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중국에서 열린 판다컵 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18세 이하 축구 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3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은 훌륭했으나 마무리가 나빴기 때문입니다. 대표팀은 우승 직후 우승컵 위에 발을 올려두는 철없는 행동을 보여줬으며, 이는 중국 웨이보 등을 통해 고스란히 알려지며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지탄이 쏟아졌습니다.

 

다행히 선수단은 물론 한국축구협회도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서며 논란은 잦아들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18세 이하 대표팀은 국가를 대표하는 태극마크의 무게를 확실히 체감하고 반성하며,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중국의 반응이 나옵니다. 중국 관영언론 중 가장 민족주의적 관점을 가진 환구시보가 이례적으로 '이번 논란은 과거에 묻어 두자'는 논평을 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환구시보는 지난달 31일 "판다컵 사건을 과거로 흘려 보내되 반성은 기억하자"라면서 "논란이 된 대표팀 선수들은 18세 이하의 '아이들'이며 선수들이 교양이 없는 행동을 하긴 했지만, 한국의 '어른'들은 당연히 해야 할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환구시보는 이어 "아이들 몇 명의 행동을 한국사회가 중국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환구시보의 이례적인 논평 배경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정당화에 힘을 실으며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던 중국 정부의 '입'이 돌연 한국에 우호적인 논평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두 수퍼파워의 물러설 수 없는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을 우군으로 잡아둬야 한다는 중국의 사태판단이 환구시보의 이색적인 논평을 끌어냈다는 분석입니다.

환구시보가 '한국 18세 이하 축구 대표팀 논란을 더이상 문제삼지 말자'고 말했다고 이를 필요이상으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국을 잃을 수 없다'는 정서가 중국 내에 번지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게 합니다.

궁지에 몰린 화웨이
환구시보도 한국과의 우호를 다져야 한다고 말하도록 만든 거대한 배경, 즉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견제구를 던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충격으로 요약되며, 나아가 세계 패권을 수퍼파워의 격돌로 풀이됩니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이 중국 기술굴기의 선봉장인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웨이는 백도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중국 정부와의 유착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통신 네트워크 사업자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에게 이보다 좋은 타깃은 없어요. 심지어 올해는 천안문 사태 30주년 등 중국 정부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제일 약해지고 조심할 때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병법의 기본입니다.

화웨이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최신 버전 접근 차단을 시도하고 인텔 및 퀄컴은 침과 부품 공급 중단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암도 반 화웨이 전선에 합류했으며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화웨이는 올해 초 통신 네트워크 측면에서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 연합해 위기를 타개하려 했으나 트럼프 행정부 주도의 압박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크게 줄어드는 한편 통신 네트워크 입지도 위태로워집니다.

국내에서도 화웨이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습니다. 최근 주요 망 사업에서도 퇴출일로입니다. 그런 가운데 화웨이는 세계 최초로 5G 오픈랩을 서울에서 열었으나 이를 '조용히' 넘길 수 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 5G 오픈랩이 개소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실제로 지난달 30일 화웨이는 5G 오픈랩을 통해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이룬 한국의 5G 및 ICT 산업 발전을 촉진시키고 5G 기반 서비스를 준비 중인 한국 중소기업, 스타트업들이 포함된 파트너사들에게 최적화된 5G 테스트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으나, LG유플러스를 비롯해 통신 3사 임원은 물론 국회의원과 정부 부처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중소 및 스타트업 기업들을 대표해 개소식에 참여한 중소기업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고 5G 오픈랩 개소 자체도 아예 비공개로 열렸습니다.

한국에 손 내밀다...균형감각 필요할 때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 국면에서 화웨이는 한국에서도 크게 배척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웨이는 포기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삼성전자에 부품 수급을 요청하는 한편 5G 오픈랩 등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가능성 타진을 하고 있습니다.

5G 오픈랩 개소 당시 숀 멍 한국화웨이 지사장은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다. 화웨이는 지난 17년간 한국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화웨이는 ‘한국에서 그리고 한국을 위해’라는 이념과 자체적인 5G 네트워크 강점을 기반으로 다수의 한국 ICT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5G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자, 여기서부터 우리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실익을 따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내에서 화웨이에 대한 반감이 큰 지점은 두 가지, 바로 백도어 논란과 기술 탈취입니다. 여기서 백도어 논란은 아직 국제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진실이 없습니다. 몇년 전 영국의 보다폰에서 화웨이 백도어가 발견됐다는 블룸버그의 보고가 최근 있었으나 이는 화웨이와 보다폰 모두 사실무근이라 밝혔습니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유착을 시사하는 단서가 걸리지만, 이를 바탕으로 가설에 가까운 결론을 미리 내리는 것도 명확한 인과관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이 됐으나 여전히 준 공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KT가 글로벌 비즈니스에 나선다고, 현지에서 KT와 대한민국 정부의 유착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며 화웨이는 이보다는 더욱 진한 의혹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도 증명된 것도 없습니다.

기술 탈취 가능성은 최근 전가의 보도처럼 나오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이 역시 말 그대로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결론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가 절박해진 중국의, 화웨이의 손을 감정적으로 뿌리칠 이유는 없습니다. 화웨이를 100% 믿고 이에 몸을 맡기는 것은 당연히 지양해야 하지만 최소한 차가운 시선으로 실익을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미중 무역전쟁 정국에서 중국과 화웨이는 궁지에 몰렸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협상 정국에서 비교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어차피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명확한 이득을 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원하는 중국과 미국의 중심에서 어떻게 하면 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 이 과정에서 둘 모두 잃지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적인 화웨이 배척에만 감정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식의 기저에는 아직 중국의 수준을 '하수'로 보는 시각도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금 상황에서 의미없는 정신승리일 뿐입니다. 사실이 아니며, 이런 정신승리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화웨이와 손을 잡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노련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조선 시대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다시 꺼내볼 때입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강조하며 명분에만 집착했으나, 광해군은 주적인 후금도 아우르는 아슬아슬한 중립외교를 펼쳤습니다. 그 결과 광해군 본인은 비극에 휘말렸으나, 조선은 오랜만에 대외적인 안정을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정치체계가 싫다고, 대국의 자존심이 너무 지나치다고 싫어할 수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중국 정부와의 유착설이 제기되는 화웨이를 싫어할 수 있습니다.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느정도 실질적인 의혹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선택으로만 일관한다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당장 미중 무역전쟁이 끝나고 두 수퍼파워가 화합과 교류를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중국은 철저하게 자기를 배척한 우리를 멀리할 것이며,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을 은혜로운 나라로 떠받들 가능성은 낮습니다.

동아시아의 외교적 역학관계의 틀 안에서 중국과 미국 모두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최대한 몸값을 올려 지혜로운 한 수를 둬야 합니다. 우리가 한 때의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기에는 우리의 상황 및 경제 구조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