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유통단계에 붙는 마진 때문에 자유무역협정(FTA)의 관세인하 효과가 무력화된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주세법 시행령과 주세사무처리규정을 개정해 내년부터 와인, 맥주, 위스키 등 주류 수입업자의 ‘겸업금지’와 ‘소비자 직판 금지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입업자도 면허만 받으면 소비자에게 와인 등을 직접 팔 수 있게 되는 셈인데, 유통 구조 축소로 가격 안정화를 추진 중인 정부의 주세법 시행령이 과연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에 대해 업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칠레 와인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의 현지가격은 2008년산 기준 미화 22불 (한화 약 2만5000원) 정도로 숍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국내 판매가격은 4만7000원 정도다. 2009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칠레 와인에 대한 관세가 사라졌지만 백화점, 마트에서의 가격은 2007년 3만5600원에서 현재 4만7000원까지 오히려 올랐다.

레스토랑, 호텔가는 그보다 훨씬 높은 7만~8만 원대로 그나마 강남 지역은 평균 7만원, 종로 등 중구지역은 평균 8만원, 마포, 용산지역은 6만5000원대로 지역에 따라 다른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FTA로 인한 관세 폐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와인업계는 세금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와인에 붙는 세금은 주세·교육세 등을 합쳐 세금만 55% 정도다.

정부는 FTA로 인해 관세가 없어졌음에도 와인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복잡한 유통과정(현지 생산자→ 수입사→도매상→소매상→소비자)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현행 법령상 주류 수입업자는 유통·판매 등 다른 사업을 겸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수입업자는 직접 최종 소비자에게 술을 팔 수 없어, 도·소매상에만 와인·위스키 등 주류를 넘겨야 한다. 이 같은 현상이 결국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돌아갔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4일 주세법 시행령과 주세사무처리규정을 개정해 주류 수입업자의 ‘겸업 금지’와 ‘소비자 직판 금지’를 폐지하고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세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주류 수입업체들은 도·소매업체를 거치지 않고도 관할 세무서에서 주류 판매 면허만 받으면 소비자에게 직접 술을 팔 수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수입 술의 거래 단계가 줄어들고 유통 과정에서 경쟁이 촉진돼 주류 가격 하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부가 와인 등 수입주류의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해 주류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수입업자가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유통구조로 축소시키는 정부의 주세법 시행령이 과연 와인가격 인하로 이어질지에 대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와인 업계는 이번 발표에 대해 “무한경쟁을 통해 국내 와인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가격경쟁과 좋은 브랜드를 가져오기 위한 경쟁에 돌입할 것이고,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공급자들이 경쟁할수록 싼 값에 와인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의미가 있다.

얼마나 와인 가격이 내려갈까에 대한 질문에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가격이란 것이 여러 요인에 따라 변수가 있지만 산술적으로 본다면 최소 5% 이상, 최대 30%정도 와인 가격 인하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와인 유통은 '와인 수입업체(마진율 20~35%)→도매상(마진율 5∼15%)→소매상(마진율 30∼40%)→소비자'의 루트를 밟고 있는데 와인 수입업체가 직접 판매를 한다면 최소 도매상 마진은 가격에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통 구조 축소로 가격 안정화를 추진중인 정부의 주세법 시행령이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에 대해 조심스러운 의견을 보였다.
먼저 수입업체의 70% 이상이 직접적인 유통시스템이 없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서는 판매가 어려운 실정이라 유통구조상 도매상 없이 유통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기가 높은 몬테스나 빌라 M, 1865 등의 인기 와인은 와인 생산업체와 독점체제를 맺고 있어 실질적으로 가격 인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병행 수입’(국내 독점 수입업체의 허락 없이 다른 유통경로로 와인을 수입하는 것)을 한다고 해도 수량이 적어 독점 수입업체보다 저렴하게 공급받기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국내 와인업체들의 수입 경쟁이 치열해지면 독점 수입권의 의미도 퇴색해 수입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도매상 “대형 수입업체 배만 불릴 것”
수입업체의 소비자 직판 허용에 대해 도매업계는 강경하다.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최수옥 회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갖고 “ 주류 수입업체에 소비자 직판을 허용하면 주류 도매업자, 소매업자들의 줄도산은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 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획재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후에도 수입주류 소비자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류 제조업과 유통업, 판매업의 겸업을 허용해 국내 주류시장의 도매업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대부분의 주류업체가 직접적인 유통시스템이 없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는 판매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소규모의 유통망이 무너진다면 결국 살아남는 직접 유통망을 소유한 몇몇 주류 수입 대기업만 배를 불리는 폐해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직영 와인 숍을 갖고 있는 와인 수입업체는 까브드뱅, 레뱅드 매일, 신동와인, 나라셀라 정도로 와인업체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매시장은 약 30% 정도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의 수입업체들은 도매상을 배제한 채 실제 유통이 어려운 상황이다. 70%의 와인 수입업체들은 모두 도매상을 거쳐 서울 각 지역의 레스토랑 및 전국 레스토랑 및 와인 숍 등에 와인을 납품하고 있다.

