시에 추상이기도 하다는, 곧 기억의 저장고로부터 끄집어내어진 색 바랜 기억, 추억, 환기의 재편집이요, 재해석일 수 있다는 사물의 특이한 존재양상에 대한 작가(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종이회화 송수련,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의 관념이 놓여 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불빛을 보는 듯한 어떤 내면화한 풍경화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더 비정형적으로 풀어헤쳐진 그림에서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는 듯 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현실에 근거한 정서의 울림이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증폭된다. 대지와 공간이, 현실인식과 그것의 추상인 정서가 일체를 이루는 일원론적 세계 관념을 표현하고 있다.

△글=고충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