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빚 때문에 4년 동안 주소등록 조차 하지 못한 K씨(여·37). 그의 빚은 원금만 2000만원이다. 그는 가정불화로 배우자와 이혼하고 아이들과 떨어져 최근까지 혼자 지냈다. K씨가 거주지 인근 안산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아 간 것은 지난 11일. 어렵게 일을 시작하자마자 한 채권업체가 K씨의 통장을 압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센터 상담사는 K씨가 월 20만원씩 빚을 갚는 조건으로 그의 워크아웃신청을 수리했다. 

기자가 이날 신분을 밝히지 않고 K씨와 동행했을 당시 상담과 채무조정에 걸린 시간은 15분이 넘지 않았다. 4년간의 빚 독촉과 막연한 두려움이 상담사의 진단으로 불과 15분 만에 해결된 셈이다. 신청과 동시 즉시로 빚 독촉은 금지됐고 K씨는 그날로 말소된 주소를 새로 등록했다. 

접근성과 신속성.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 원장(신용회복위원장 겸임)이 취임한 이후 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의 변화를 표현한 단어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신속한 하이브리드 상담체계’를 더 강화할 전망이다. 진흥원이 만든 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의 상담에 민간의 역량을 더 끌어들인다는 복안이다. 더불어 곧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채무조정안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 원장이 지난 10일 제윤경 의원(더불어 민주당)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상담정책을 논의했다. 제 의원은 서민의 채무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대표적인 여권인사다.

이 원장은 이날 제 의원에게 채무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시민단체의 상담사례, 시스템, 인력 등을 지역협의체 상담에 접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금융진흥원이 구축하고 있는 지역협의체는 전국 각 지역에 포진한 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와 유관 기관이 입체적인 상담을 위해 연대한 기구다. ▲건강보험공단 ▲지역 자활센터 ▲캠코 ▲금융복지상담센터 ▲지역 새마을금고 ▲상호저축은행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다. 서민들이 이들 기관 중 한곳만 방문해도 주거, 채무조정, 일자리, 금융지원에 관해 서로 연계해 상담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제 각각의 문제를 전문기관을 통해 맞춤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다. 결국 하이브리드식 심층상담이 지역협의체의 구성 목적인 것이다. 현재 전국 47곳의 센터 가운데 21곳 센터에 지역협의체가 구성됐다.

민간역량 수용하려는 이 원장의 의도는 민간기구와 연계해 통합지원의 기능을 제고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지역협의체에는 채무상담과 채권소각 운동을 벌이는 ‘주빌리은행’이 포함됐다. 이밖에 사회공헌기업 ‘희망만드는 사람들’, 청년의 재무설계와 채무상담을 하는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사단법인 ‘서민금융연구원’이 연계할 민간기구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이 위원장은 지난 6월까지 이들 단체와 3차례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단체의 관계자는 “이 원장이 지난 6월 간담회에서 당시 채무 때문에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했던 소식을 접하면서 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듯 했다”며 “서민에 대한 심층상담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가 당시 주요 논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를 찾은 한 이용자가 센터 전문 상담사와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신복위

◆  이용실적 느는 센터...“발품의 효과”

서민금융 통합지원센터에서 지역협의체가 만들어지면서 센터를 찾는 상담자도 점점 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신복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총 21만8938명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했으며 이 가운데 12만1510명이 서민금융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해 방문고객 5만1944명(31%)이 증가한 수치다. 지원실적은 같은 기간 대비 2만2270명(22%)이 증가했다. 

또 올해 상반기 진흥원의 '맞춤대출서비스' 이용액도 2000억원을 넘어섰다.  맞춤대출서비스는 대출이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면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비롯해 은행·저축은행 등 58개 금융회사의 대출 상품의 한도, 금리 등을 한 번에 비교하고 신청할 수 있는 서민금융 서비스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8% 증가한 1만7413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총 금액은 79% 증가한 2163억원다. 평균 금리는 11.4%로 지난해보다 1%포인트 가량 낮아져 금융부담도 다소 완화됐다. 서민금융진흥원의 전체적인 대출 연체율은 12%대로 평균 연체율 수준을 넘지 않고 있다. 

곧 상반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신복위도 전년 동기에 비해 이용자와 실적이 다소 늘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업계 안팎에서는 현장 중심의 상담체계가 이 같은 이용실적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담사와 센터 이용자가 상담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현장에서 보고 바로 개선해, 상담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원장의 현장 중심 행정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그는 기재부 재직시절부터 ‘발품 업무’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원장은 취임 후 현재까지 47개 통합지원센터 중 21곳을 방문해 서민과 직접 상담하고 상담사의 건의를 수용해왔다.

1397 서민금융콜센터에서 자동응답기능 없이 상담사자 직접 연결돼는 시스템과 상담과정에서 필요한 내담자의 자료를 행정기관과 연계해 제공하는 것도 현장 간담회를 통해 개선한 것들이다. 모두 이용자에 대한 센터의 접근성을 높이고 신속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 제도 개선으로 손꼽힌다. 앞서 빚 고민으로 센터를 찾았던 K씨도 상담을 위해 준비한 것은 신분증이 전부였다. 이후에도 필요한 서류는 없었다. 대략 30종의 서류가 필요한 법원의 채무조정과 확연이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서민금융진흥원 한 관계자는 “현재 전국 47곳 가운데 21곳의 현장 간담회가 이뤄졌다”며 “곧 대전을 비롯해 나머지 통합지원센터를 올해 안에 모두 방문해 지역협의체와 제도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신복위, 취약 층 맞춤 채무조정에 고심

이계문 원장은 이날 제윤경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신복위 채무조정안에 대한 의견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신복위가 캠코가 발표한 취약층 채무조정안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층의 채무를 조정하는 안이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캠코는 지난 8일부터 국민행복기금에 빚이 있는 취약계층이 3년간 성실히 빚을 갚으면 남은 채무를 최대 95%까지 감면해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다만 이 제도는 국민행복기금에 빚이 없는 취약층에 대해서는 해당사항이 없다. 
신복위가 다중채무를 지는 취약계층에 대해 어떤 조정안을 내놓을지 시민단체 등 채무조정 관련 단체가 주목하는 상황이다. 

신복위는 오는 19일 지방의 한 자활센터에서 캠코 및 주빌리은행과 채무조정 제도 개선과 관련해 비공식 워크숍을 갖는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