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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사건 판결’ 다시 읽어보니②] ‘건국하는 심정’으로 썼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 주요 쟁점은?
   

대법원 민사1부(김능환 대법관)는 2012. 5. 24. 신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신일본제철),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이하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이며 원심법원인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판결, 2009다22549판결). 그 이전까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사건에 대한 재판은 일본 및 우리나라에서 여러 차례 있어 왔지만, 피해자들이 일부라도 승소한 판결은 이 판결이 처음이었고, 더구나 국내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내린 판결이어서 한일 양국에 미친 사회적 파장은 컸다. 이후 원심법원으로 돌아간 이 사건에서 신일본제철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는 각 1억원, 미쓰비시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는 각 8천만원의 위자료가 인정되었고, 2013년 신일본제철, 미쓰비시에 의해 다시 대법원에 상고된 이 사건은 상고 후 5년 가까이 선고가 지연되며 ‘양승태 코트’의 재판거래 의혹을 불러일으키다 2018년 10. 30.과 11. 29. ‘김명수 코트’하에서 기존 대법원 민사1부의 견해가 그대로 관철되었다. 2012년 당시 대법원 판결에서 언급된 주요 쟁점은 아래와 같다.

 

1. 대한민국 법원은 일본에서 이미 선고된 판결을 무시하고 이를 승인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이와 배치되는 결론의 판결을 내려도 되나?

일제강점기 당시 미쓰비시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동원된 피해자들의 소송은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피해자들은 1995. 12. 11. 일본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서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일제강점기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는 금액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999년부터 2007년까지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패소하였다. 이에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항소심 재판이 계속 중이던 2000. 5. 1. 부산지방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에서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인 소멸시효기간을 도과하였다는 이유로, 2심에서는 이에 덧붙여 민사소송법 제217조상 일본 법원 등 외국 법원에서 내려진 확정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 상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은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면 국내법적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배척한 일본 판결은 이러한 ‘신의칙’은 물론 우리 헌법의 핵심적 가치에도 반한다며 국내법적으로 승인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이전까지, 또한 그 이후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대체로 호의적이었고,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국내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판시한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정도인데, 당시 대법원은 ‘사법적극주의’의 입장에서 일본 법원의 확정판결은 국내법적 효력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지금도 보충적으로 적용해야 할 ‘신의칙’을 무리하게 적용하였다는 입장과 반인도적인 강제징용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이 없다고 판시한 일본 판결을 우리 법원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 서로 팽팽히 맞서 있다.

 

2. 지금의 신일본제철, 미쓰비시는 과거의 일본제철, 미쓰비시와 동일한가?

한편, 소송을 당한 신일본제철, 미쓰비시 측은 소송 과정에서 과거 피해자들에 대한 강제징용을 자행하였던 일본제철, 미쓰비시(이하 구 미쓰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일본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 등의 적용으로 해체되어 실체가 사라졌는바, 이후 새로 설립된 신일본제철, 미쓰비시를 상대로 과거 전범기업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제철, 구 미쓰비시를 해체시킨 일본 법은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이라는 일본 국내의 특별한 목적 아래에 제정된 기술적 입법에 불과하므로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고, 오히려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가 일본제철과 구 미쓰비시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하는 등 인적·물적 구성에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비추어 신일본제철, 미쓰비시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제철, 구 미쓰비시를 승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즉, 대법원은 ‘법인은 해산 및 청산을 하면 법인격이 소멸된다.’는 법리를 피하기 위해 일본법 대신 우리나라 법을 적용시키는 한편 ‘공서양속’, 이른바 ‘신의칙’을 동원해 법인격이 승계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이른바 ‘법인격 부인 법리’를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등 법인격 법리 자체를 존중하는 우리 법원의 판례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인 것에 속한다.

 

   
▲ 지난 4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운데)와 김용화 할아버지(오른쪽) 등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3.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청구를 너무 늦게 한 것은 아닌가?

일본에서의 판결 및 2012년 이전 1심 및 2심 국내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일본의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기간, 이른바 소멸시효 기간을 넘겨 소송을 제기하였으므로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일본의 불법행위로 강제징용을 다한 것은 1945년 이전인 반면,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이었으므로 불법행위 발생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의 시효가 적용되는 불법행위로 인한 소멸시효 기간은 모두 만료된 상황이었다(민법 제766조). 물론 이 경우에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권리 행사 상의 ‘법률상 장애’가 있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항변해 볼만은 하지만(민법 제166조 제1항), 1965년부터 3년 혹은 10년의 시효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은 최소한 1975년까지는 이들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어야 했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해 주기 위해서는 소위 ‘신의칙’상 인정되고 있는 ‘소멸시효 남용 이론’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소멸시효 남용 이론’이란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법리를 말한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판결 참조). 2012년 대법원은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전까지는 한일 양국의 국교가 단절되었던 점, 이후에도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확실했던 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제철, 구 미쓰비시가 신일본제철, 미쓰비시와 동일한가에 대하여 의문이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법원에 소제기를 할 당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다고 보아 ‘소멸시효 남용 이론’을 원용하였고, 이 경우에 각 일본기업들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법언에서도 알 수 있듯 법원에 의해 소멸시효 완성이 인정되는 것은 원칙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고, 실제 우리 법원이 ‘소멸시효 남용 이론’을 적극적으로 원용하는 경우는 지금껏 드물었다는 점에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파격적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이 같은 이유로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에 “대법원 판결은 원고들 청구가 넘어야 할 주요 장애 요소를 신의성실, 권리남용, 반사회질서 등의 법리를 통해 제거하고 있다.”는 비판을 한 바 있으며, 2014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사건 판결의 종합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간한 서울대 로스쿨 교수 5인 역시 2012년 판결이 결론에만 치중하다보니 해당 판결이 법리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실무계와 학계의 비판에 대해서는 사회적 타당성보다 법적 안정성과 형식논리에만 치중하였다는 재비판이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사건 관련 판결이 지금과 같이 나라를 뒤흔들만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그 때 예상했더라면 대법원은 2012년 판결을 내릴 때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2012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하나의 쟁점으로 다루어지기도 하였으나, 2018년 대법원 판결로 더욱 논란이 뜨거워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개인의 각 일본기업에 대한 청구권 포기’내용이 포함되어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8.06  17: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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