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적극적인 M&A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처=삼정KPMG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지난해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진행된 인수합병(M&A)은 약 400조원에 이른다. 최근 10년간 거래건수와 거래액에서 모두 최대치를 경신하며 M&A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M&A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적극적인 M&A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M&A로 몸집 키운 글로벌 제약바이오 

지금까지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는 M&A를 통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를 꼽을 수 있다. 화이자는 1999년 1118억 달러(약 128조원)를 들여 워너램버트제약을 인수해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발돋움했다. 당시 업계 14위에 불과했던 화이자는 워너램버트 인수를 통해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의 권리를 확보하면서 단숨에 업계 3위로 올라섰다. 이후 2003년 파마시아와 2009년 와이어스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세계 최대 제약회사로 성장했다.

화이자뿐만 아니라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50조원 내외의 M&A를 추진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삼정KPMG가 지난달 중순 발표한 'M&A로 본 제약·바이오산업'에 따르면, 2018년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진행된 M&A 거래건수는 1438건, 거래액은 3396억 달러로 지난 10년 동안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정KPMG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R&D)의 효율성을 높이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신약 후보물질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8년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진행된 M&A 거래건수는 1438건, 거래액은 3396억 달러로 조사됐다. 출처=삼정KPMG

특히,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M&A가 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제약·바이오산업의 크로스보더 M&A 건수는 565건으로 전년 대비 54% 성장했다. 같은 기간 거래액은 1925억 달러로 전년 대비 81% 증가하며 자국 내 M&A 거래액(1470억 달러)을 넘어섰다.

제약·바이오산업은 헬스케어, 유통·물류, 정보통신 등 타 산업 간의 융합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제약·바이오산업과 이종산업 간 M&A 건수는 966건으로 전체 거래건수 중 67%를 차지했다. 이종산업 간 M&A를 통해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제약·바이오산업 M&A는 북미 기업들과 글로벌 제약사가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기업이 참여한 M&A 건수는 630건으로 가장 많았고, 캐나다(323건)와 중국(224건), 영국(93건)이 뒤를 이었다.

대규모 M&A에 소극적인 한국

한국은 지난해 총 41건의 M&A가 성사되며, 전체 11위를 차지했다. 예년보다 M&A 횟수는 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한국의 경우 자국 내 M&A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웃바운드(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혹은 인바운드(해외 기업의 국내 기업 인수) 관점에서 한국의 M&A 성과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진행된 41건의 M&A 중 무려 36건이 자국 내 M&A였다.

이처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글로벌 빅파마와 달리 상대적으로 M&A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승호 데일리파트너스 대표는 이에 대해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드물고, M&A 이후 기업 결속에 대한 경험 부족과 오너십 중심의 기업문화 등이 국내 M&A 시장의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자국 내 M&A 비중이 8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출처=삼정KPMG 

다만 지분투자나 라이선스 아웃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위험부담이 높은 대규모 M&A보다 혁신비용 및 기회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신규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기업이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끌어들이는 개방형 혁신을 일컫는다.

실제로 부광약품, 이연제약, 한독 등 다수의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나선 바이오 벤처기업에 투자해 대박을 치면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이중 부광약품은 10년 전 줄기세포치료제 개발 기업 안트로젠에 39억원을 투자해 무려 883억원에 이르는 재무적 성과를 올려 화제를 모았다.

바이오벤처 기업에 가장 활발히 투자하는 국내 제약사는 유한양행이다. 이 회사는 최근 8년간 다수의 국내외 바이오벤처 기업에 5천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투자 성과도 적지 않다. 유한양행은 2015년 오스코텍과 제노스코가 개발한 신약 물질인 '레이저티닙'을 사들인 뒤 지난해 11월 얀센 바이오테크에 총 12억5500만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로 다시 기술수출을 진행해 외화벌이에 일조했다.

M&A 중심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필요 

글로벌 기업들은 신약 파이프라인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M&A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신약 개발에 대한 전주기 경험이 적고 자본력을 갖춘 회사도 드물기 때문에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에 지분을 투자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선 M&A 중심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향후 10년 내 수출 규모가 국내 3대 수출산업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의약품 시장의 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약 22조원에 달한다. 연간 3.4%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수출 부문에서 전년 대비 18.6%의 성장률을 나타내며 무역수지 적자를 줄여나가고 있다. 한국 의약품 산업은 전후 60년 동안 매년 4~5조원가량의 무역 적자를 냈다. 그러나 2015년부터 바이오의약품의 수출이 급증하면서 전체 의약품 산업의 무역 적자를 줄이고 있다. 외화벌이 산업으로 체질 개선이 이뤄지면서 글로벌 경쟁력도 덩달아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2017년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 수는 1830개로 전년 대비 9.9% 증가했다.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더불어 지난 3년간 바이오벤처 창업이 크게 늘어나면서 투자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 수는 1830개로 전년 대비 9.9% 증가했다. 근로자수도 4만8천여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향후 회사 규모를 떠나 경쟁력 있는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제약바이오 업체들과 M&A를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승호 대표는 "지금까지 국내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은 지분투자나 라이선스 아웃에 머물러왔지만 이제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보다 적극적인 M&A 전략을 고민할 수 있는 시장으로 성장했다"면서 "인수 규모를 떠나 다양한 기업들이 신약후보물질을 평가·도입하고 M&A 활성화를 위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이에 수반되는 각종 자문과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