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정부가 100만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2025년까지 연간 4조원 규모로 늘리면서 의약품, 의료기기 등 제조업과 의료, 건강관리 서비스업종을 뜻하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한다고 밝힌 가운데, 국회에서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바이오헬스 산업 중에서도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잘 만든 약 하나로 인류 보건에 기여하면서 수십조원의 매출도 창출할 수 있는 ‘첨단바이오의약품’ R&D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의 ‘휴미라’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높은 효과를 나타내 환자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2018년 매출 약 22조560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글로벌 수준에 뒤처지지 않는 ‘NK세포치료제’와 ‘이중항체’ 등 차세대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관련 지원책이 적다. 감독당국은 세계최초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사태를 명분으로 안전성 확보장치를 도입하고 첨단바이오의약품 전주기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등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우려된다’는 제약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 주목된다.

한국 바이오산업 경쟁력 하락… 수출은 급성장

2018년 미국의 과학전문매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바이오분야 경쟁력 순위는 54개 국가 중 26위로 직전 조사보다 두 계단 하락했다. 한국은 2009년 15위, 2012년 22위, 2014년 23위, 2016년 24위 등 지속해서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

생산성, 지식재산권(IP) 보호, 집중도, 기업지원, 교육‧인력, 기반 인프라, 정책 및 안정성 부문 등 7개 조사 부분별 점수 합계는 2016년 21.0점에서 2018년 21.8점으로 올랐으나,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면서 순위가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한국은 유전자조작식품(GMO)과 같은 바이오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식품에 대한 수용도가 낮다”면서 “원격의료 등 바이오기술의 의료적 활용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지적은 바이오헬스 산업 부분에서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전문가는 “한국은 신약개발 절차 규제, 기초 과학 지원, 기초 기술과 산업의 연결, 약가 등 개선할 부분이 많다”면서 “혁신 바이오 기업이 다수 등장할 수 있도록 인프라 진흥 정책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글로벌 수준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급성장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 조사기업 이밸류에이트 파마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7.7% 성장, 2024년까지 연평균 9.1%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2024년 시장 규모는 약 431조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 바이오의약품 시장규모는 2017년 2조2327억원으로 전년 1조8308억원에 비해 22% 증가했다. 생산 실적은 2017년 2조6015억원으로 같은 기간 2조79억원 대비 30%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바이오의약품 성장은 바이오의약품 복제약(바이오시밀러)로 의약품 선진 국가에 진출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역할이 컸다”고 설명했다.

성장동력 중 하나 ‘NK세포치료제’‧‘이중항체’ 문제는?

잘 만든 약 하나가 의료비용을 낮추면서 수천억원에서 수십조원의 수출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휴미라뿐만 아니라 셀트리온 ‘램시마’, 삼성바이오에피스 ‘베네팔리’ 등으로 알 수 있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은 차세대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목되는 R&D는 3세대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 보다 진보한 4세대 ‘자연살해(NK) 세포치료제’와 면역항암제 등 의약품 효능을 높일 수 있도록 플랫폼 기술을 활용한 ‘이중항체 의약품’이다.

▲ 첨단재생의료 관련 법-제도 해외 동향. 출처=대한의학회

업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NK세포치료제는 복잡한 허가 절차 없이 환자로부터 채취해 배양할 세포 안전성과 제조 공정의 안정성이 입증된 후 환자가 치료를 받겠다고 동의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국내 환자는 일본에서 국내 개발 치료제로 치료를 받고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지난 2014년 11월 재생의료법을 시행했지만, 한국은 세포치료제에 약사법이 적용돼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3상을 완료한 후 부작용을 검증하는 임상 4상까지 이뤄져야 한다.

의약품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첨단재생의료법이 있다. 일본을 포함한 세 국가의 재생의료법의 공통점은 ‘투 트랙’ 운영 전략이다. 일본은 임상연구 및 자유진료 트랙으로 후생노동성의 ‘재생의료 등 안전성 확보법’을 활용하고, 제품 인허가는 감독당국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가 ‘재생의료제품 조건부 허가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첨단의약품 등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 전에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서 “관련 법안 등은 글로벌 수준에서 논의가 되는 수준도 아니고 상식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면역항암제 등 의약품 효능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고 평가되는 ‘이중항체’ 기술을 적용한 의약품은 글로벌 제약사를 비롯해 신생 바이오 벤처 기업까지 함께 경쟁하고 있다. 이중항체 개발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미국 식품의약품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를 받은 신약은 3개 뿐이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로 풀이된다.

블록버스터 이중항체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글로벌 임상이 필요하다. 문제는 글로벌 임상 시 비용이다. 보건복지부는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이 신약 해외 임상 3상을 진행할 때 대기업·중견기업은 20~30%, 중소기업은 30~40%까지 세액을 공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엔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임상 3상은 약 3~5년이라는 기간과 수천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인종별로 나눠 임상을 진행하는 등 대상자 1인당 약 1억원이 소요될 만큼 부담이 크다. 업계 전문가는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임상 3상을 감당하기엔 버거운 부분이 있다. 대부분 기술수출을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 아쉽다”면서 “바이오헬스산업 전체를 육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디지털헬스케어, 건강기능식품, 혁신신약 개발 등 세세한 부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첨생법’ 제정이 글로벌 수준으로의 제도 정비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첨생법)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사태가 꼽힌다. 법안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안전성’과 ‘관리’ 등을 지적하고 있다. 한 단체 관계자는 “느슨한 규제에 한국에서 출시된 세포치료제들이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대개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인보사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한국 제품들은 세계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첨생법은 글로벌 시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상식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자문을 하고 있는 한 업계 전문가는 “미국, 유럽, 일본도 다 잘 활용하고 있는 법. 지금 제정해도 늦었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외양간도 못 고칠 수 있다”면서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에 대해 각종 지원책이 나오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바이오헬스 산업과 관련, 전체를 보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개선은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인보사 사태는 결국 한 기업의 문제이나 바이오헬스 산업 지원과 관련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사인력 확충 등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핵심 부분 중 하나”라면서도 “세포치료제 관련 별도 안전관리기준이 생길 것이므로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일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