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르는 돌(Rolling Stone #159), Watercolor on paper, 24×32㎝, 2018

근작에서도 붓이 지나간 흔적, 즉 행위의 표상인 자국(Touch)은 중요 한 표현요소이다. 중첩되거나 내속화되는 그의 붓질은 시공의 터울을 언급하면서 밀도를 생성하고, 동시에 화면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따라서 그것만으로도 조형성은 완성된다. 하나, 무엇보다 눈여겨봐 야할 부분은 균형감이 느슨한 긴장감이 강한 이 붓질이 곧 작가의 감정선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가까이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지만 멀리 보면 공유의 매개로써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안내하는 즉흥적이 고 단시적인 통로이다.

결과적으로 크거나 작게 도포된 색과 거친 붓질은 더 이상 이게 무엇이 라는 설명에 치우치지 않는다. 과거 표현주의자들이 그러했듯, 안준섭의 색과 행위에서도 직관적 흐름이 다분하다. 당연히 형태는 모방에 충실하지 않는다.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직립하며 선, 형태, 색채 등은 그 감정과 감각의 표현가능성만을 위해 이용된다.

▲ 구르는 돌(Rolling Stone #108), Watercolor on paper, 24×32㎝, 2018

작업실에서 마주한 수많은 작품들을 보며 느낀 것인데, 그의 근작 들은 한편으로 흔히 초현실주의자들의 몫으로 치부되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의 양상도 없진 않다. 주지하자시피 자동기술법은 무의식적 자동작용을 말하는데, 의식이나 의도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 적 상태로 대할 때 거기서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의 분류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필자의 해석일 뿐이다. 그의(서양화가 안준섭, 안준섭 작가,Ahn Junseop,Artist Ahn Junseop,painter Ahn Junseop) 그림들은 무언가를 정의하거나 힌트를 제공하지 않는다. 완벽한 형체로 채워지지 않기에 추측도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수없이 가로지르는 색들은 흡사 사회적 관계 속에서 거주하는 인간의 양태를 포박하듯 비춰지고, 몇몇 기하학적 도상은 마치 자연이 베풀어준 그대로를 거두며 사는 삶인 아르카디아(Arkadia)의 세계인 냥 존재한다. 그리고 텁텁한 붓질은 그 세계를 열람하게 하는 거의 가치 있는 메신저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