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르는 돌(Rolling Stone #390), Acrylic on paper, 100×70.5㎝, 2018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안준섭은 여러 번의 개인전을 치렀으나 ‘매립지…’에서의 자국들을 완전히 걷어내지 않는다. 그러던 중 2019년에 이르러 2006년의 과거와 다시 조우한다. 그러나 그 당시와 온전한 쌍둥이는 아니다. 일종의 후기에 해당한다는 게 옳다.

작가 안준섭의 근래 작품은 감정과 감각 중심의 전개가 확연하기에 표현주의(Expressionismus)7)의와 등선을 이루는데, 의외의 공명이 있다. 역대 표현주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 공명이란 반드시 재현의 영역에 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자아의 투사, 심리의 그늘 밑에서 피어난 감정, 의지와 같은 여러 심리적-정신작용의 결과이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에 20세기 추상화와 표현주의 양식에서 곧잘 드러나는 환상과는 거리가 있다. 도리어 현실계에서의 결핍과 충족의 조형적 인용이 투사되어 있으며, 과거의 작품 내부에 자리 잡고 있던 “불규칙적이며 정리되지 않는 상황”8) 이나, 어떤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갈망, 예술가로써의 삶을 지정하는 경계와 인간 삶이 지향할 자유로의 의미가 짙게 배어 있다.

▲ 구르는 돌(Rolling Stone #323), Acrylic on paper, 99.5×70.5㎝, 2018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의식을 소실점으로 하며, 그 소실점을 축으로 색과 상징으로써의 덩어리, 감정이 교환되는 모든 것을 조합한 조형이 만들어진다.

감정, 이 감정이 적절하게 구사되는 첫 번째 지점은 색(色)이다. ‘매립지…’ 연작만 봐도 그는(서양화가 안준섭, 안준섭 작가,Ahn Junseop,Artist Ahn Junseop,painter Ahn Junseop) 채도가 명확하지 않은 회갈색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는 매립지의 불분명함과 모호함, 도시화와 인위성에 무심한 현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어쩌면 작가를 둘러싼 생태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혹은 어떤 것으로도 정의될 수 없는 신비로운 자연을 뜻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당시의 색은 철저히 불완전했고 작가에 의한 자기 지시성이 명료했다.

하지만 오늘의 색은 무게와 부피를 가 지지 않으며 애매하거나 난해함에 분동이 기운다. 음악적 율동이 들어 있고, 심상에 따라 색은 달라진다. 여백과 도상은 그 심상의 일부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각주(脚註)

7) 일부분 구상성을 지니므로 신표현주의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신표현주의자들은 형상성과 예술성에 대한 회복을 추구했다.

8) 안준섭 작가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