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장기적인 시야를 가진 따뜻한 형님” 고 구본무 회장 타계 1주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투자의 천재 손정의 회장이 고인을 추모하며 남긴 말이다. 손 회장의 말에는 고 구본무 회장이 보여준 땀과 불굴의 의지, 나아가 소탈함과 미래의 비전이 모두 스며들어 있다.

LG가 1년전 타계한 고 구본무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20일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가졌다. 구광모 회장을 비롯해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권영수 LG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LG 임원진 4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 구본무 회장의 경영철학을 기리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소박하게 치렀던 것처럼 생전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멀리하고 소탈하게 살아온 고인을 기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간소하게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 고 구본무 회장 1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출처=LG

이 자리에서 공개된 추모영상에는 고 구본무 회장의 경영철학과 거인의 행보가 담담하게 그려졌다.

고 구본무 회장은 1995년 3대 회장으로 취임한 후 24년간 글로벌 LG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간 매출은 30조원에서 160조원으로 성장했고, 해외 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늘었다. 임직원 수는 10만명에서 23만명이 됐다. LG그룹 특유의 계열사 분리가 이뤄졌음에도 일군 성과다.

고 구본무 회장의 경영행보가 항상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취임 후 IMF 사태가 터지며 국가 경제가 흔들렸으며,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며 LG도 위기를 맞았다. 경제호황의 축제를 즐기던 기업들이 순식간에 나락의 공포를 맛보던 시기다.

LG는 달랐다. 고 구본무 회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승부사 기질을 적극 발현, 글로벌 경영에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단기 처방이 아닌 중장기적 처방으로 LG의 체질을 바꿨으며 2003년 지주회사로의 전환, 2005년에는 ‘LG웨이’ 선언을 통해 극적인 반환점을 돌았다.

LG의 이차전지는 고 구본무 회장의 땀과 집념이 깃든 결정체다. 고 구본무 회장은 당시 투자 대비 성과가 전혀 나오지 않던 이차전지 사업을 두고 내외부의 회의감이 커졌으나 ‘반드시 필요한 성장 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기어이 현재의 LG 이차전지 사업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초기 수율 0%의 악몽을 보여주던 OLED 산업의 글로벌 시장 제패, 야심찬 LG의 통신 사업도 모두 고 구본부 회장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진규 LG 부사장은 고인을 추모하며 “남들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도 반드시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면서 “당장의 손해를 봐도 개의치 않는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추모영상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등장해 고 구본무 회장을 회고했다. 손 회장은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국적인 관점의 이야기를 하던 분”이라면서 “LG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주로 이야기 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손 회장은 이어 “정말 다정한 분”이라면서 “따뜻한 형님과 같은 존재다. 몇 번을 만나도 좋고 존경심이 생기는 사람이다. 소프트뱅크를 이끌며 고 구본무 회장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모리 시게가타 후지필름 회장도 고인의 따스함을 추억했다. 그는 “일본인과 외국인 경영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면서 “(특히) 인품이 뛰어난 분이며,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도 “고인이 타계한 후 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을까”라며 “단순히 강한 힘이 아니라, 따뜻하고 공감대를 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 구본무 회장은 한국과 미국에서 열리는 LG테크컨퍼런스에 직접 참여, 인재들을 적극 유치하는 일에도 열정을 보였다. 테크컨퍼런스에 참석한 한 직원은 “고인은 연설한다고, 사진 찍는다고, 강단에 선다고, 행사가 끝나면 잘 가라고 문 앞에 섰던 가장 오래 서 계셨던 분”이라며 대기업 회장과 어울리지 않는 소탈함을 추억했다.

사회의 의인들을 돕기 위해 고 구본무 회장 주도로 만들어진 LG 의인상, 나아가 사회공헌의 가치도 추모식을 통해 참석자들의 마음에 잔잔히 흘러 들었다는 평가다. 특히 고 구본무 회장이 큰 관심을 가지고 조성한 화담숲에 대한 사례가 추모영상에 등장해 눈길을 끈다. 세계 10대 정원을 목표로 만들어진 화담숲은 고 구본무 회장의 호인 화담에서 모티브를 땄으며, 지금은 연간 입장객 90만명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휴식지로 자리매김했다. 고 구본무 회장은 국내 최초로 그림으로 된 조류도감인 ‘한국의 새’를 펴내기도 했다.

고 구본무 회장은 타계 직전까지 LG 사이언스파크 공사 현장을 찾아 미래기술개발과 연구개발에 매진한 바 있다. LG는 추모식을 통해 이러한 고인의 의지를 바탕으로 LG사이언스파크를 통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은 물론, 그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