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秀璉씨는 이제 어엿한 한 작가로 성장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엿하다는 뜻은 그가 27회 국전의 문공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의 공식적인 평가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필자는 훨씬 이전으로부터 이 작가를 만났으며, 그래서 그의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만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안다는 것은 객관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정서적인 자부심 이 작용하는 것이어서 바른 이해를 흐리게 하는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순수하다는 이름의 그 친하다는 의식이近視의 눈으로 대상을屈折시킨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作家는 필자의 이러한近視의 한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바른 遠近으로 균형을 잡아주었 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원숙한性格때문일 것입니다만 그가 작가이면서도 가정적 본능을 희생시키지 않았다는 데 보다 큰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예술가는 예술만을 위해서 마치 수도승처럼 외길을 가는 사람으로 왜곡되고 있습니다만 이건 옳지 못합니다.
실제로 그는(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 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남편을 돕고 세 아이의 뒷바라지를 정리한 다음 市内의 아틀리에로 나오고 다시 저녁에는 市外의 먼 집으로 전철을 타고 되돌아가는 고된 일과의 예술가인 것입니다.
△유준상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