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두 수퍼파워가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통신장비 금지를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화웨이는 거칠게 반발하고 있다. 유럽과 손잡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던 화웨이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이다. 국내 업계에서는 화웨이와 협력하고 있는 토종 기업들도 이번 행정명령의 여파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런 창업주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빈 손 현상의 후폭풍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최근 테이블을 마주하고 협상에 돌입, 수습 국면에 접어드는가 했으나 최종적으로 '빈 손' 협상이 됐다. 이후 미국은 중국에 고율관세 폭탄을 던졌고 중국도 이에 맞대응에 돌입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일각에서 희토류 전략 무기화, 미국 국채를 통한 흔들기, 중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결론은 관세 강대강 대결로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려는 미국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완성시키는 한편 미국이 무역전쟁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판 자체가 흔들린 마당에 미국의 공격이 날카로워진 셈이다.

공격은 전격전을 방불케한다. 당장 엔가젯 등 외신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는 통신장비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행정명령에 중국 기업이라는 점은 적시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ZTE와 화웨이를 겨냥한 조치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난감한 국면이다.

화웨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부터 일종의 희생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시작은 특정 기업에 대한 각 국의 강력한 규제다. 당장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유탄을 맞았다. 푸젠성에 있는 푸저우(福州)시 중급인민법원이 지난해 7월 3일 마이크론 메모리 반도체 제품 26종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판결한 것이 시작이다. 즉시 미국이 받아치며 푸젠진화는 D램 양산을 최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두 나라가 한 방씩 주고 받은 셈이다.

퀄컴도 피해를 봤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으로 무위에 그친 가운데, 중국 당국의 반대로 숙원인 NXP 인수가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퀄컴은 NXP를 인수하기 위해 9개 나라 반독점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중국을 제외한 8개 나라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끝내 불허했다. 이 외에도 두 수퍼파워는 상대의 기술 기업을 둘러싸고 난타전을 벌였다.

화웨이 사태가 심각해진 전초전은 ZTE 사태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은 지난해 4월 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하며 압박했고 ZTE는 크게 휘청였다. ZTE는 5월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낼 정도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자연스럽게 ZTE와 유사한 통신 사업자 화웨이가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미국 하원은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사실상 화웨이를 북미 시장에서 몰아내는 등 오랫동안 반감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미중 무역전쟁과 동시에 미국은 화웨이의 중국 정부 유착설을 제기하며 대대적인 규제에 나서기 시작한다.

화웨이는 몸을 낮췄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지난해 7월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추가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화웨이는 퀄컴으로부터 5000만개의 반도체를 구입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은) 적이 아닌, 친구다"고 말했다.그는 심지어 "중국은 더 발전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내려야 한다"면서 "직원들은 쓸데없는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행동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몸을 낮췄다.

지루한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들을 움직여 반 화웨이 전선 동참을 독려했다. 미 언론은 지난해 11월 23일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동맹국가 관계자들과 통신사 경영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며 “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압박, 화웨이의 설명 패턴이 반복되는 가운데 지난해 G20 회의를 통해 미중 무역전쟁이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화웨이를 둘러싼 논란도 잦아드는 듯 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가 런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며 사태는 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런 창업주가 나섰다. 그는 올해 초 연이어 간담회를 열어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연구개발 집약도 부문 세계 상위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서 "현재 8만7805개의 특허를 보유 중이며 미국에서만 1만1152개의 핵심 기술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화웨이는 360개 이상의 표준 단체에 적극 참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5만4000개 이상의 기술연구 관련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주까지 나섰으나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란 제재와 관련된 다양한 논란까지 나오는 가운데 미국 법무부가 1월 28일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화웨이의 자회사 스카이콤과 화웨이 디바이스 USA를 전격 기소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심지어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미국 화웨이를 급습, 압수수색까지 단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반격이 시작됐다. 화웨이는 유럽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미국의 주장에 반박하는 한편, 법적 공방을 불사했다. 실제로 3월 7일 화웨이는 미국 국방수권법(NDAA) 제 889조가 위헌이라고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텍사스주 플레이노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실제 액션에 돌입한 상태다. 미 정부가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유착설을 강조하며 장비 배제 방침을 확고하게 세운 대목을 두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궈 핑(Guo Ping) 화웨이 순환 회장은 “미 국회는 지금까지 화웨이 제품 제한을 위한 어떠한 근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화웨이는 어쩔 수 없이 법적조치를 통해 대응하기로 했다”며 “해당 제한 조치는 위헌일 뿐 아니라 공정 경쟁에서 화웨이를 배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화웨이는 법원이 신뢰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미국 국민과 화웨이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반격은 효과를 봤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국가들이 속속 화웨이를 선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어 네트워크는 영국 기업이, 그 외는 화웨이가 맡는 방식이다.  지난 4월 22일 화웨이는 언론과 만나 미국 정부가 제기하는 통신장비 백도어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궈핑 화웨이 순환회장은 “백도어는 자살행위”라는 격한 단어를 사용하며 “단 한 건의 백도어 사건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국가안보국이 운영했던 프로젝트 프리즘 도청사건까지 거론하며 미국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한편 “미국의 네트워크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나”는 말로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LG유플러스와 5G 정국에서 협력한 상황에서, SK텔레콤은 물론 KT와도 장비 공급을 논의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여론전의 시작이다. 화웨이가 적극 백도어 논란을 일축하며 미국에 반기를 들자 이번에는 미국 언론이 나섰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4월 23일 시진핑 국가 주석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는 한편 화웨이와 중국 정부 유착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마오주의자 런 창업주를 조명하는 한편 화웨이가 사실상 중국 기업이라는 주장이다.

