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업무의 특성상 메일로 보도자료를 많이 받습니다. 하루에 수백개씩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보면서 허덕일 때가 많지만 기사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좋은 정보를 발굴할 필요성도 느낍니다. 보도자료가 모든 취재의 시작은 아니지만, 좋은 취재의 시작일 수는 있습니다.

다만 간혹 묘한 보도자료를 받으면 만감이 교차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세계 최초’ ‘업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들어간 것은 일단 의심부터 합니다. 사실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과하게 포장하는 보도자료는 이상하게 의심부터 하면서 읽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사의 서비스와 비전을 장엄하게 펼쳐내며 미사어구까지 동원하면 기자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의심을 넘어 ‘어디 제대로 한 번 보자’는 승부욕까지 생깁니다. 특히 해당 기업과 서비스가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때는 더욱 더.

 

지난 7일과 22일, 싸이월드의 보도자료를 연이어 받았습니다. 먼저 7일 보도자료에는 다양한 어려움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암호화폐 사업과 글로벌 콘텐츠 상럽을 통해 활로를 찾겠다는 설명이 보입니다. 

보도자료 내용을 확인하고 취재를 시작하며 업계에서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전 직원은 싸이월드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헛웃음만 보이더군요. 다만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22일 보도자료는 약간 특이했습니다.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는 싸이월드, 기대감 UP’이라는 보도자료 제목이야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제목’이지만, 내용이 약간 묘합니다. 수익 다변화를 통해 다양한 활로를 찾겠다는 내용인데 이는 자사의 비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비전’과 같은 잘 짜여진 서사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내용을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싸이월드가 걸어온 영광과 고난의 길을 잔잔히 묘사합니다. “1999년에 시작한 싸이월드는 2001년 미니홈피라는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를 시작, 일 접속자 700만명, 월 접속자 2000만명으로 한국 최고의, 세계 최초의 SNS 서비스였다”에서 “분리된 이후 재기를 위해, 모바일 버전 출시 등, 많은 변화를 시도했지만, 사용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또 다시 자금, 인력 부족 등으로 위기에 몰렸다”로 이어지는 극적인 구성. 지나간 영광과 지금의 고난입니다.

다음으로는 지금의 고난을 해결해줄 수 있는 구세군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분사된지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서비스 중단을 검토하게 되었고, 구세군처럼 싸이월드에 나타난 건(실제 보도자료 표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 사장”이라면서 “전 대표는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1999년 인터넷 커뮤니티 ‘프리챌’을 만든 인물로, 당시 성공한 벤처 기업가로 이름을 알렸다”고 말합니다. 자사와 서비스의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에서 CEO를 이렇게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정말 처음 봅니다.

다음은 비전입니다. “전 대표가 부활을 시도하는 싸이월드를 인수해 성공을 위한 여러 행보가 있을 것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곧바로 그는 삼성전자 투자를 이끌어내며 업계에 큰 호평을 받았다”면서 “미니홈피와 결합된 블록체인 기반의 보상형 플랫폼으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로 이어집니다.

▲ 싸이월드의 주요행보. 출처=싸이월드

만감이 교차합니다. 토종 SNS 1세대인 싸이월드의 재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 보도자료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현재 싸이월드는 많은 직원들이 퇴사하고 있으며 야심차게 준비한 뉴스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인 ‘큐’도 끝내 무너지며 제휴를 맺었던 언론사와 소송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모두 전 대표가 취임한 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물론 자사의 비전을 보도자료로 소개하면서 ‘아픈 대목’을 스스로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싸이월드의 어려움이 업계에 잘 알려진 가운데 심지어 실체가 명확하지도 않은 암호화폐 사업까지 추구하면서 ‘구세군’을 말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건 보도자료가 아니라 예언의 서에 가까운 서사입니다.

싸이월드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공언한 대로 암호화폐와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며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질 수 있고,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아직 싸이월드는 3.0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고, 이제 실력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 비전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심상치 않은 보도자료는, 혹시 싸이월드 내부에서 스스로를 둘러싼 위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합니다.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