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신라젠은 긴급 간담회를 열고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의 펙사펙 임상 3상 중단 권고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출처=신라젠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한때 시가총액 10조원을 넘었던 신라젠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수조원대 가치를 인정받았던 바이러스 기반 면역항암제 '펙사벡'의 임상 3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핵심 파이프라인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자 신라젠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5일 신라젠은 전 거래일보다 29.97% 하락한 2만1850원에 장을 마감했다. 2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펙사벡의 임상중단 충격이 작지 않음을 시사했다.

지난 4일 신라젠은 긴급 간담회를 열고 투자자 달래기에 나섰지만 주가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간담회는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의 펙사펙 임상 3상 중단 권고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위해 마련됐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도 이날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와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명했다.

문 대표는 "펙사벡 임상중단 권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며 "주주와 기관투자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은 유감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임상 조기 중단하지만 펙사벡 문제 없어

신라젠은 'PHOCUS'로 명명된 '펙사벡'의 간암 대상 임상 3상을 조기 종료할 방침이다. 앞서 신라젠은 지난 2일 미국 DMC로부터 펙사벡 PHOCUS 임상을 중단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신라젠은 순순히 DMC의 권고를 따르고 있지만 이번 임상 3상 조기 종료는 펙사벡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항암바이러스와 표적항암제 병행요법의 치료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로 보고 있다.

펙사벡은 인체 내 면역 증강을 유도하는 물질을 배출해 항암효과를 극대화하는 기전으로 개발된 항암 바이러스다. 특히 일반 세포까지 공격하는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만 공격하기 때문에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무용성 평가에서 펙사벡의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으면서 시장의 기대감도 한풀 꺾였다.

▲펙사벡은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만 공격하는 특성을 가진다. 출처=신라젠

일반적으로 무용성 평가에서 임상 중단을 권고하는 경우는 크게 2가지다. 해당 약물의 효과가 매우 미비해 임상을 지속해도 효과를 입증할 가능성이 낮은 경우와 해당 약물의 부작용이 과도해 피험자의 권리와 안전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이다.

신라젠은 2015년부터 미국과 유럽 등 21개국에서 간암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펙사벡의 임상 3상을 진행해왔다. 기존 간암 치료제 ‘넥사바’과 펙사벡을 병용 투여한 300명과 넥사바만 단독 투여한 300명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병용 투여가 넥사바 단독 투여 대비 생존기간의 향상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펙사벡 투여 후 넥사바를 투여하는 병용요법이 간암환자에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펙사벡에 대한 믿음 여전히 확고

펙사벡 PHOCUS 임상 중단은 펙사벡의 물질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다. 덕분에 신라젠 주가는 급락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젠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펙사벡과 면역항암제 조합을 통한 다수의 연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펙사벡 PHOCUS 임상이 중단될지라도 남은 연구에서 반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신라젠은 신장암, 대장암 유방암 등 다수의 암종에서 다양한 면역관문억제제와 펙사벡을 병용투여하는 임상시험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펙사벡의 치료 효과를 재입증하고 기술수출까지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문 대표는 "펙사벡을 대상으로 한 면역항암제와의 초기 임상을 통해 병용요법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다"면서 "펙사벡 PHOCUS 임상의 잔여 예산도 신규 면역항암제 병용 임상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신라젠은 향후 신장암, 대장암 유방암 등 다수의 암종에서 다양한 면역관문억제제와 펙사벡을 병용투여하는 임상시험에 집중할 계획이다. 출처=신라젠

현재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표적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 리제네론사 ‘리브타요’와의 병용 투여다. 신라젠에 따르면 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용량 결정 임상시험에서 1명의 완전반응, 1명의 부분반응, 1명의 안전병변, 2명의 진행 결과를 확인했다. 현재 펙사벡과 리브타요 병용요법에 대한 환자군 11명을 모집 완료했으며, 주기적인 CT 촬영을 통해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국립암연구소(NCI)에서 면역관문억제제 불응성 암종인 대장암을 대상으로 아스트라제네카사의 임핀지와 펙사벡 병용요법 임상도 진행 중이다. 또 가장 흔한 여성암인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머크사의 키트루다와 펙사벡을 병용하는 임상도 계획하고 있다.

문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임상 데이터가 일정 수준 확보되는 대로 라이선스 아웃을 진행하고자 한다"면서 "타 적응증 병용임상의 효능 데이터가 우수할 경우 라이선스 아웃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가 먹튀' '발 빼기' 없을 것

신라젠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이날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신라젠 임직원들은 스톡옵션(주식 매수 선택권)을 행사해 큰돈을 벌었다. 대부분 거액을 챙긴 후 퇴사했다. 이로 인해 무용성평가 결과를 예견한 임직원들이 사전에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신현필 신라젠 전무는 지난달 1일부터 8일까지 4회에 걸쳐 보통주 16만7777주를 장내 매도했다. 약 88억원 규모다. 현재 신라젠은 신 전무에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책임경영을 위해 추가 지분 매입 의사를 밝혔다  출처=신라젠

이와 관련해 문 대표는 "'주가 먹튀'나 발 빼기는 절대 없다"면서 각종 의혹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사내에 주가 먹튀하고 발빼는 직원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현재 회사에 남아있는 분들은 펙사벡을 굳게 믿고 펙사벡 개발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펙사벡 무용성 평가에 대해서는 회사가 개입하거나 미리 결과를 알 수도 없다"며 "데이터에 회사가 접근하기만 해도 관련 임상시험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문 대표는 향후 주가 방어를 위해 지분 매입 의사를 밝혔다. 현재 신라젠 지분 5.18%를 보유 중인 문 대표는 "개인적으로 아직 세금, 부채 등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회사를 빨리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 지분을 매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