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신도시는 한국에서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처음 신도시가 공급된 1980년대 말은 낙후하고 과밀한 서울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새로 조성된 ‘부촌’의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도시 또한 노후화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서울 도심의 자본 집적이 강화되면서 ‘베드타운’의 인식이 형성됐다. 서울과의 접근성 등 입지에 따라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치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재 신도시 시장은 ‘가지각색’이다.

정부는 지난 1989년, 폭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로부터 약 20~25km 범위 내 5곳에 신도시를 건립하기에 이른다.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곳은 속칭 ‘1기 신도시’로 불리고 있다. 전체 50㎢ 넓이에 총 계획인구 117만명, 약 30만가구를 수용하고 1995년과 1996년 말까지 모두 준공을 마무리했다.

이 가운데 ‘분당’과 ‘일산’은 가장 큰 면적을 자랑했다. 분당신도시는 전체 19㎢ 넓이에 9만 7000가구 39만명을, 일산신도시는 15㎢ 넓이에 6만 9000가구 27만 6000명을 수용했다. 나머지 세 신도시는 4.20~5.45㎢ 규모에 약 4만 1000~4만 2000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그러나 정부의 주택 공급대책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신도시들의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새로운 3기 신도시가 기존 신도시의 입지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성남시 분당구와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은 고양시 일산지역으로 양분되는 분위기다. 주택 가격이 일렁인 굵직한 시점마다 수만 가구 단위가 공급됐지만, 기존 신도시들에 대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5월 7일 ‘3기 신도시’의 마지막 공급지로 고양 창릉지구와 부천 대장지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각각 3만 8000가구와 2만 가구 규모인 해당 지구는 기존 신도시들과 달리 자족시설과 교통망 대책이 함께 발표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19일에는 남양주 왕숙지구, 하남 교산지구, 인천 계양지구, 과천 과천지구 공급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 지역은 서울 경계에서 각각 5km, 10km 거리에 위치한 1기·2기 신도시와 달리 2km 거리에 자리해 입지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세가율 90%대 일산...과잉공급에 자족기능 부재 겹쳐

거꾸로 입지상 경쟁이 되지 않는 인접 신도시들의 시름은 더해지는 모습이다. 일산지역의 행동이 그중 두드러진다. 이들은 ‘3기 신도시 계획의 철회’를 외치며 전면 거부에 나서고 있다. 일산지역에 겹겹이 드리워진 악재 때문이다.

현재 일산지역이 낮은 집값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로 신도시 계획을 포함한 과잉 공급, 자족시설 부족이 꼽힌다. 현재 일산 주변으로 계획되거나 공급된 택지는 장항택지지구·삼송지구·향동지구, 2기 신도시인 파주 운정신도시와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창릉지구’가 있다. 장항지구 1만 2000가구, 삼송지구 2만 2000가구와 창릉지구 3만 8000가구 등을 총합하면 10만가구 규모에 이른다. 반면 인구유입을 유도할 기업 등 자족시설은 부족한 상황에서 주택만 짓는 것이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유동인구 대부분이 종로와 강남 등 서울 중심지로 출퇴근하는 상황에서 그에 버금가는 조건이 일산 일대에 갖춰지지 않는 이상 주거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이 지역 중개사들의 반응이다.

실제로 3기 신도시가 발표된 후 일산 지역의 매매가 변동률은 거세졌다. 5월 6일 기준으로는 각각 –0.02%, -0.08% 하락에 그친 일산 동구·서구의 매매가는 5월 13일 들어 –0.1%, -0.19%로 하락폭이 뛰었다. 해당 수치는 3주간 이어져 누계 -0.3% 이상의 하락폭을 보이고 있다.

마두동 Y공인중개사는 3기 신도시 지정을 두고 “일산을 ‘물로 본 것’이라는 생각에 주민들이 분개하고 있다”면서 “판교는 꾸준히 회사를 유치하고 확장해 가는데 일산은 그럴만한 요인이 없다보니 온전히 베드타운으로 전락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중개사는 “본래 신분당선 연장 계획도 있었다지만 예비타당성 조사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네이버부동산 기준 일산동구 장항동 ‘호수1단지대우’ 아파트의 전용면적 59㎡ 매매가는 지난해 2억8700만원에서 2억7500만원으로 약 1000만원 하락한 상황이다. 지난해 폭등기간에도 여타 지역에 비해 오름세가 약 700만원으로 높지 않아 하락 단위 자체는 크지 않은 편이다. 다만 매매가가 여타 지역에 비해 낮은 가격인데다, 하락세가 장기화하는 동시에 거래도 일어나지 않는 게 오랜 기간 침체를 겪어 온 일산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해당 지역 중개사는 말한다.

백석동의 ‘흰돌1단지금호타운’ 51㎡는 1년 넘게 유지해 온 매매가 2억5500만원이 3월 들어 무너지면서 현재 2억5000만원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문제는 전세가가 2억3500만원으로, 매매가와 약 2000만원 정도 밖에 차이를 두지 않는 점이다.

