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이 2일 각의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확정하자, 국내의 반일감정이 들끓고 있다. 당장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벌어지며 유니클로와 아사히 등이 상당한 타격을 받는 가운데,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IT 기업들도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대표적인 사례가 쿠팡이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쿠팡=일본기업’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일부 지역 맘카페에서는 “더러운 일본의 돈을 받은 쿠팡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격한 말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쿠팡이 이례적으로 ‘우리는 한국기업’이라는 공지를 올린 것도 이러한 여론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쿠팡을 일본기업으로 분류하지 않는 기류가 강하다. 다만 한국기업으로 보기도 모호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봐야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에 본사를 둔 쿠팡LLC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쿠팡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으며 쿠팡LCC에는 비전펀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김범석 쿠팡 대표도 국적은 미국이다.

다만 쿠팡은 한국에서 설립됐고 한국에서 활동하며 직원을 채용하기 때문에 한국기업의 조건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구조를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봐야 한다. 쿠팡을 두고 ‘일본기업이냐, 한국기업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다. 일각에서는 쿠팡의 배당금이 일본에 흘러간다고 주장하는데, 쿠팡은 영업이익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배당을 한 적이 없다. 다만 배당을 하게되면 비전펀드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로 흘러간다.

네이버도 좌불안석이다. 글로벌 전략을 강화하며 일본을 중심으로 라인을 상장하는 등 성과를 내는 상태에서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사례도 있다. 네이버의 라인이 일본에서 상장되던 2016년 7월,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은 ‘LINEは日本企業、韓国親会社トップが言明(라인은 일본기업, 한국회사 대표의 언급)’ 이라는 제목으로 이해진 당시 의장(현 GIO)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당시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은 “네이버의 라인 주식비율이 높기 때문에 라인이 한국 기업이라는 (현지의) 의견이 있다”고 말하자 이해진 의장은 “회사의 국적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대해 이번 증시 상장을 통해 확실히 밝히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이해진 GIO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이어 이해진 의장은 “라인은 일본 기업인가 한국기업인가.... 내 생각에 라인은 일본 도쿄에 본사가 있고 의사결정 체제를 봐도 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수가 일본인이다. 물론 일본의 법률에 따라 관리 운영되고 세금도 일본에 납부하고 있다. 그 의미인 즉, 라인은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日本企業なのか韓国企業なのか。私の考えでは、LINEは日本の東京に本社を置いており、意思決定の体制を見ても、例えば取締役会の過半数は日本人で構成されています。もちろん、日本の法律に基づいて管理・運営されており、税金も日本にちゃんと収めている。その意味で、LINEは日本の会社だと思っています]

이 대목이 알려지며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일본과 지나치게 가까운 기업이 아닌가’라는 논란이 퍼졌다. 그러나 이 의장은 “네이버가 라인 주식의 약 83%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라인을 한국 기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그 이론에 따르면 네이버 주식의 약 6할도 외국인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네이버와 그 자회사인 라인도 한국이나 일본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적을 묻는 '의도'는 무엇인가"라며 "이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뭔가 불필요한 이슈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닐까"라고 전했다. 이는 네이버와 라인의 국적이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글로벌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기사 제목의 자극적인 느낌과 달리, 이해진 의장은 글로벌을 지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일본 기업으로 여겨지지만, 그 정체성은 역시 글로벌이라는 뜻이다. 즉 네이버라는 기업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글로벌 기업이며, 이러한 정체성은 최근 비즈니스 트렌드에 부합되는 정공법으로 통하지만 자칫 반일감정이 극에 대한 지금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카카오도 어정쩡한 상황이다. 최근 간편결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본 비즈니스 비중을 늘리는 한편, 픽코마의 성공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상황에서 자칫 ‘일본과 지나치게 가까운 기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픽코마는 최근 카카오의 글로벌, 콘텐츠 성장을 알리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몸을 사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카카오재팬의 픽코마는 폭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전년대비 방문자수 2.2배, 매출이 2.7배 늘며 공격적인 외연 확장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1분기 매출도 전기대비 32%, 전년대비 173% 성장했으며 지난해 일본 iOS와 구글플레이 만화앱 통합 다운로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일각에서는 '당분간 국내에 픽코마에 대한 성장 소식을 공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루머까지 나오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두 회사는 실제로 일본에서 간편결제 관련 동력을 걸었으나 최근 '쉬쉬'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본에 상장한 게임회사 넥슨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게임 '시노앨리스'를 당초 지난달 18일 출시하려고 했으나 현재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쿠팡과 네이버, 카카오 모두 한국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IT 기업이며, 이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뛰고있기 때문에 감정적이고 단편적인 사고방식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방침이 알려지며 국내의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자기의 비전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국내 일부 IT 기업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