최회장은 “단순히 유통 구조만 볼 때 수입사와 유통사가 하나로 합쳐져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에 나선다면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고 보일지 몰라도 이에 따른 물류비와 시스템이 별도로 들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 운반책 역할을 하는 도매상이 없어질 경우, 수입사가 서울 각 지역은 물론 지방 구석 와인 숍까지 직접 유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매상이 없어지면 물류비와 이를 관리할 인건비가 더 든다는 것이다. 와인 수입업체 역시 이구동성으로 “도매상 없이 전국구 와인유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라는 의견을 보였다.

최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기재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간도매상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라 최초의 수입업자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 계열의 수입업자들이 취하는 폭리구조만 개선하면 와인 등 수입주류 가격은 자동으로 상당폭 내려가게 돼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정부 방침대로 소비자 직판이 허용될 경우, 2000여개사의 종업원 3만여명이 실직을 하게 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협회의 우려와 달리 현장 분위기는 차분하다. 한 도매상 관계자는 “솔직히 와인 유통 구조상 도매상 없이 수입사가 전국구 레스토랑 등을 관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며 “존폐 위기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는 않지만 영세한 도매상들이 도산할 위기는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30% 이상의 마진을 남기는 수입사와 그 이상 남기는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에 비해 와인도매상은 5~15% 정도로 큰 마진을 남기지 않는다며 정부가 좀 더 주류 수입업체의 마진폭에 대해 알아보고 도매와 소매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개인와인숍 “가격경쟁 버티기 힘들 것”
이번 주세법 시행에 대해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이는 것은 도매상보다 개인 와인 숍 같은 소매상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사실 각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로드 숍은 와인 애호가들을 근접하게 관리하며 한 장소에서 다양한 와인을 전시해 소비자들의 발품을 덜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으로 그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개인 와인 숍을 운영하고 있는 ‘영화와인셀러’의 최영화 대표는 “ 주세법 개정이 실행된다 해도 당장 어떠한 변화가 오진 않겠지만 대형마트에서 직수입을 통해 와인가격을 떨어뜨리면 그들과의 가격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 이라 말했다. 최 대표는 “하지만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가 한 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와인 애호가들이 자신이 원하는 술을 일일이 찾아 수입사에 전화하기 보다는 평소 자주 가는 와인 숍에서 자신의 기호를 아는 숍 매니저의 추천을 받아 손쉽게 와인을 구매하는 소비 형태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물론 수많은 와인 애호가들을 수입사에서 일일이 관리하기도 힘들 것이란 것도 최 대표의 계산에 깔려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영화와인셀러는 오래된 손님들과 와인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입니다. 때문에 단순히 와인을 판매하는 와인 숍 기능 외에도 앉아서 지인들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와인 바의 성격을 덧붙여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수입사에서 바로 와인을 판매할 수 있는 만큼 고객마음잡기에 나선 것이다. 충성고객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가 와인 숍들의 생존과 직결돼 있는 셈이다.

대형마트 “독자적으로 몸불릴 절호의 찬스”
지금까지 대형마트들은 별도의 와인법인을 세워 와인을 수입하거나 수입업체를 통해 와인을 판매해 왔다. 예를 들어 이마트의 스페인 와인 ‘1492’의 경우 이마트 와인 바이어가 현지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 상품을 개발했지만 수입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들여오는 ‘해외 직소싱’ 상품과는 달리 와인 수입업체인 길진인터내셔날이 수입을 대행했다.

현재 대형마트들은 와인을 직접 수입할 수 있는 ‘주류수입면허’가 없다. 주세법은 한 업체가 주류 수입업과 도·소매업을 겸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지에서 직접 계약한 와인을 중간 유통단계를 거쳐 받다 보니 직소싱 상품에 비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형마트는 자체적으로 별도의 와인 수입 부서를 만들어 직접 와인을 국내로 들여올 수 있다. 가뜩이나 와인 수입업체들에게 ‘갑’으로 통했던 대형마트가 와인시장에서도 독자적으로 몸집을 불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형마트간의 와인 가격 경쟁도 치열해질 수 있다. 각 PB제품으로 100원 경쟁을 해 온 것처럼 와인 가격도 100원 할인 경쟁을 하며 더 저렴하게 판매할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값에 와인을 구입할 수 있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가 직접 와인을 수입하게 되면 대형마트에 와인 납품을 하는 수입업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그동안 대형 유통마트가 최대 판로였던 금양인터내셔널, 길진인터내셔널 등의 와인 수입업체의의 판로가 막힐 수 있게 돼 수입사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형마트 입장은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에는 와인시장이 작아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마트 와인바이어 임주환 부장은 “기획재정부가 겸업 금지 해제 방침을 발표했지만 국세청에서 그 효용 여부를 판단 중이고 개정방향에 대한 구체적 사항이 나온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수입면허가 허용될지는 미지수” 라며 “직접 수입을 하게 되면 5~15% 정도 와인 가격이 할인되겠지만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수입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고 말했다.

와인 가격을 높이는 것은 높은 세금과 복잡한 유통 구조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구조를 축소하겠다는 정부의 주세법 개정안은 와인시장을 무한경쟁으로 돌입시키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형 할인마트와 대형 와인수입사에만 힘을 실어주고 영세상인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형국을 띠면서 일부 와인업체 관계자들은 정부의 중소기업 살리기 정책이 무색한 개정안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