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식후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다. 이제는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에 이어 ‘아바라(아이스바닐라라떼)’, ‘얼죽아(얼어죽어도아이스)’로 통하는 세상이다. 커피는 직장인들과 밤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단순한 음료가 아닌 하루를 시작하고 버티게 해주는 ‘마시는 링겔’과 같다.

이처럼 커피가 일상화 된 한국 커피시장 규모는 빠르게 성장했다. 관세청과 커피업계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약 11조 74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조원을 넘어섰다. 연간 커피소비량은 265억 잔으로 국민 1인당 연평균 512잔을 마신 셈이다.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미국 외에 아시아에는 일본에만 진출해있던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까지 한국에 상륙하면서 새로운 커피 물결을 예고했다.

▲ 국내 커피시장 규모. 출처=관세청

‘제3의 물결’의 커피
전 세계 커피 트렌드는 크게 세 번의 격변기를 통해 분류된다. 19세기 ‘인스턴트 커피’로 대표되는 것이 그 첫 번째 물결이었다. 편리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는 많은 사람들이 커피 소비를 가능하게 했다. 두 번째 물결은 ‘스타벅스’의 등장이다.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커피프랜차이즈가 등장하자 소비자는 더 맛있는 커피를 찾기 시작했다. 

제3의 물결은 현재  대세인 ‘스페셜티’ 커피다. 스페셜티 커피란 산지와 품종이 관리된 고급 원두 중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부여한 등급의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말한다. 여기에 산지 직거래가 이뤄져야만 스페셜티 원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일반 원두에 비해 고가의 원두를 사용해 맛과 향의 특징도 한층 뚜렷하다.

국내에서는 1976년 동서식품이 아웃도어용으로 원두, 설탕, 크리머를 한데 모으면서 시작됐다. 원두를 네모난 작은 봉지에 담은 인스턴트 커피는 이미 해외에서 유행이었지만 설탕과 크리머까지 함께 담은 제품은 없었다. 커피프랜차이즈 시대는 1998년 할리스커피가 생기면서부터다. 이후 스타벅스커피코리아(1999년), 커피빈코리아(2001년), 이디야커피(2001년), 탐앤탐스(2001년), 파스쿠찌(2002년)로 이어졌다. 믹스커피의 원조가 ‘다방커피’였다면 커피전문점은 국내에서 ‘원두커피’가 대중화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국내 제3의 물결은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이 스페셜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 2014년 싱글 오리진 프리미엄 커피로 만든 ‘리저브’ 음료를 처음 선보인 후, 2016년에 고급화 전략을 더한 ‘리저브 바’ 매장을 오픈했다. 2016년 5개였던 리저브 바 매장은 2017년 15개, 지난해 44개로 늘어났고 현재는 50개를 돌파했다. 현재 한국보다 리저브 매장이 많은 곳은 중국(97개)이 유일하다. 한국의 스타벅스 리저브 바가 미국(32개)과 일본(6개)보다 많다.

▲ 스타벅스코리아 50번째 리저브 바 매장인 대한상공회의소R점. 출처=스타벅스코리아

스타벅스 리저브 바에서는 스타벅스의 글로벌 인증평가를 통과한 커피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원두 선별 방식부터 추출 방식 등 커피 한 잔을 제조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도 해준다. 이는 최상의 커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한국보다 리저브 바 매장이 많은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면서 “한국은 인구 대비 리저브 바 매장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스타벅스는 앞으로 계속해서 국내 스페셜티 커피 성장을 이끌 계획이다”고 말했다.

하늘색 병 모양 로고가 시그니처인 블루보틀은 지난 5월 서울 성수동에 1호점 문을 열었다. 블루보틀의 국내 오픈 날짜가 정해지자 전날 새벽부터 밤새 줄 선 사람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 당시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선 3~4시간 기다림은 기본이었다.

▲ 블루보틀 한국 1호점 성수점 내부 모습. 출처=블루보틀코리아

블루보틀은 커피를 내려주는 과정에서 고객과 눈을 마주치고 고객 이름을 불러주는 서비스 방식으로 유명하다. 매장에는 48시간 이내에 로스팅한 원두만을 사용해 최상의 커피 맛을 제공하고 있다. 브라이언 미한 블루보틀 최고 경영자는 “한국인들이 커피에 대해 얼마만큼 강한 열정이 있는지 확신했다”면서 한국 진출 배경을 밝혔다.

블루보틀의 매장 인테리어와 콘셉트는 특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매장은 기본적으로 ‘No WiFi, No PC’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매장의 전체적인 테이블 높이도 낮다. 이는 바리스타가 고객을 보면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동안 커피의 맛과 제조방법에 대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또한 스마트폰을 잠시라도 놓고 온전히 커피 본연의 맛을 즐기라는 의도와 동시에 바리스타와 더욱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블루보틀의 주메뉴인 드립커피도 한 잔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회전율을 포기하고 수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원두와 로스팅 방식의 차별화도 있지만 이러한 특별한 서비스가 블루보틀만의 커피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현재 블루보틀의 매장은 미국(57개)과 일본(11개)과 함께 국내 1호점을 운영 중이며 성수동에 이어 삼청동과 강남에 연이에 매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블루보틀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커피의 깊은 맛과 특유의 감성으로 국내 스페셜티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계획이다.

▲ 한국인 커피 소비량. 출처=관세청

‘스페셜티’ 그 영향력은?
커피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커피 취향이 스페셜 커피로 방향을 돌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에스프레소가 베이스가 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국민 음료’가 된 만큼 다양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만의 취향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대들의 트렌드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데 있어 가격이 아닌 심리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무조건 싼 것보다는 비싸지만 특별한 곳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커피 소비가 ‘가성비’에서 ‘가심비’로 옮겨가면서 스페셜티 커피와 함께 주목받는 것이 커스터마이징 커피와 같은 프리미엄 커피다.  커피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한 시대와 문화를 대변하는 아이템이 된 것이다.

이에 관련업계도 스페셜티 커피 시장을 노리고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투썸플레이스, 엔제리너스, 이디야, 드롭탑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부터 전국 각지의 소규모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까지 커피감별사인 큐그레이더(Q-grader)의 영입과 양성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커지면서 맛좋은 커피를 만들어내는 바리스타뿐 아니라 좋은 원두를 찾아내는 큐그레이더까지 그야말로 ‘커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큐그레이더들은 각종 챔피언십에서 상위권에 수상하는 등 양질의 커피 전문가들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커피라는 음료에 익숙해진 만큼 자신만의 맛과 취향을 알고 그에 맞는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시려는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보다 개인적이고 고급 커피를 경험하려는 고객이 늘면서 이에 맞춰 리저브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3대 커피 시장으로 꼽힌다”면서 “커피에 대한 경험이 일상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스페셜티 커피로 취향을 옮겨가는 커피 애호가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한 종사자(남·35)는 “커피를 접하는 소비자가 많아짐에 따라 커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이에 따라 관여도가 높아지면서 소비자 취향 역시 세분화, 고급화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