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월, 화웨이는 국내에 첫 5G 오픈랩을 열었습니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려 전방위적 공세를 펼치던 시기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의 조력자"라는 논리가 횡행하며 국내에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화웨이가 기술탈취를 통해 한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고, 화웨이를 오래된 색깔론에 덧대는 거친 반응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습니다. 5G 정국에서 화웨이의 장비를 활용한 LG유플러스까지 비판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 다 했습니다.

조용했던 5G 오픈랩, 지금은?
당시 5G 오픈랩 개소는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화웨이는 5G 오픈랩 개소를 앞두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은 물론 정부 부처 관계자들을 초청하려고 했으나 대부분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심지어 화웨이와 오랫동안 협력을 유지하던 LG유플러스 관계자도 행사에 불참했습니다.

행사는 아예 비공개로 열렸고, 5G 오픈랩 개소 당시 참석한 국내 중소기업들의 면면도 혹시 모를 지탄을 우려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개소 행사에 참여한 기업들 이름은 알려줘도 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화웨이 관계자는 "해당 기업들이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 5G 오픈랩이 개소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그리고 시간이 흘러 8월 8일, 화웨이는 5G 오픈랩에 이어 국내 기업들과 5G 기반 서비스 개발 및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한국과 건강한 5G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5G 오픈랩 당시의 약속을 지켰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당시 숀 멍 한국화웨이 지사장은 5G 오픈랩 개소 당시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다. 화웨이는 지난 17년간 한국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화웨이는 ‘한국에서 그리고 한국을 위해’라는 이념과 자체적인 5G 네트워크 강점을 기반으로 다수의 한국 ICT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5G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양차오빈(杨超斌) 화웨이의 5G 프로덕트 라인 사장도 “5G는 한 회사가 단독으로 처리해낼 수 없다”면서 글로벌 5G 솔루션 선도기업인 화웨이는 5G 에코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업계 파트너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8월 8일 열렸던 업무협약 분위기는 약간 다릅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5G 오픈랩 당시보다는 화웨이의 입장이 선명합니다. 5G 오픈랩 당시에는 참가한 기업들의 명단도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모두 공개됐습니다. 주인공은 VR 콘텐츠 제작 기업인 서틴스플로어, 자율주행 토탈 솔루션 전문 기업인 엔지스테크널러지, 모바일 솔루션 전문 기업인 에스피테크놀러지라고 합니다.

멍 샤오윈(Meng Shaoyun) 한국화웨이 CEO는 “이번 업무혁약은 한국의 5G 및 ICT 산업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자 사회적 책임기업으로서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 한국의 5G 생태계를 더욱 건강하게 조성하는데 기여하기 위함”이며,“화웨이는 한국의 현재와 미래의 5G 생태계 조성을 위해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한국 기업들과 협력을 이어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습니다.

▲ 한국화웨이와 엔지스테크널러지가 5G 기반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사정이 달라졌다
화웨이가 아직은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5월의 화웨이와 8월의 화웨이가 보여주는 미묘한 기류의 변화는, 이제 우리도 '화웨이 활용법'에 일정부분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를 시작하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화웨이를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기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어느정도 사실일 수 있습니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와의 유착설은 충분한 신빙성이 있으며 이와 관련해 다양한 증거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백도어 논란을 둘러싼 이슈는 확인되지 않지만, 최소한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ICT 기술굴기 핵심인 것은 사실이며 현재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연대를 포기하면서 화웨이의 손을 전적으로 잡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그러나 화웨이가 가진 기술적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화웨이와 5G 네트워크 부품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으며 한국은 당연히 삼성전자 중심의 로드맵을 살려 글로벌 시장을 타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글로벌 ICT 전자 네트워크는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각 기술의 기본적인 접점을 마련하고 시너지를 긍정적으로 낼 수 있으면, 당연히 이를 택해야 합니다.

화웨이의 기술적 매력과 연결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매력적이라도, 역시 화웨이를 배척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상황의 변화를 논해야 합니다.

현재 미중 경제전쟁은 G20 이후 휴전에 들어갔으나 최근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전면전이 시작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정부도 화웨이에 대한 전면적 압박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5월과 비슷하지요.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한일 경제전쟁입니다. 일본이 사실상 미국의 묵인 아래 한국의 반도체 및 전자 ICT 인프라에 직접적인 공격을 한 상태에서 무조건 중국, 그리고 화웨이 카드를 버릴 필요가 있을까요?

완전히 중국과 화웨이의 편에 설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협상학적 관점에서도 중국과 화웨이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화웨이에 모든 것을 '바치는' 개념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합니다. 적절하게도 화웨이는 꾸준히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미국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한편, 이제 중국 화웨이의 활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때가 왔습니다. 무조건 밀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한 패권경쟁의 틀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 지금의 위기를 넘기는 것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미중 경제전쟁의 재발과 한일 경제전쟁이라는 변수속에서, 우리는 이제 화웨이와 전략적 동거라는 또 하나의 카드를 고민할 때가 왔습니다.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