H공인중개사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약 9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전세거래에 매력을 느끼는 수요자도 없을뿐더러, 매매거래 또한 여타 신축단지들에 밀린다”면서 “차라리 집을 팔고 신도시로 이동하고 싶은 집주인이 꽤 있지만, 팔리지도 않고 무주택자 우선인 신도시에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건축 시기 도래·강남권 입지 등으로 성장성 엿보이는 분당구

분당신도시는 일산과 정반대의 시장이 연출되고 있다. 3기 신도시와는 거리와 입지 면에서 접점이 거의 없는데다 수요와 공급시장이 탄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분당신도시는 상업시설과 기업활동, 베드타운의 역할 분담으로 자족기능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신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2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인 판교개발과 판교 내 테크노밸리가 성업을 이루면서 분당구 전체가 하나로 묶여 움직이고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호재로 인식될 수 있는 요인이 많은 게 사실이다. 분당구는 강남과 이웃하고 경부고속도로를 끼고 있어 오히려 서울 외곽지역보다 서울 중심지 접근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로까지는 약 30분 이내로 이동이 가능한 다수의 버스노선이 있고, 지하철 분당선으로 왕십리, 선릉 등지를 오갈 수 있다. 향후 GTX 개발 수혜도 예상된다.

지난해 폭등기로 대두된 대출규제 등의 영향으로 현재 시장 분위기는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둔화국면을 걷고 있다.

분당구의 매매가 변동률은 지난 4월 22일 –0.17%를 기록한 후 매주 –0.1% 대의 하락률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3기 신도시가 발표된 직후인 5월 13일 기준 –0.21% 하락하면서 잠시 영향을 받는 듯 했지만, 이내 –0.12%로 하락폭이 줄어드는 모습이다.

 
 

서현동의 H공인중개사는 “매도 분위기가 미미해 개별 단지들이 소폭 하락하기는 하지만 3기 신도시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매도자들이 6월 1일 과세기준일을 기점으로 매물을 내놓는다는 것은 시장에선 넌센스이고, 오히려 방어할 요인이 잘 갖춰져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온도차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개사는 “중개사들 역시 서민이기 때문에 수급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좋은 가격에 신도시를 공급하는 게 맞다”고 의견을 드러냈다.

서현동 D공인중개사는 “서현은 가장 먼저 들어선 ‘시범 단지’라 만듦새도 좋을뿐더러 향후 재건축 시점이 가장 먼저 도래할 예정이라 낙관적인 전망이 두터운 편”이라면서도 “위례신도시의 위세가 최근엔 강하긴 하지만 판교 등 수요가 강해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야탑동 J공인중개사는 “3기 신도시와 분당은 큰 관계가 없고, 특정 단지들은 지난해 대비 1억~2억원 정도 하락했지만 전체적인 경기둔화와 대출규제의 영향이 더 크다”면서 “야탑동의 경우 탄천 건너 GTX 호재가 있다보니 장기적으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탑동 ‘탑3단지타워빌’ 전용면적 101㎡의 시세는 지난해 4월 들어 7억 7000만원에서 8억 8000만원으로 뛰었지만, 올해 3월들어 8억 6000만원으로 소폭 하락한 상황이다. 시범단지인 서현동 ‘삼성한신아파트’ 전용면적 59㎡의 경우 지난해 8월 6억 5000만원에서 7억원으로 상승한 후, 12월 약 2000만원 정도 더 상승한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신도시 “입지 가까워도 영향 적다는 인식 강해”

의외로 중동신도시의 경우 3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인 부천시 ‘대장지구’와 가장 가까운 입지임에도 매매가 시세 하락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천시 중동 E공인중개사는 “공급시점을 10년 뒤 쯤으로 보기 때문에 아직 현실성도 없고 문의하는 사람도 없다”면서 “새 지역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중동신도시를 수혜 지역으로 인식하지는 않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같은 지역 K공인중개사 역시 “이곳 거주자는 부동산 시장에 크게 관심이 없는 실수요자가 많고, 다른 네 개의 1기 신도시가 조정지역으로 묶일 때도 이곳은 피해갔다”면서 “같은 평수라도 광명 쪽의 가격이 더 높고, 지난해 폭등기에도 잠잠한 편이었다”고 말했다.

중동신도시 ‘금강마을’의 경우 전용면적 41㎡의 시세가 지난해 9월 2억 2000만원에서 11월 들어 2억 4000만원으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2017년 입주한 ‘부천아이파크’ 전용면적 84㎡ 역시 지난해 10월 4억 6500만원에서 올해 4억 8300만원으로 소폭 상승한 뒤 해당 시세를 고수하고 있다.

평촌과 산본신도시의 중개사들 역시 3기 신도시의 여파는 적다고 입을 모은다. 이곳 역시 공급대책보다 대출규제의 여파가 더 강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군포시 금정동 S공인중개사는 “서울 규제가 더해지면서 산본 등 신도시도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단지별로 차이는 있지만 30평대 기준으로 2000만원에서 4000만원까지 빠진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양시 평안동 D공인중개사 역시 “5월은 본래 이곳의 부동산 시장이 조용한 편이긴 한데 문의 자체가 뜸하다”면서 “경기둔화가 장기화돼 부동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촌신도시 ‘초원2단지대림아파트’ 전용 59㎡는 지난해 8월 4억 2000만원에서 10월 4억 9000만원까지 뛰었지만 현재는 4억 3000만원으로 폭등 전 가격을 회복한 상태다. 대부분 소형 평형이 통용되는 산본신도시는 ‘주공1단지’ 전용면적 41㎡의 시세가 지난해 1억 9500만원에서 1월 들어 2억 500만원으로 상승했지만 다시 2억원으로 하락한 상태다. 산본동 ‘세종주공6단지’ 전용 58㎡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지난해 3억 1000만원에서 올해 2월 3억 5000만원으로 상승했지만 현재 3억 3000만원의 시세를 유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