WSJ 등 외신은 화웨이라는 사명 자체가 중화유위(中華有爲)에서 나왔다는 점에 집중했다. 이는 ‘중국은 미래가 있다’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명은 국영기업 수준의 네이밍에 가깝다는 평가다. 나아가 런 창업주가 유명한 마오주의자라는 점도 중요하다. 런 창업주는 1944년 태어나 충칭건축공정학원에 입학, 1974년 인민해방군에서 건축병으로 일했다. 이후 1983년 제대해 1987년 화웨이를 창업했으며, 사업 초반부터 마오쩌둥의 전략을 차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항상 위기의식을 전제로 움직이는 ‘늑대문화’가 대표적이다.

화웨이는 물론 부정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화웨이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화웨이는 화웨이 인베스트먼트 앤드 홀딩스라는 지주사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주사의 지분 98.99%는 직원으로 구성된 노조의 몫이라고 말했다. 런 창업주는 1.01%의 지분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민해방군 출신의 런 회장과 화웨이, 중국 정부의 유착을 의심할 근거는 없다는 주장이다.

최근 의미심장한 보도가 더 나왔다. 블룸버그는 지난 1일 영국의 통신사인 보다폰이 2009년과 2011년 사이 화웨이 백도어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백도어는 시스템이나 암호화된 데이터에 우회 접속할 수 있는 방식이며, 블룸버그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화웨이는 즉각 부인했다. 화웨이 대변인은 문제가 된 보다폰 이슈는 백도어가 아니라 기술적 미비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화웨이의 가정용 공유기에 네트워크에 무단으로 접속할 수 있도록 백도어가 마련됐다는 블룸버그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단순 실수라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보다폰이 지금도 화웨이 장비를 활용하고 있으며, 만약 당시 진짜 백도어가 있었다면 화웨이와 보다폰의 협력이 이어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치열한 공방전의 중심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자,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화웨이를 겨냥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유럽과 손잡고 미국의 압박기조를 피하던 화웨이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화웨이는 16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화웨이는 제품 보안을 보장할 수 있는 효과적인 검증 방안을 마련할 것이며, 미국 정부와 기꺼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도 "화웨이가 미국 내에서 사업하는 것을 제한한다고 해서 미국이 더욱 안전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방침으로 인해 미국은 화웨이 제품보다 비싼 제품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5G 구축에서 뒤처지고, 궁극적으로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이익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를 배제하면 그 피해는 결국 미국이 받을 것이라는 경고다. 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후, 오히려 미국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졌다는 최근의 조사결과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도 불사했다. 화웨이는 입장문 말미에 "이러한 불합리한 규제는 화웨이의 권리를 침해하고, 심각한 법적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 궈 핑 순환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국내 기업 브랜딩 어쩌나
화웨이와 미국 정부의 신경전은 중국 기술굴기에 대한 견제, 나아가 정치공학적 충돌에서 비롯된 사안이다. 통신 네트워크 장비 측면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는 백도어 논란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안보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화웨이가 백도어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중국 정부와의 유착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약점이 있고, 미국은 한 때 프리즘 프로젝트 등 자기들이 세계를 도청한 전적을 가지고도 무리하게 화웨이를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결국 국가과 국가의 충돌이라는 전제가 깔렸다는 평가다. 전체 미중 무역전쟁, 나아가 미국 대선 및 군사적 사회적 영향이 모두 맞물리며 상황이 더 복잡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다.

이런 과정에서 통신 네트워크에서 화웨이와 협력하고 있는 LG유플러스의 당혹감은 커지고 있다. 화웨이 백도어 논란이 현 상황에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단지 화웨이와 얽혀있다는 점 만으로 지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철 전 부회장의 화웨이 고문행이 다시 조명되는 한편, 이와 관련된 다양한 논란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중국 화웨이 ARM 서버 '타이산' DBMS로 티베로를 공급하는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인 티맥스도 거론된다. 역시 최근의 논란과 거리가 멀지만 단지 화웨이와 협력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업 브랜딩 자체로 비토 정서가 엿보인다. 화웨이와 협력하는 모든 기업이 이유불문 '매국노 기업'으로 매도되는 현상이다.