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건용 화백<사진:권동철>

“인식이나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몸이라는 사실이다. 지각의 주체가 데카르트가 생각한 것처럼 코기토가 아니라 세계에 실존하는 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메를로 퐁티에게 있어서 코기토는 사유하는 정신이 아닌 몸 그 자체를 의미하며, 대상은 몸의 실존적 상황을 통해서 지각되는 것이지, 순수한 의식의 완전한 투명성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著, 김화자 옮김, 책세상 刊>

화면은 패널(panel)뒤에서 앞쪽으로 손을 넘겨 그은 것이다. 긋는 선을 보지 않고 신체한계 안에서 이뤄지는데 여러 방법론이 있다. 화면을 옆에다 두고 오른손으로 어깨 위에서부터 허용하는 만큼 뒤로 뻗어서 또 왼쪽으로 어깨를 돌려서 같은 방법으로 반원을 그려주면 두 선이 만나 하트모양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신체환경이나 공간 안에서 중성화의 논리에서 만나는 신체의 관계성이야말로 현대미술가 이건용 작가에겐 창작의 찬스다. 우연성이 아니라 상관성이 일어날 때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으로 그때 지각현상이 일어나고 예술의 감동이 일어난다.

▲ 변형76-1, 화면 뒤에서 그린 사람을 위하여, 캔버스에 아크릴, 169.8×258.8㎝, 2011

이것은 한 쪽이 우세한 위치에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밀고 당기는 가능성의 관련을 보여준다. 실수조차 허용하고 나아가 중요한 요소로 인정한다. 그런 차이를 수용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접촉세계를 지향한다.

회화와 인간의 조건과 관계성이 수평적 입장에서 만나는 지점이 멀티미디어아티스 이건용(Multi Media Artist LEE KUN YONG) 회화의 지향점이다. 바로 융합의 현대성과 동시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내 작품에 있어서 미디어의 실체성에 대한 관심은 이미 배재고교 시절에 깊게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에서 신체성은 실재적으로 드러나는 매체에 대한 강조점으로 항상 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 신체드로잉 87-A-3(샤먼), 종이에 아크릴, 파스텔, 200×200㎝, 1987(부산시립미술관소장)

◇보다 넓은 세계와 이웃아저씨

황해도 사리원출생인 서양화가 이건용(LEE KUN YONG,李健鏞,1942~)화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전공 및 계명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 졸업했다. 국립 군산대학교 명예교수다.

황해도 사리원출생인 그는 “해방되던 해에 어머니가 동생을 해산할 때가되어 서울외할머니 댁으로 왔다. 지금도 러시아인 소작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얼굴 등 사리원 고향풍경이 떠오른다. 아버님은 소설가가 되려고 하다가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한 목사이셨다”라고 회상했다.

전위적 행보를 걸어온 현대미술가 이건용 부산시립미술관 회고전은 6월28일 오픈하여 10월13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회화, 설치 등 60여점과 드로잉 120여점을 전시 중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공간과 형상의 관계에 주목한 ‘구조’작품을 비롯하여 70년대 초 ‘신체 항(項), 열 방향의 상징을 정방형의 전시실 공간에 구현하는 시방(十方), 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신체드로잉들, 사진과 영상으로 구성되는 ‘이벤트-로지컬’, 회화의 본질에 대한 ‘포(布)’, ‘체(體)’시리즈 등으로 구성했다.

한편 서울 동부이촌동 작업실에서 장시간 인터뷰 한 이건용 작가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모름지기 미술가라고 한다면 아틀리에 안에 갇혀 있는 성자가 아니고 시장을 통과해서 시내를 거쳐 보다 넓은 세계로 관통해 가는 이웃아저씨 정도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